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블리자드

클래스는 영원하다. 글로벌 게임사 블리자드와 닌텐도의 최근 행보를 보고 떠오른 말이다. 블리자드는 하이퍼 FPS(1인칭 슈팅게임) ‘오버워치’를 출시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위치 기반 증강현실(AR) 모바일게임 ‘포켓몬GO’가 출시되자 닌텐도 주가는 80% 이상 급등했다. 위기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만 울상이다. 블리자드와 닌텐도, 그리고 오버워치와 포켓몬GO 돌풍으로 적어도 4가지를 우린 알게 됐다.

◆ 롤 천하는 무너질 수 있었다

‘롤 천하’는 영원할 것 같았다. '리그오브레전드'(롤)는 게임트릭스가 집계하는 PC방 게임 순위에서 독주했다. 점유율 40% 이상을 유지했다. 잠깐도 아니다. 200주 넘게 1위 자리를 지켰다. 국내 게임사가 야심차게 신작을 내놔도 변동은 없었다. 게임사 개발자들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뭘 만들어도 롤 상대는 안 될 거야.’

▲ 출처=라이엇게임즈

204주를 끝으로 역사가 끝이 났다. 새로운 킬러 게임이 등장한 탓이다. 오버워치가 그 주인공이다. 등장하자마자 롤을 위협했다. 무서운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갔다. 롤과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왕좌를 빼앗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롤 천하가 무너진 순간이다.

오버워치는 롤과의 격차를 넓혀가고 있다. 오버워치는 14일 기준으로 게임트릭스 PC방 게임 순위에서 33.9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롤은 25.4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다만 국내 게임 업계 관계자들에겐 우울한 소식이다. 롤도 넘어서기 어려웠는데 오버워치라는 난적이 또 등장했으니. 일부에서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시장이 흔들린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 IP는 힘이 세다

지난해부터 국내 게임시장에서 'IP(지적재산권)'는 마치 유행어처럼 사용됐다. IP 활용으로 득을 본 회사가 연이어 생겨난 까닭에 관심이 쏠렸다.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던 한 국내 게임사는 자사의 IP로 중국 개발사가 만든 게임이 대박이 나면서 초고속으로 부활했다. 다른 회사의 인기 IP를 가져다 만든 게임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 출처=나이언틱

다들 IP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다만 성공 사례는 가끔씩만 나타날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박 사례가 등장했다. 포켓몬GO 말이다. 포켓몬 IP 파워는 역시 막강했다. IP 탄생 20주년을 멋지게 장식했다. 그간 귀여운 포켓몬 캐릭터는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다. 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완구·식품 등을 넘나들었다. 콘솔게임 ‘포켓몬스터 RGB’로 시작된 포켓몬 IP는 포켓몬GO로 다시 한 번 IP 파워를 보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IP 파워는 마일리지처럼 서서히 쌓이는 것이다. 꾸준한 활용과 관리가 질긴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는 IP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그런 까닭에 경쟁력 있는 IP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뽀로로’ 사례만 반복 회자될 뿐이다. 게임사들이 해외 IP를 활용해가면서 굳이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배경이다. 우리만의 슈퍼 IP 탄생은 요원한 걸까.

◆ IP 우려먹기가 답은 아니다

IP 활용을 제대로 하면 가치를 무한 창출할 수 있다. 위험도 있기는 하다. 결국은 ‘반복’이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우려먹기’다. 콘텐츠 산업의 핵심인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식상한 반복만 계속되다보면 IP 파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IP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기존 IP의 경쟁력만 믿고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IP 활용과 함께 새로운 IP 창안도 동반해야 하는 이유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라는 신규 IP를 창안했다. 무려 18년 만에 새로운 IP를 창안해낸 것이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워크래프트 등의 IP를 보유하고 있다. 그간 IP 활용에 적극 임했다. 오버워치 IP 역시도 게임 하나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시리즈물로 발전하는가 하면 워크래프트처럼 영화로도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다.

▲ 출처=블리자드

새 IP 창안으로 블리자드는 운신의 폭을 넓혔다. 오버워치는 기존 블리자드 게임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전 블리자드 게임의 세계관은 무거우면서도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색채가 강했다. 반대로 오버워치는 가볍고 경쾌하다.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가능성을 확장한 셈이다. 어두운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끼던 유저까지도 자신들 게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 셈이니까.

◆ 증강현실은 시기상조가 아니다

올해 초 “2016년은 가상현실(VR) 원년이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VR을 즐기는 데 필수 장비인 VR 헤드셋 기대작이 다수 출시되기 때문이었다. 오큘러스 리프트·플레이스테이션 VR·바이브 등이 그 주인공이다. 반면 증강현실(AR)에 대한 기대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홀로렌즈나 구글글래스가 개발되고 있지만 VR보다는 먼 미래 기술로 여겨졌다.

▲ 출처=나이언틱

VR과 AR 시장이 성장하려면 콘텐츠가 중요하다. 게임이 VR·AR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글로벌 주요 게임사는 앞다퉈 시장 선점을 노렸다. 다만 국내 게임사 반응은 싸늘했다. ‘VR 게임이 돈이 되려면 멀었지. AR은 더더욱 그렇고!’ 흔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극히 드문 게임사만 VR·AR 게임 개발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포켓몬GO가 등장했다. 우린 뒤늦게 “우리도 이미 기술 개발은 끝냈다. 대단한 기술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자조하고 있다. 어쨌든 포켓몬GO는 우리 손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포켓몬GO는 VR뿐만 아니라 AR 기술로 인기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기술은 마치 IP처럼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바일게임의 진화 방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