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새로운 시대의 희망으로 부상하며, 비단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 전반에 스타트업 대항해시대가 연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비상’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테라노스의 사례가 단적이다. 오래된 ‘거품’에 대한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테라노스는 스타트업 열풍과 더불어 열풍을 주도하는 스마트 머니의 방향성, 그리고 언론을 포함해 묻지마 찬양만 늘어놓는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 엘리자베스 홈즈. 출처=플리커

테라노스의 CEO 엘리자베스 홈스는 2003년 스탠퍼드대학교를 중퇴하고 19세의 나이로 ‘테라노스’를 창업해 11년 동안 연구에 매달린 끝에, 피 한 방울로 240여개의 각종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 ‘에디슨’을 개발해 지난 2014년 공개했다. 테라피(Therapy)와 다이그노스(진단, Diagnosis)의 결합어인 테라노스(Theranos)의 혈액검사방법은 검사 비용을 기존 검사비의 10%로 감소하는 한편 각종 질병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당장 엘리자베스 홈즈는 ‘제2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며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015년 10월 16일 보도에서 신화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라노스가 제공하는 240가지의 혈액검사 항목 중 단 15개 항목만이 테라노스의 기술인 ‘에디슨’을 통해 검사되고 나머지는 지멘스 같은 다른 혈액 검사 기기로 이루어졌다.

이후 테라노스가 테스트 과정에서 양을 늘리기 위해 희석된 혈액 샘플을 사용했다는 증언도 등장하며 상황은 악화되었고, 결국 협업을 약속했던 미국 최대 약국 업체인 월그린은 협업 계획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는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기기 에디슨의 부정확성을 문제 삼아 최소 2년간 혈액검사 사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으며, 캘리포니아 주 연구소의 사업 면허를 취소하고 홈스가 애리조나주에 있는 연구소를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것도 금지했다.

테라노스는 기업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그 기업가치는 1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으로 여겨졌다. 명실상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으로 발전하며 엘리자베스 홈즈가 보유한 테라노스사의 지분가치는 36억달러(약 4조원)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신화는 단 한 순간,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는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테라노스 사태가 모든 스타트업의 상황을 대표할 수 없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이상광풍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스마트머니의 흐름이 과연 2000년대 초반의 흐름과 완전히 다를까? 스타 탄생을 기원하며 준비되지 않은 미완의 대상에게 무거운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스타트업 자체가 신기루에 지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비약이다. 하지만 최근 업계를 둘러싼 다양한 분위기와 더불어 이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더욱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스타트업 업계를 살피면,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버릴 수 없다는 점도 명확하다. 이러한 가능성은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정보의 투명성, 그리고 감정을 배제한 냉정하고 치열한 게임의 법칙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 나아가 실패를 용인할 수 있으며, 가짜를 배격하고 관행을 털어버리는 한편 스타트업 업계 자체가 타 업계와 비슷한 수준의 엄정한 잣대를 스스로 체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정보의 공개 및 지원, 생태계 조성의 ‘발판’으로 활동해야 하며, 불필요한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또 언론도 명확한 사실 확인 및 검증을 통해 스타트업 업계를 진흥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스타트업 업계도 변신해야 한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감수하며 발전적인 방향성을 고집해야 한다. 묻지마 지원에 대한 스스로의 고찰과 더불어 자생력을 갖추고 타 업계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폐쇄성보다 개방성을, 의존보다는 자립의 방법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스타트업 열풍은 분명 2000년대 초반의 닷컴버블과 다르다.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으며 스마트 머니가 냉정하게 판세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나아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어야 할 스타트업의 미래는 경제를 넘어 전 영역의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직 이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환경 자체가 비정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강력하고 발전성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이들을 돕자. 정정당당한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온 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가짜를 배격하고 스타트업 업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는 것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고인 물은 썩어 버리지만, 흐르는 물줄기는 하천이 되고 강이 되어 궁극적으로 바다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