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산업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사업이다. 때문에 농업의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본 따서 제약업을 ‘제약주권’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당장의 이익보다는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약가 추가인하는 단기간으로는 국민들에게 저렴한 투약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으로서는 별로 나쁘지 않은 결과다. 하지만 이 제도로 다른 서비스를 제한 받기도 한다. 현재 의보제도 때문에 외국에서는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처방을 받을 수 없는 신약 또는 오리지널 약품이 30%가 넘는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처방을 받는 의약품이 되기 위해서는 보건 당국이 정하는 수가를 판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에서 개발한 신약이나 일부 오리지널 약품들은 너무 낮게 책정된 수가 때문에 국내에서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보다 고품질의 의약품을 처방 받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는 애초부터 단절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약가 추가인하는 단기간으로는 국민들에게 저렴한 투약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진료 후 처방전을 받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값비싼 수입약 국민에 되레 피해

글로벌 제약사가 마진이 없기 때문에 못 들어오는 시장을 위해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투자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 국내 시장에서 위축된 신약 개발 투자는 국내 제약 산업의 기형적인 발전을 요구한다. 보통 1조~2조원대의 투자비를 들여야 하는 신약 개발은 요원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문제는 ‘제약주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단기간 혜택을 위해 관련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글로벌 제약사에게 안방을 내 줄 우려도 있다. 마진이 없는 약값으로 건전한 국내 제약사가 타격을 입으면 결국 글로벌 제약사들의 약을 받아써야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글로벌 제약사의 약을 쓸 수밖에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실례로 업계에서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사례를 많이 들고 있다. 가까운 아세안(ASEAN) 국가들의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시장 점유율을 비교해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아세안 시장 중 다국적 제약사의 시장 점유율은 2007년도 기준 64.3%로 국내 제약회사의 시장 점유율 35.7%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깝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89%, 싱가포르는 97%를 다국적 제약회사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높은 것은 일찍이 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 회사의 진출로 조기에 시장에 정착할 수 있었고, 이에 반해 국내 기업은 신약 개발 등 R&D 활동이 매우 미약해 상대적인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국내 제약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6%로 다른 나라와 정반대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부의 국내 기업 육성과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 의약품 사용 권장 정책에 따른 것으로, 국내 기업이 성장 할 수 있었다.

필리핀, 태국 등 다른 나라들도 최근 저소득층의 의료 혜택과 의약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일부 의약품의 특허 만료 전 제네릭 도입 허가 등 여러 가지 보건 정책을 정부가 채택하고 있어, 국내 제약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영업 마케팅 활동에 윤리 규정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다양한 판촉 활동으로 시장 점유율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아세안 모든 나라에서 보험 재정의 압박으로 약가 및 의료 보험 급여에 대한 억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 공공병원의 경우 정부에서 공동 구매 정책을 실시해 약품의 구입 가격을 낮추려고 하며, 제네릭 의약품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제네릭 의약품의 처방 권장 또는 의무 제도가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도 강력하게 실시되고 있다. 또한 태국의 경우, 처방할 수 있는 필수 의약품 리스트 제도를 실시하여 국·공립 병원의 경우 이들 의약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약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비즈니스 실현이 긴 산업이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신약 개발에 15~20년이 소요된다. 때문에 중간에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기업은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최근 삼성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BT사업에 뛰어들고 있고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제약업계 전반적으로 투자가 늘어나면서 산업 강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보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말뿐인 세계적 제네릭기업 육성

보건복지부는 2011년 3월 ‘의약품 분야 FTA 협상결과 및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단기목표(2011년~2012년)를 ‘개량신약에 기반을 둔 세계적 수준의 제네릭 기업 육성’으로 삼고 이를 위해 제약기업의 기술개발 및 해외수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약기업의 이익 창출과 직결되는 약가가 인하된다면, R&D투자보다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으므로 개량신약 및 신약 개발의 길이 막히는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개량신약에 기반을 둔 세계적 수준의 제네릭기업’을 주문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부정적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산업 퇴보와 신약 개발 역량 상실도 걱정이다. 보건복지부는 FTA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국내제도 선진화 및 시장개방에 적응하는 제약 산업 체질 개선을 목표로 유연한 구조조정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의약품의 채산성이 기업에 따라, 품목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약가인하를 통해 제약기업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약가인하 정책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다국적 제약기업과 달리 국내 제약기업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축적한 R&D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야심차게 진행 중인 R&D 프로젝트 역시 이어나가지 못해 신약개발 선진국의 문턱에서 결국 퇴보의 길을 걷게 될 것이 우려된다.

국내 대형 제약업체 마케팅 임원은 “제약 산업은 대표적인 FDA 피해 업종 중 하나이다. 정부가 FDA로 인한 산업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가장 먼저 실현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약기업이 정부를 믿고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춰 경영전략을 세우고 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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