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두뇌가 가진 잠재능력의 2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리미트리스>에 나오는 주인공 에디 몰라는 마감날짜가 다가와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할 정도로 무능한 작가였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전처의 동생이 준 신비로운 약 NZT-48을 한 알 복용하자 뇌가 100% 풀가동되어 보고 들은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복잡한 수학문제도 쉽게 풀어낸다. 피아노를 사흘 만에 다 배우고 책 한 권을 나흘 만에 탈고한다. 하루에 한 가지 외국어를 습득하는 등 하루아침에 초인적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다. ‘무한 잠재능력’이라는 의미의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은 이 약을 계속 먹으면서 두뇌 능력이 계속 강화되고 주식분석가로 백만장자가 된다. 영화에서는 복용 약의 부작용도 극복하고 미국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되는데 종국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천재적 능력이 유지된다는 줄거리다. 사람들은 누구나 총명하고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인공지능도 발달하게 된다는데 기계보다 멍청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는 싫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머리가 총명해지는 약이 있다면 복용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두뇌가 총명해지는 약물은 많다

<동의보감>에는 마침 총명탕이란 처방이 있다. 물론 머리를 바꿔주는 약은 아니고 신체의 기(氣)를 잘 소통시켜줘서 정신을 맑게 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해줘 겁먹지 않게 하고, 정서불안이나 소변장애가 없도록 해줘 과도한 긴장이 엄습하지 않도록 해주는 성분들이 배합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이라면 누구나 긴장하고 불안해 하는데 이런 탕재를 마시면 실력 발휘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서양에도 누트로픽스(Nootropics) 또는 스마트 약물(Smart Drug)이라 불리는 인지능력 강화제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왔다. 가장 고전적인 것은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과 담배 연기 속에 든 니코틴이다. 이들 성분은 각성제로 두뇌 작용을 보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특별한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충분히 자고 건강식을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두뇌가 맑고 총명해진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약물을 복용해서 머리가 총명해질 수만 있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

스마트 약물로 인정되는 성분은 크게 일곱 가지로 분류된다. 뇌손상 환자의 인지력 장애를 치료하는 처방으로 알려진 라세탐(Racetam)류,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나 기면증(주간에 참을 수 없이 잠이 오는 수면장애)을 치료하는 각성제(Stimulants)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낮춰주는 허브류로 인삼, 바실(Basil), 인도 인삼, 황기 뿌리, 감초 뿌리, 돌꽃, 동충하초 버섯 등 강장제(Adaptogens)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증진시키는 자율신경계 약물(Cholinergics)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농도를 높여주는 약물(Serotonergics)류, 역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물(Dopaminergics)류, 그리고 대사작용을 높이는 약물(Metabolic)류 등이다. 이 중 최근에 약물로 주목받는 대상은 라세탐류나 각성제류이다.

라세탐(Racetam)류 중엔 피라세탐(Piracetam)은 치매 초기나 알츠하이머 병 등 뇌손상 환자의 인지력 장애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처방하는 누트로픽(Nootropic) 약물이다. 누트로필 또는 마이오캄이란 상표로 판매되는데 건강한 사람이 복용하면 언어 학습력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IQ가 높아진다고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뇌세포 사이의 신경전달물질의 전달속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른 약들로 푸라미라시탐(Pramiracetam), 옥시라세탐(Oxiracrtam), 그리고 아니라세탐(Aniracetam) 등이 있다. 부작용은 뇌 속의 염소를 고갈시키므로 보충제로 식품첨가물인 타타르산수소콜린을 함께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아이비리그 학생의 20%가 스마트 약물을 복용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최근 기사에 의하면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20% 정도가 이미 스마트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주로 ADHD 질환에 대해 처방해 주는 애더랄(Adderall)이나 리타린(Ritalin) 그리고 기면증 치료제인 모다피닐(Modafinil)을 선호한다. 2012년 영국 왕립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약물은 건강한 젊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시니어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약이라고 주장한다. 인지능역을 향상시켜주는 약효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사에서는 변호사, 은행원, 경쟁이 치열한 전문직들도 이 약을 복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약물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밝히길 꺼려하고 실제로 약효가 있는지 여부도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사실 환자를 치료하는 약물이라면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쉽지만 건강한 사람의 인지력이 어떻게 높아졌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스마트 약을 복용해본 경험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인지능력이 높아진 효과를 충분히 봤다고 말한다. 인지능력이란 기억하고, 일에 집중하고, 그리고 집행하는 기능을 모두 포함하는 정신작용이다. 결과적으로 집행능력이 향상된다면 인지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을 집행하려면 먼저 추론해보고, 계획하고, 관련 정보를 모아서 집중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우선 생각해 보는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적어도 속으로 열까지 세어볼 만큼 차분해져야 집행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지능력이 강화되면 얻는 효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기억력이 좋아지고 학습능력도 좋아진다. 집중력이 향상되고 몰입도 잘된다. 문제 풀이를 잘하며 추리능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도 눈치가 빨라져서 사회성이나 의사결정력 그리고 기획력이 좋아진다. 정말 이런 효과를 주는 약이라면 영화 주인공처럼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건 인간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개념과 지식 사이를 메워주기 위해선 아무래도 대뇌의 생리적인 작용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인지능력이 강화된다는 의미는 뇌의 생리작용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예일대 의과대학의 뇌생물학과 애미 안스텐(Amy Arnsten) 교수는 뇌가 일을 할 때 여러 개의 세포들이 어떻게 협동해서 고차원적인 인지작용이나 집행 작용을 관장하게 되는지를 연구했다. 그녀는 ‘뇌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현재 자극을 받는 것들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고 추상적 개념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모든 생각의 목표는 현재 벌어지는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수초 후의 일이라 할지라도 미래에 벌어질 현상에 대해서 두뇌가 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은 두뇌의 전두엽에서 처리한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뇌세포들 간에 정보를 교환하는 신경전달물질들이 시냅스 공간 틈새를 건너 수용체까지 완전하게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이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시키면 정보를 원활하게 전달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없던 근육이 생성되면서 근육이 강화되지만 스마트 약물을 복용한다고 두뇌물질을 만들어 내진 않는다고 안스텐 교수는 설명한다. 다만 뇌세포들의 신호전달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생리적 상태를 조성해준다고 설명한다. 영화에서처럼 약만 먹는다고 갑자기 천재로 둔갑할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스테로이드 효과와 비슷한 작용이 두뇌에서는 없다

학생들이 시험 전에 스마트 약물을 복용하면 부정행위와 마찬가지로 동료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스마트 약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뽑아내는 작용을 할 뿐이지 약을 복용한다고 인지능력을 직접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안스텐 교수는 거듭 설명한다. 다만 주어진 일을 보다 즐겁고 집중해서 처리하도록 마음가짐을 바꿔줄 만큼 심리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시간 대학교 마틴 사터 교수도 역시 스마트 약물이 인지능력을 높여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약물작용이 학습과정 자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높여주는 주변작용을 할 뿐이라고 정의한다. 런던 킹스컬리지 뇌과학센타의 데리아 란달(Delia Randakk)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모다피닐의 인지력 향상 효과가 IQ 낮은 집단(평균 106)에선 뚜렷했지만 IQ가 높은(평균 115)인 집단에선 뚜렷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비교결과가 있다. 따라서 스마트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만 할 것 같다.

하버드 연구진의 안나-캐서린에 의하면 모다피닐은 거의 부작용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스마트 약물이 무해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뇌작용이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한 가지에는 좋지만 다른 작용엔 해가 될 수도 있다. 캠브리지 대학교 인지뇌과학과 교수인 트레버 로빈스는 기억향상이란 기억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마트 약물이 두뇌작용을 활발하게 도와준다고 하지만 원래 두뇌의 역량은 학습을 통해서 강화하는 것이다. 바탕이 없던 머리가 스마트 약물을 복용한다고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총명해질 수는 없다. 물론 학습효과가 스마트 약물로 인해 증진된다면 활용하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