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에서 자주 보이는 여행 사이트 광고가 있다.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을 도와주러 오라고 부탁한다. 손자가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고민하면서 2가지의 시나리오가 보인다. 손자가 여행 사이트를 이용해서 저렴한 가격에 차를 렌트해서 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경우, 손자가 벽에 거울을 달아주고 할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이 보인다.

손자가 방문하지 않는 경우 할머니는 사람을 고용해서 거울을 달게 된다. 그런데 사기꾼과 같은 이 사람은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피자를 주문하려면 사회보장번호(소셜시큐리티넘버)가 필요하다면서 할머니의 개인정보를 빼앗으려 한다. 할머니는 사기꾼에게 사회보장번호를 말하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그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신원 도용이 흔히 일어나는 요즘은 이를 마냥 농담으로만 여기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돈을 잃는 경우가 크게 증가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신원 도용 문제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훔치거나 분실된 지갑에서 얻은 신용카드 등으로 구매를 하거나 돈을 찾는 경우는 있지만, 미국에서와 같이 다른 사람의 신원을 이용해서 신용카드를 발급받거나 대출을 받는 등의 문제는 드문 편이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금융거래가 사회보장번호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특히 사회보장번호를 잃어버리거나 외부에 노출시킬 경우 위험이 크다. 한국의 주민등록증은 신용카드와 같은 플라스틱 카드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은 늘 이를 가지고 다닌다. 반면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카드는 일반 종이에 프린트되어 있고, 이 때문에 절대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를 만들 때 직장인이라면 회사의 재직증명서가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고, 전업주부거나 개인사업자인 경우 보유 부동산이나 재산세 납부 등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만 알고 있다고 해서 이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반면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는 사회보장번호를 제외하고는 딱히 요구하는 정보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신원 도용 문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숫자는 2012년에 50만명에서 2013년에는 1310만명으로 2배가량 껑충 뛰어올랐다.

전문가들은 한 해에 평균적으로 약 1500만명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신원 도용의 피해를 입는 것으로 추산한다. 올해의 경우 6월 현재까지 신원 도용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숫자가 약 68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신원 도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액은 약 247억달러에 달했으며 신용카드 번호 유출이나 분실로 인한 피해액은 평균적으로 1251달러로 조사됐다. 단순히 신용카드 번호가 아닌 사회보장번호가 유출되거나 분실된 경우에는 피해 금액이 커져서 1건당 피해액이 2330달러로 나타났다.

신용카드 번호만 유출된 경우 신용카드사에 통보를 하면 해당 금액을 피해자가 낼 필요 없이 처리되지만, 사회보장번호가 유출되어 카드가 발급된 경우라면 상황이 좀 더 복잡해진다.

더 이상의 신용카드 발급이나 대출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3대 신용점수 평가사에 자신의 사회보장번호가 유출됐음을 통보하고,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를 추가해서 더 이상의 유출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번호를 도용해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해당 금융기관에 연락해서 번호가 유출됐음을 통보한 후, 금융기관의 절차에 따라서 필요한 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 3대 신용정보업체와 금융기관에 정정서류 등을 보내놓는 것도 혹시나 발견되지 않은 추가 계좌나 신용카드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유출된 사회보장번호로 누군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새롭게 직장을 구했는데 범죄 이력을 확인한 직장에서 취업을 무효화시키거나, 경찰에 체포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일 자신의 신원을 도용한 범죄자가 다른 주에서 범죄를 저지를 당시 자신의 알리바이가 확실히 증명되지 않는다면, 즉시 변호사를 고용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