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려 하는데요. 위기관리 위원회에 미리 위기 발생 시나리오를 다 알려주고 나서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임원들이 알아야 시뮬레이션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실제 위기와 최대한 유사한 상황을 설정해 실제와 동일한 대응으로 진행되는 훈련입니다. 실제적 위기상황에 맞닥뜨려서 실질적인 위기관리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시뮬레이션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실제 위기상황과 같은 시뮬레이션용 시나리오 개발 시 어떤 부분이 고려되어야 할까요?

첫 번째는 현실성입니다. 해당 위기 상황이 우리 회사에게 발생할 수 있겠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공감대라고 하면 흔히 ‘발생 가능성’에 많은 비중을 두곤 하는데요. 발생 가능성과는 그리 큰 관련은 없습니다. 발생 가능성이 단 1%라도 있으면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주제로는 적합합니다. 물론 이왕이면 발생 가능성이 큰 위기 유형을 가지고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지요.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전체 위기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모든 팩트들이 ‘실제와 동일’하다면 해당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발생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렴풋하게 주장하는 발생 가능성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일부 임원들이 “그런 위기상황은 발생할 수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위기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컨설턴트는 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팩트 하나하나를 점검해 어떤 팩트가 현실과 다른 팩트인지 꼽아 봐야 합니다. 만약 그 모든 팩트들이 실제 발생 가능한 것들이라면, 그 총합인 전체 시나리오는 발생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구성 팩트들이 현실과 전혀 다르다고 하면(팩트가 현실에서 전혀 발생 불가능하다면), 해당 위기관리 시나리오는 발생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가 될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개념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또는 ‘너무 황당한 시나리오군…’하는 생각으로 해당 시나리오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블랙스완(Black Swan)’ 현상이 실제 발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서 그렇습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용 시나리오를 위한 두 번째 고려사항은 ‘관리 가능성’입니다. 만약 시나리오 전체가 발생 가능하고 현실적이라고 해도, 관리가 아예 불가능한 재앙적 시나리오로 진행되면 시뮬레이션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재앙 같은 상황을 조성한 후 이에 대응해 보라고 한다면 훈련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뉴얼상 정해진 대응 방식들을 조합해서 제대로 된 관리 활동들이 일부 또는 대부분 가능해야 훈련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중요 고려사항은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이 부분이 오늘 답변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실제 위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발생 시간이나 계기를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일부 전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전조를 미리 관리하더라도 완전하게 해당 위기의 발생 시기와 전개 방식 전반을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위기관리는 훨씬 수월하겠지요. 실패할 가능성도 확실하게 줄어들겠고요.

잘 구성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이 훈련에 참석하는 위기관리위원회 전원이 어떤 위기유형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게 될지 미리 알지 못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첫 번째 시나리오 하달 후 이어지는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몰라야 합니다. 그 방향을 예상해 대응해 보는 훈련 목적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뮬레이션상으로 어떻게 해당 위기가 결말지어질지에 대해서도 몰라야 합니다. 자신들의 대응으로 어떻게 결말지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기존 위기관리 훈련이나 시뮬레이션은 미리 다 알려져 있는 시나리오로 진행되어, 대응팀이 이미 다 숙지한 대응 방식을 확인하는 데 머무릅니다. 태권도로 보면 일종의 약속 대련(맞춰 겨루기) 형식이죠. 정확하게 구성원들이 집중만 하고 정해진 대로 따르면 대부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구조의 훈련입니다. 편하기는 하지만, 실전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반대로 ‘자유 대련’ 형식입니다. 올림픽이나 여러 경기에서 태권도는 모두 자유 대련으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아무것도 짜인 것이 없이, 순수하게 상대방과 맞서 자신의 실력을 겨루는 거죠. 기업에서 진행하는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궁극적으로 이런 형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사의 강함과 약함을 다 같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알면 편하지만, 모르면 강해집니다.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실무자들이 참고해야 할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