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5일 사내방송을 통해 또 한 번 통렬한 반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을 달립니다. 중요한 지적이며, 반드시 인지하고 넘어야 하는 당연한 성찰이라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외면하고 말로만 혁신을 외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삼성의 반성

국내를 넘어 글로벌 최고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이 5일 사내방송국 SBC를 통해 20분 분량의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 2부를 방영했습니다. 이에 앞서 삼성은 지난달 21일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 1부를 방영한 바 있습니다.

5일 방송은 지난달 방송과 대동소이했으나 그 내면에서 짚어내는 통찰은 여전했다는 후문입니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역량을 점검하는 한편 수평적 조직 문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해 새로운 발판의 도약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핵심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번 사내방송 소식을 들으며 처음 느낀 감정은 ‘대단하다’였습니다. 대체적으로 삼성은 ‘최고기업’의 이미지가 강하고 그 만큼 콧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부족한 점을 짚어내는 용기도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정말 변하고 있구나’라는 의견이 많이 돌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시작된 후 그의 소탈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부상하곤 했습니다. 실사구시를 실현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가 권위적이고 틀에 박힌 기존 한국 대기업 오너가의 이미지를 많이 바꿨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업적 행보에도 이어져,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과감하게 넘기고 ‘잘 하는 것에 집중하는’ 삼성의 선택과 집중으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비전 선포식이 대표적입니다. 삼성은 지난 3월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혁신을 천명하며 수평적 문화구축, 직급 단순화,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 등을 선언했습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프루트 신경영 선언과는 또 다른,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지향하는 하향식 개혁이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관성적인 직급을 폐지하는 등 놀라운 행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달과 5일 연속으로 방영된 삼성의 사내방송은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문제를 마주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해 생각을 모으자’는 메시지도 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제고 및 스타트업 삼성 선포식은 그 자체로 연결된 개념입니다.

▲ 출처=삼성전자

진짜 불편한 진실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한 이면에는 관료화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급변하는 경제상황을 이겨내자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사내방송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나 삼성의 수준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이를 반성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키워드가 핵심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이를 ‘불편한 진실’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진짜 불편한 진실’은 따로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먼저 스타트업 삼성의 경우 ‘선포식’까지 열어 임직원들이 선언문에 직접 서명하는 퍼포먼스를 연 행위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주입식 마인드’이라는 뜻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절대 주입한다고 체화되거나 확산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생각들이 강남스타일 홍보한다며 코엑스 옆에 거대한 손 모양 동상을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타트업 삼성을 천명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방법론적 측면에서 ‘약간 조급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없지만’ 문화의 확산을 너무 만만히 본 것 아닌가라는 비판입니다.

사내방송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제고하고 이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인프라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임직원들만 비판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심지어 “경기에서 진 감독이 선수 탓만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무슨 뜻일까요?

삼성이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자아성찰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은 ‘비운의 조직’ MSC(미디어솔루션센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만든 MSC는 발족 후 쟁쟁한 업계의 고수들을 영입해 야심차게 움직였으나, 6년 후 2014년 12월 해체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실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여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하드웨어 기술력에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았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삼성의 콘트롤 타워가 직접 MSC를 해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삼성은 임직원들에게 “바다와 챗온의 실패”와 “왜 우리는 구글처럼 못하나”라고 말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만약 이러한 지적이 사실이라면, 삼성은 아직 변하지 않은 셈입니다. 과거와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회사가 ‘따르라!’고 외치면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퍼포먼스를 펼치는 관습이 아직 그대로 남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 책임을 임직원에게 돌리는 분위기는 치명적입니다.

삼성이 사내방송 2부에서 삼성이 강조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를 구성하는 내부 구성원의 역량 부족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정리하자면 소프트웨어 실력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부장이 소스코드를 고치면, 이를 사원이 자유롭게 고치지 못하는 부분에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물론 삼성은 최고의 기업입니다. 이들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통렬히 반성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는 당연히 찬사를 받아야 합니다. 글로벌 최고 기업의 삼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퍼즐 몇 조각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삼성은, 충분히 그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곳입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