財多身弱四柱역시 印綬가 용신, 태어난 시를 몰라도 앞에 있는 오행들이 金氣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木(목)이 용신이다. 공부를 많이 하신 것을 보면 乙巳시가 아닌가 싶다. 財가 흉신인 관계로 부친과 사이가 나빴고, 계모가 탕녀에 성질이 사나워 고통스럽게 지냈다.

대운이 寅卯辰巳午未로 흘러 9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란 별명이 붙었고, 벼슬은 병조판서에 올랐다.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고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의 이견대립으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임진왜란의 엄청난 화를 당한 것은 역사적으로 통분할 일이다.

당시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좀처럼 의견의 통일이 안 되는 시점이었다. 역사적으로 어느 권력이라도 음과 양의 대립은 무조건 발생하는 것이 자연의섭리인데, 이 부분에서 의견대립은 있어도 民本주의를 잊어버리고 사리사욕에 의한 의견대립은 절대 안 된다. 물론 과거, 현재, 미래에도 이와비슷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구조적 결함이지만, 적어도 민본과 연관된 부분만큼은 제도권에서 만들어야한다. 정치는 강력한 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덕이 앞서서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 때에 비로소 나쁜 짓들을 안 하는 것이다.

율곡선생같이 훌륭한 선비도 동인과 서인의 붕당정치를 막지 못한 것을탄식하고 후회하였다. 어느 정권이나 권력이든지 간에 각자의 의견대립은 있는 것인데, 도쿠가와 방식은 의견대립으로 회의를 할 때는 욕도 하고, 싸움도 하지만, 일단 싸움이 끝나고, 의견 대립이 정리되어 최종적으로 결정이 난 후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역적으로 간주하여 바로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정책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붕당정책은 소멸되어 가신들 간에 더러운 이간질이나 분탕질을 못하게 된다.

100여년을 부모형제도 못 믿는 세상이 되어 버린 일본의 전국시대의 무사들이니 싸움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족속이 되어 조선은 물론 중국까지도 쳐들어가겠다는 히데요시는 대단한 놈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보면, 죽일 놈이지만 일본에서 보면 태양의 아들이라고 떠들어 댈만하였다. 조선에서 율곡선생 같은 분은 일본의 사정을 알고 있어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 국민의 관심을 대륙으로 쏠리게 하여 자국의 안정을 취하려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기에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던 것인데, 무능한 선조가 들어주지 않아 임진왜란이란 어마어마한 전쟁이 일어난다.

여기서 후세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有備無患] 이 네 글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 “네, 율곡선생께서 甲申(1584년 2월 27일 양력)년, 丙寅월, 甲午일에별세하였는데, 申년의 흉신 운을 만나 명을 다한 것 같습니다. 대운은巳(화)대운에 巳酉丑삼합으로 흉신 대운입니다.” “맞는 말이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장수하였을 텐데, 안타깝다. 역학을잘 아시는 분이었는데, 당시의 과학이 발달하지 못해 체력관리를 못하였던 것 같다.

율곡선생의 사주는 身弱사주, 유성룡의 사주는 身旺사주여서 장수하였던 같다. 서애의 사주도 풀어보자” “네, 유성룡은 1542년, 11월 7일(양력)생입니다. 관찰사 유중영의 둘째아들이고, 그 형은 겸암 유운룡, 경상도 안동부 하외동 사람입니다. 사주는 아래와 같습니다.”
甲 丁 庚 壬
辰 卯 戌 寅  (서애 유성룡의 사주)
60  50  40  30  20  10
丙  乙  甲  癸  壬  辛
辰  卯  寅  丑  子  亥

“벽갑劈甲에 寅午戌삼합되어 財官이 용신되어 亥子丑대운에 나라의 동량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나이가 같고, 辰(토) 상관이 좋은 작용을 하여 사주가 매우 좋다. 이런 사주를 상격사주라고 한다. 나라의 재상이 될 만한 그릇이었기에 47세 1588(戊子)년에 대제학, 49세 1590년(庚寅)에 상국에 임명되고, 50세 1591년(辛卯)에 우의정, 51세(壬辰)영의정, 도체찰사 풍원부원군에 이르렀다.

金氣와 水氣에 승진한 것을보면 용신은 財官과 食傷을 쓰는 사주가 맞다. 대운에선 받쳐주지 않아도 년운이 좋으면 승진을 한다. 고로 년운이 매우 중요하다. 壬午년(1582)의 경연에서 십만양병설을 부정한 것은 큰 실수로서 흉신 운이었다. 나라의 영의정이면서도 본인의 운을 모르니 본인들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네,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습니다.”“당연하다. 임금도 잘못하면 손가락질뿐이 아니라 욕을 실컷 먹게 되는것도 모자라 사후에도 이름 석 자에 욕을 해대는데, 그것만큼은 견딜 수없는 것이다. 육이 붙어 있을 때 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 군인들이 도망만 다닌 것은 자자손손 그 이름에 먹칠이 되다 보니, 이상한 후손들이 이상한 조상들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파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