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을 맞이하자 무능한 선조는 어느 말을 듣고 따라야 할지 몰라 헤맬 때 신립의 말은 조정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으나 그 실체는 동, 서당파의 싸움이었고, 국가 본의는 아니나 바다 가운데로 돌출한 반도인 조선이 되어 해군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소위 무장의 입에서 나오게 되니, 영해가 무엇인지, 제도권이 무엇인지 조선 반도의 바다에 인접한 군읍이 얼마인지를 모르는 판이니 당시에 백성들의 삶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 와중에 유성룡은 거북선의 성공으로 조정에서 일어난 풍파를 자세하게 이순신 장군에게 편지를 하고 ‘조정의 인심이 국가를 위함보다 당파 또는 자신을 위함이 많고, 공적인 마음보다 남의 공적을 시기함이 많으니 형은 너무 수군을 확장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말지어다’ 하였습니다.”

“장군은 유성룡의 서찰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당시에 제2호 거북선을 짓기 시작한 때였고, 장군은 곧 향을 피우고 엎드려 장계를 지었으며, 일본 측으로부터 대풍우 뒤에 조선하는 목판이 많이 떠온다는 것과 바람결에 물에 떠서 흘러갔던 어민 공대원 등의 말을 들으면 일본국에는 해구마다 병선을 짓는다는 말이며, 히데요시의 사람됨이 남과 겨뤄 꼭 이기기를 즐기는 성벽이 있어 정녕코 이웃 나라를 침범할 것을 상세하게 쓴 뒤에 ‘바다로 오는 적을 막는 데는 수군밖에 없으니, 수군이거나 육군이거나를 막론하옵고, 하나에 치중해 폐할 수는 없나이다’하여 수군을 폐함은 나라의 운명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장계를 써서 밤을 새워 상경시켰다.”

“네, 무능한 임금이 신립의 장계대로 육군에만 전력하고, 수군을 폐한다는 교지를 장군에게 내리려고 하던 차에 장군의 장계를 받고 친히 읽고, 무릎을 쳐가며 장군의 글이 무능한 임금에게도 잘 보였던지 모자란 임금이 칭찬까지 해가면서 수군혁파를 주장하는 모든 신하에게 장계를 돌려 보이고 더 다른 의견을 듣지도 아니하고, 장군의 장계가 옳다고 하며, 한성판윤 겸 금위대장 신립의 계본은 옳지 아니하다고 윤허하지 않는다는 비지(批旨, 임금이 내리는 비답의 말씀)를 내렸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임금이 모처럼 제대로 판단을 하였구나! 만약 거꾸로 판단이 내려 수군을 없앴더라면 이 나라는 어찌되었을까?”

“네, 서인들은 장군의 뜻이 옳기 때문이라고 하기 싫어서 글과 글씨를 잘쓰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재주 때문에 세력 잡은 무리들의 미움을 받는 근원이 되었다 합니다.”

“음! 권력이란 잡은 놈들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장군의 장계가 효과를 거두어 수군혁파만은 면하게 되었으나, 동인들의 비전론과 서인들의 육군주의에 다 같이 시기를 받아 거북선 20척의 건조와 그 외 수군 대확장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렇게 조선 정부에서는 전쟁준비를 할까 말까 하고 당파싸움만 일삼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대륙침략의 계획을 착착 실행하는 과정을 거쳐 호오죠 가문을 멸망시키기 위해 도쿠가와 군과 합세하여 오다와라 성을 공격하게 되어 3개월 만에 함락시킨다. 인간이란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인데, 호오죠 가문이 멸망하는 결정적 요인이 호오죠 우지떼루의 세상 보는 안목이 어두워 형세판단을 그르쳤다. 히데요시에게 적당히 항복하였더라면 영지 보전이 되었을 뗀데, 반대로 전쟁을 치러 패배하고 목숨까지 날아가는 비운을 맞았고, 히데요시 역시 잘나갈 때 쓸데없이 조선 출병을 하여 결국은 집안이 깡그리 망한다. 1591년 辛卯년에 그렇게 아끼던 쓰루마쓰가 병사하고, 다도인 센 리큐를 효수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더욱더 판단을 흐렸던 것은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교토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오다와라 성에서 이에야스에게 선약했던 대로 도카이도의 5개국을 거두어들이는 대신간핫슈 지역과 이즈를 내렸다.

당시에 도쿠가와 가문의 가신들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였으나 무마시키고, 오다와라나 가마쿠라가 아닌 간토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던 호오죠의 일개 출장소 에도로 명절인 핫사쿠였던 곳으로 입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영지이동이란 것인데, 도요토미 가문에서 그런 제안을 하리란 것을 미리 짐작하였던 도쿠가와는 신속하게 받아들여 에도 성에 막부의 본부를 만들 마음으로 가게 한 것이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도쿠가와의 말 중에서 ‘살해 하는 자는 반드시 살해당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런 연유로 도쿠가와는 스스로 먼저 공격하지 않고, 도전을 받아들이는 형태의 전쟁을 많이 유도하였던 것이다. 반대로 히데요시는 조선과의 전쟁을 부하들이 속으로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일전을 벌이기로 작정한 것 자체가 집안을 망하게 하는 결정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