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을 박박 긁어서 먹는 누룽지는 필자가 참 많이 좋아했던 추억의 음식이다. 오독오독 씹히는 그 맛도 좋았고 씹다 보면 느껴지는 구수한 맛은 요즘 아이들이 먹는 간식과는 다른 별미였다. 누룽지를 다 긁다가 힘들면 그냥 밥솥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숭늉은 밥상의 최고 소화제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건강을 생각한다면 식사 후 30분간은 물을 마시지 말라고도 하고 탄산수, 이온수 등 더 좋은 물들이 많이 나와서 슝늉은 그저 번거로운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숭늉은 구들이 생긴 고려시대부터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유구는 〈임원십육지〉에서 숭늉을 숙수(熟水)라고 했고 고려 숙종 때 〈계림유사〉에는 익은 물로 표현되어 있다. 식사 후 달콤한 후식 대신 구수한 슝늉을 챙겨보는 것도 또 하나의 문화를 찾는 것이 아닐까? 40대 이상이면 가끔은 그리운 이 누룽지와 숭늉의 추억을 이제 다시 불러오고 싶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수필문학가 이관희가 쓴 글을 발견했다. “우리는 누룽지를 잃었습니다. 대신 라면과 일회용 반짝 문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초가지붕을 잃었습니다. 그 속에서 도란도란 소근거리던 아빠 엄마의 정다운 말소리를 잃었습니다. (중략) 우리는 냉장고와 세탁기와 전자오븐을 얻었습니다. 대신 앞치마에 밴 엄마 냄새를 잃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룽지만 잃은 게 아니라 누룽지와 함께 했던 따뜻한 정과 추억도 다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누룽지는 속칭 누룽갱이·가매치·가마치·눌은밥이라고도 한다. 간식거리가 귀했던 시절에 우리는 밥을 지을 때 일부러 밥을 많이 눌러 누룽지를 많이 생기게 한 다음 기름에 튀겨서 과자처럼 먹기도 했다. 그러나 전기밥솥이나 압력솥에 밥을 하는 요즘, 우리는 누룽지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최근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이 누룽지를 찾는 사람이 꽤 있어서 점점 누룽지 관련 제품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피자, 햄버거, 각양각색의 과자들은 정말 맛있기는 하다. 요즘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은 혀에 닿는 순간 그 맛의 세계에 쉽게 중독되지만, 누룽지는 계속 씹어 먹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요즘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염이나 장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는 누룽지 한 그릇은 어떤 병원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료식이 되기도 한다. 옛날 문헌에는 누룽지가 약으로도 쓰였다는 말이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 ‘취건반(炊乾飯, 누룽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에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으로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 즉 열격(噎膈)은 누룽지로 치료한다. 여러 해가 된 누룽지를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 그 다음 음식을 먹게 되면 약으로 조리해야 한다.”

▲ 플리커

요즘 현대 한국인들은 쌀을 거의 먹지 않는다. 최근 뉴스를 보면 한국인들의 연간 쌀 소비량이 60㎏ 정도로, 하루 기준 공기밥 2개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리는 쌀 대신 무얼 주로 먹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 밀가루 음식에 빠져 살 것이다. 라면, 피자, 햄버거 등은 모두 밀가루 음식이다. 밀가루는 글루텐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장이 민감한 사람들은 소화하기 어려운 곡류이다. 또한 정제 처리를 많이 해서 신진대사에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부족한 편이며 대부분의 영양은 탄수화물뿐이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누릉지에 잡곡을 입히면 건강의 미학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섬유소와 단백질까지 함유된 잡곡을 눌러 만든 누룽지는 영양과 함께 고소함뿐만 아니라 예전의 정과 추억을 되돌려 줄 수 있다.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라는 고명석 교수의 책 제목이 엉뚱하게 떠오른다. 필자는 누룽지에 영양을 입히고 싶다. 백미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다양한 잡곡으로 보완하면 된다. 잡곡 누룽지는 잃어버린 옛 추억과 건강을 함께 생각하면서 쌀에 미학을 입히며 영양을 설계하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설탕에 중독된 우리의 아이들에게 고소함과 사랑이 담긴 엄마표 과자로 누룽지를 변신시킬 수 있다.

누룽지도 요즘은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는다. 누룽지 백숙은 이미 유명하고 누룽지 스낵이나 누룽지 강정 등 요즘 아이들 입맛에도 맞는 다양한 누룽지 요리가 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전문점에서도 누룽지 스파게티가 인기몰이를 한다고 들었다. 또한 즉석라면처럼 끓는 물을 붓고 2~3분 뒤면 구수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 누룽지는 첨가물과 나트륨 가득인 가공식품들보다 사랑이 담긴 엄마의 밥처럼 멋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누룽지에 영양을 설계한 현대판 잡곡 누룽지가 탄생하여 한판 승부수로 가공식품의 시장에서 뒤집기를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