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리석다지만 이리 어리석을 줄은 몰랐다. 주판이 계산도구로 시작돼 1642년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이 톱니바퀴를 이용한 수동계산기를 고안했으나 덧셈과 뺄셈밖에 할 수 없었고, 1671년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곱셈과 나눗셈이 가능한 계산기를 발명했다.

이후 세계 2차대전 전후로 전자회로가 기계식 연산장치를 대체하고 디지털 회로가 아날로그 회로를 대체하는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현대식 컴퓨터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 후 시대를 거쳐 오면서 80년대 학번인 필자는 대학시절 포튜란, 알골, 피엘원, 마크원, 애니원, 에드삭, 에드박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며 아주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국영수와 못지않게 컴퓨터는 필수과목이 되어있었고 이것을 모르면 미래를 살 수 없다는 듯 신문맹을 가늠하는 선택의 여지없는 강압적 수학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인간과 컴퓨터가 체스게임을 하고, 인간과 컴퓨터가 바둑시합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기 시작한다. 매일같이 언론과 방송, IT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에서는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거라는 둥,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거라는 둥 인간은 컴퓨터의 지배를 받게 될 거라는 둥 하며 적대적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는 얼마전 컴퓨터가 대신 작성한 기사도 SNS에 올라온 젓을 본적이 있다. 기자들 밥그릇 또한 위험해 지는가?

이렇듯 지금 우리는 로마시대의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Gladidator(Gladiator+data의 합성어)들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는 어리석은 군중의 모습이 되어있다.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은 우주전체 지식의 4%밖에 안된다는 어느 우주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그 4%라는 것도 기준점이 모호한 것이어서 실제로 인간의 지식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굳이 알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인간 역사의 외형은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였고 내면의 모습은 작은 알갱이로 쪼개고 부숴서 본질을 증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과학과 수학이 결국 그런 학문 아닌가? 이 속에서 인간은 많은 것을 얻고 증명한 것 같지만 그 가운데 잃어 간 것은 형용을 회피해서 그렇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똑똑한 인간의 결과물들이 또다시 인간을 억압하고 살육하고 파괴하는데 사용될 거라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것은 그렇게 쓰여 지는 결과물들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을 그렇게 사용하는 인간들에게 원죄를 물어야 한다.

필자는 스포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유에프씨 같은 싸움을 가끔씩 볼 때가 있다. 검과 방패 대신 맨주먹에 가까운 글러브하나 끼었을 뿐이지 그 때의 그 글래이에이터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피가 터지고 눈이 찢긴 가운데서도 때리고 맞아야 하는, 그리고 피가 튀고 철철 흐를 때마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당시처럼 손가락 하나로 죽고 살리던 시대는 아닌지라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위안은 되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은 참 괴리하다.

A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강한 검투사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죽이고 짓밟는 그런 검투사는 더 이상 양성하지 말아야 한다. 로마시대의 글래디에이터들이 현재 글래디데이터로 부활한 듯 하여 씁쓸하지만 글래디데이터들과의 못숨을 건 격투는 없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좀 더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위해 그동안 증명하고 짜내고 모아온 것들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결과로 사용된다면 세상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글래디데이터들을 보면서 악을 이야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골몰하고 혹사당하며 시달렸던 정신적 육체적 노동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만든 작품이 AI아닌가? 그것이 우리 눈앞에 글래디에이터를 연상하게 하는 글래이데이터로 보인다면 우리는 아주 고통스러운 미래를 살게 될 것이다.

어느 글로벌 장사꾼이 머리 좋은 한 인간을 상대로 제대로 공포감 조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본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이 만들어 놓은 배트맨의 제대로 편집된 예고편처럼 말이다. 우리는 기 죽을 필요가 없다. 그 상대가 글래디데이터라도 우리는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 몇몇 사고의 기준점이 다른 때깔 좋은 지식인들이 인간과 컴퓨터의 전쟁이 곧 시작될 것이고 그리되면 인간은 결국 많은 부분에서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 앉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 개인의 환타지일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밤 검과 방패를 들고 가죽치마에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신고 컴퓨터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루고 생환한 후 아침에 늘어 놓는 무용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 글래디데이터에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다만 한가지 고민은 해야한다. 그 글래디데이터들이 대체하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것이다. 그 시간 필자는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작고한 프린스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애도하는 파티를 열 것이다. 그리고 앤딩은 아바의 음악을 들으며 지중해를 꿈 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