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재성 기자

‘장난 아니네.’ DJI에 새로 출근한 그가 느낀 첫인상이다. 전에 일하던 링크드인과 비교해도 DJI의 스타트업 색채는 무척이나 짙었다. “직원들 평균 나이는 20대 중반쯤 됩니다. 모든 직원이 인상 깊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하더라고요.”

오너십(Ownership)은 마치 공기처럼 존재했다. DJI 직원들은 하나같이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지만 그들에겐 일과 여가가 따로 없었다. “야근을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너십 덕에 그냥 다 해요. 그러니 회사도 빨리 성장한 게 아닐까요?”

오너십은 억지로 요구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군수용이 아닌 민간용 드론은 여전히 새로운 산업 분야다. 이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가 DJI다. 직원들은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DJI에서 현실화되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했다. 성공 경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오너십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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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파이어가 날자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그는 문태현 DJI코리아 법인장이다. 서울 출신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제일기획 싱가포르법인과 링크드인 홍콩법인에서 일했다. 지난해부터는 DJI 본사에 합류했다. DJI코리아가 설립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DJI로 직장을 옮기기 전엔 드론과 깊은 연결고리가 있진 않았다. 링크드인에서 일할 당시 업계 트렌드를 조사하던 그는 드론과 DJI를 알게 됐다. 당시 적을 둔 홍콩에서 버스 타고 1시간 거리인 심천에 DJI 본사가 있었다.

“DJI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의가 왔어요.” 이직을 결심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DJI 드론이 그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인스파이어를 보는 순간 DJI에 입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이 드론을 보고 ‘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를 옮긴 그는 DJI에서 한국시장 개발을 담당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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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일궈낸 글로벌 시장 점유율 70%

DJI는 2006년 탄생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스타트업이지만 세계 소형드론 시장 1위 회사로 올라섰다. 7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위상이다. 지난해엔 매출 10억 달러(약 1조1550억 원)를 달성했다. 2012년에만 해도 매출은 2600만 달러(약 300억 원)에 불과했다. 현재 기업가치는 약 10조 원으로 평가받는다.

DJI가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터닝포인트는 2011년 말에 찾아왔다. 그 당시 DJI는 일체형 드론인 팬텀 시리즈 처녀작을 출시했다. 그 전까지 DJI는 비행 컨트롤 시스템을 주로 제작하는 회사였다.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이다.

팬텀 출시는 모험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체형 드론이 과연 시장에서 먹힐까 의문이었죠. 이전 사례가 없었으니까요. 예상과 달리 팬텀이 일으킨 파장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우리도 일체형 드론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이토록 확실한지 몰랐죠.” 문 법인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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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인재들이 DJI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

팬텀의 성공으로 DJI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참고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가능성을 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만큼 새로운 시장이라는 뜻이니까. “우린 내부적으로 제안서를 발표할 때 이전 사례를 언급하는 법이 없죠. 보통 회사 같으면 선례가 없으면 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DJI는 정반대입니다.”

DJI 창업자 프랭크 왕 CEO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절대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마라.”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는 것은 괜찮은 게 아니다.” 쉽게 얘기하면 쉽게 만족하지 말자는 거다. 이 두 가지는 DJI의 경영철학이자 기업의 미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선례가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게 됐다.

회사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만큼 직원 수도 빠르게 늘었다. 문 법인장이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전체 직원은 약 3500명이었다.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현재는 5000명이 넘는다. 누군가 아이디어만 있으면 새로운 팀이 계속 생겨났다. 주니어든 부장급이든 DJI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회를 줬다. 이는 동기부여에 있어 특효약이었다. 참고로 DJI 기본 직급체계엔 팀장과 팀원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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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만 가득할 것 같은 DJI 직원들 머릿속에도 위기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문 법인장이 그랬다. “위기요? 사실 매일매일이 위기예요. 우리 직원들은 항상 경영진과 소비자로부터 아이디어를 내라는 압박을 받죠. 진짜로 모방할 게 없어요. 그런데 매일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매일매일 진보를 안 하면 그게 우리에겐 리스크니까요. 도태가 되는 길이죠.”

그렇다면 문 법인장이 보는 DJI의 핵심 경쟁력은 뭘까. 다름 아닌 ‘인재’를 꼽았다. 세계의 인재들이 DJI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전 지금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데, 주변 지인들이 직장을 고를 때 연봉을 잘 안 봅니다. 저처럼 30대 초반인 그들은 현재의 모든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를 지닌 회사를 선택하죠. DJI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입니다.”

DJI가 인재를 끌어들이는 최고의 미끼는 자율적인 문화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경력이나 직급에 상관 없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문화가 DJI에 존재한다. 자연스레 DJI는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짧은 시간에 인재가 몰리면서 DJI의 경쟁력이 빠르게 커진 겁니다.” 문 법인장은 말했다.

CEO도 5년 후 DJI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DJI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창업자인 프랭크 왕 CEO 얘기다. 드론계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인물이다. 37살 젊은 나이에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 인물 치고는 대중에 알려진 부분이 많지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분기별 한 번씩 세계에서 한 매체만 골라 진행한다는 후문이다.

“프랭크요? 엄청 겸손하죠!” 문 법인장은 지난 1월 사내 연례 파티를 회상했다. “프랭크가 제 옆자리에 앉았어요. 술은 정말 많이 먹었는데 저 보고 계속 고맙다고 했어요. 한국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죠. 인간적으로 정말 매력 있는 분입니다.”

▲ 사진=박재성 기자

모든 직원들은 그를 그냥 ‘프랭크’라고 부른다. 문 법인장이 기억하는 프랭크는 격의 없고 소탈한 캐릭터다. “본사 4층에 식당이 있거든요? 식사를 하다보면 뒤에 와서 밥을 먹고 계세요.” 증언은 이어졌다. “프랭크는 비서실 한 직원과 보드게임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맨날 프랭크를 이깁니다. 그 친구는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니죠. 프랭크는 엄청 열 받아 하고요(웃음). 그는 직원들과 진짜 격의 없이 지냅니다.”

그렇다고 프랭크 왕이 허술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DJI의 앞날에 대해 특이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프랭크가 말하길 자긴 5년 후에 DJI에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모르겠대요.” 이게 무슨 말인가. 리더라면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 직원을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 법인장은 덧붙였다. “그 5년 동안 훌륭한 인재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프랭크 자신도 생각 못한 제품이 나오는 것을 바라는 거죠. 이걸 DJI 비전으로 삼고 있는 겁니다.” 프랭크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인재로 본다. 5년이고 10년이고 그런 인재가 기대 이상의 DJI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게 프랭크의 생각이다. 그들과 함께 프랭크는 대륙을 넘어 세계로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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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른 회사 기술보단 철학을 벤치마킹한다”

DJI의 라이벌로 급부상한 드론 회사가 있다. 홍콩 소재 유닉(Yuneec)이 그 주인공이다. 인텔로부터 6000만 달러(693억 원) 투자를 유치하면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DJI가 유닉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DJI는 내부적으로 유닉을 경쟁사로 보지 않는다는 게 문 법인장의 설명이다. 주변 드론 회사보다는 협력할 수 있는 회사를 더 주시한다고 그는 말했다. “내부적으로 우선순위가 달라요. 드론 경쟁사를 분석하기보다는 신생기업을 찾아 협업할 방안을 찾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죠. 실제로 시간 투자도 그 부분에 훨씬 많이 하고 있고요.”

한편 DJI가 애플과 어딘지 비슷해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우린 애플과 공통점이 많아요. DJI는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잖아요. 이는 애플의 철학에 부합하는 부분입니다. 또 제품이 눈에 보기에 예쁘면서도 디자인 자체가 기능에 참여를 해야 한다는 원칙도 두 회사가 공유하고 있고요. 그러니 소비자가 우릴 ‘드론계 애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우리 역시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애플말고 영향을 받은 업체를 묻자 의외로 ‘테슬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론 머스크가 이끄는 고성능 전기자동차 회사다. “부서마다 영향받은 업체가 다르겠지만 굳이 언급하자면 테슬라입니다. 이들은 전기자동차 시장을 개척하고 있죠. 우린 다른 회사의 기술보단 철학을 벤치마킹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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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콘텐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드론을 만드는 DJI. 그들이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콘텐츠다. 최근에는 드론으로 촬영한 항공 사진·영상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인 ‘스카이픽셀’을 오픈했다. 많은 사람들이 DJI 제품으로 창작한 콘텐츠에 매료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꾸린 셈이다.

DJI는 지난 3월 한국 홍대 주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DJI 첫 해외 스토어가 바로 여기다. 중국에도 정식 매장은 지난해 12월에 오픈한 심천 매장이 유일하다. 한국 진출 역시도 콘텐츠에 무게를 싣는 차원으로 읽힌다. “DJI는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봅니다. 우리 제품을 이용해서 한국인들이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면 그 콘텐츠가 퍼지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겠죠. 밀집된 공간에서 파장이 일어 세계로 퍼질 겁니다.” 문 법인장이 지난달 12일 홍대 매장 오픈 당시 전한 말이다.

오픈 이후 한 달이 지났다. 문 법인장은 지난 한 달 동안 거둔 성과가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주말 기준으로 스토어에는 하루 평균 1000명 정도가 찾고 있다. “오픈하기 전에 꿈꿨던 장면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지금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픈 이래 4학년짜리 초등학생이 매주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와서 드론을 구경하다 갑니다. 사진도 찍고요.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이죠. 오픈 전부터 보고 싶었던 모습입니다.”

물론 한국 시장 공략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얼마 전 스토어 직원이 AS 문제로 항의하는 소비자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불미스러운 사건은 해당 소비자가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일파만파 퍼졌다. “저희가 정말 실수한 겁니다. 시행착오였죠.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게 나았는데 결국은 발생했으니 철저한 교육을 통해 개선하는 게 우리 할 일입니다.” 문 법인장의 설명이다.

▲ 사진=박재성 기자

“함께 글로벌 대박 터트릴 한국 파트너 찾습니다”

DJI코리아와 문 법인장은 한국에서 할 일이 많다. 일단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역 문화 허브로 조성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DJI는 매장 지하와 옥상을 문화공간으로 디자인했다. 향후 지하 공간은 독립영화 감독이 시사회를 진행할 수 있도록 무료 대관할 예정이다. 다양한 홍대의 아티스트들에게도 공간을 개방할 계획이다. 옥상에서도 콘서트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굳이 드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홍대 로컬 문화에 녹아들겠다는 것이다.

기체를 조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도 한글화를 진행 중이다. 많은 드론 유저들이 원하던 부분이다. 원래는 팬텀4 출시 시점인 올해 1분기에 한글화를 마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해 작업이 늦어지면서 오는 3분기를 목표로 한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함께 일할 파트너 회사를 찾는 것이 DJI코리아의 목표다. 문 법인장은 말했다. “DJI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지하철 QR 코드 광고가 등장했을 때 그 아이디어에 세계가 놀랐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지닌 회사가 분명 한국에 많다고 봅니다. 우리와 협력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함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회사를 계속 찾을 겁니다. 국내가 아닌 글로벌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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