강원도 고성 파인리즈골프장(사진)에 가면 ‘나룻배’를 탈 수 있다.
첩첩산중의 골프장에 웬 배인가 싶겠지만 최근 새로 개장한 레이크 코스 8번홀 그린 옆에 가면 손님을 기다리는 배가 한 척 있다.

바로 골퍼들을 9번홀 티잉그라운드로 실어나르는 ‘갯배’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물론 다리도 있다.

‘갯배’는 골프장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속초의 청초호에서 유래됐다. 커다란 술단지 같이 생긴 청초호 주변에는 1950년대 무렵 실향민들이 대거 정착했고, 폭이 50m 정도 되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청호동과 중앙동으로 나뉘어졌다.

주민들은 그러나 건너편 마을에 가기 위해 호수를 멀리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호수를 가로질러 줄을 매달고 갯배를 띄웠다.

바로 이 청초호에 용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청초호가 얼면 웬일인지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논밭의 두렁 같은 게 생겼다. 한겨울의 거센 바람 탓에 물결 모양대로 호수면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호수에 사는 용이 얼음을 갈아놓은 것이라고 믿고, 용경(龍耕) 또는 용갈이라고 불렀다. 갈아놓은 방향이 남쪽이면 이듬해 풍년이 들고, 반대로 북쪽이면 흉년이 든다 하여 이것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청초호와 인접한 인근의 영랑호는 신라의 화랑 영랑이 발견했다 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영랑이 금강산에서 수련하고 무술대회장인 금성(지금의 경주)으로 가는 도중 이 호수에 이르렀는데 맑고 잔잔한 물결과 웅장한 설악의 바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범바위 등에 도취돼 그만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잊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청초호와 영랑호를 합쳐 ‘쌍성호’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두 개의 맑은 눈동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청초호와 마찬가지로 영랑호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청초호 주인이 청룡(수컷)이고, 영랑호에 사는 건 황룡(암컷)이었다. 매년 속초 불축제 때 선보이는 청룡 황룡 겨루기가 이 전설에서 비롯됐다.

청초호 주변으로는 현재 시가지가 있지만 영랑호는 외곽에 위치한 덕에 아직도 규수댁 여인네처럼 조용한 분위기다.

영랑호 일주도로는 그래서 산책로로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범바위에 오르면 호수에 비친 달을 벗삼아 술 한잔 걸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파인리즈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두 호수가 오버랩된다. 때로는 강인한 청룡의 기개가 필요하고, 가끔씩은 자연에 순응하며 산책하듯 코스를 즐겨야 한다. 골프의 참맛이 여기에 있다.

아시아경제신문 김세영 기자 (freegolf@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