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펴냄

 

대단한 저술이 나왔다. 종(縱)으로는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00여년에 걸친 회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횡(橫)으로는 권력과 문명의 흥망성쇠에서 회계의 역할을 탐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회계와 관련된 낯선 역사적 사례들이 풍부하게 발굴돼 있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BC 63~AD 14)는 개인적인 회계 기록을 바탕으로 <업적록>을 썼다. 로마는 각 가정의 가장에게 가계부를 기록하도록 했고, 이 가계부를 세리들이 감사하게 할 정도로 회계가 번성했다. 그러나 국가 회계에는 기만행위가 만연했다. 키케로는 부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회계장부를 부실 기재하여 카이사르에게서 돈을 훔쳤고 서명까지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한을 품은 안토니우스는 키케로가 죽은 후 부관참시를 했다.

이 같은 로마의 역사는 회계에 관한 한 시공을 초월해 반복되어 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계를 투명히 하기는 어려운 반면, 회계 부정에 대한 유혹은 강하고 끈질기며 권력자들은 회계장부 공개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복식부기는 1300년 무렵 토스카나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는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는 필수적인 도구이자 재무 관리의 근간이 됐다. 국가 회계는 행정부를 심판하고 책임을 묻는 데 필요한 ‘대차 균형’이라는 개념도 가져왔다. 대차균형이 잘 이뤄졌다는 것은 통치를 잘했음을 뜻했다. 1340년 도시국가 제노바 공화정은 중앙정부 관청에 대형 등록부를 두고 재정을 복식부기로 기록했다. 피렌체의 경우, 1427년 법에 따라 피렌체의 토지 소유자나 상인은 복식장부를 기록해 카타스토(Catasto)라고 하는 정부의 세금 감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16세기 들어 이탈리아 도시공화정이 쇠락하고 거대한 절대군주제가 등장하자 회계에 대한 관심은 희미해졌다. 당시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복식부기 회계는 사라졌다. 16세기 스페인 제국의 펠리페 2세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회계에 관심을 가졌지만 어느 군주도 14세기 제노바를 비롯한 북이탈리아 공화정만큼 안정적이고 중앙집중적인 복식회계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선거제 정부가 등장한 19세기 영국에서도 부패와 무책임이 만연했다. 재무 책임성 메커니즘을 설계한 초기 미국도 도금 시대(Gilded Age)에 악덕 자본가, 대규모 분식회계, 재정 스캔들과 재정 위기에 빠졌다.

재무 책임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달성하기 힘들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건 정부 차원에서건 마찬가지다. 회계가 점점 전문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책임성이라는 과업은 우리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규제자들과 감사관들조차 미로처럼 복잡한 숫자와 재무 대수, 초고속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와 부채담보부증권 같은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아무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막아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에서 얻을 교훈이 있다면, 회계를 문화의 일부분으로 활용하고 그것을 문화 안에 녹여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