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한 방에서 큰 아이들 둘을 같이 재우고, 작은 방은 놀이방으로 꾸며 놓았다. 그 방에 들어설 때면 필자의 어릴 적이 생각나면서 아이들에게 부러운 감정이 생기곤 한다. 아이 키보다 훌쩍 큰 인형의 집, 주방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주방놀이, 크고 작은 인형들 외에도 수많은 소소한 장난감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장난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종이를 접어서 만든 딱지나 구멍가게에서 산 동그란 딱지 같은 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중 ‘병딱꿍’이라는 놀이도 있었는데 이는 톱니 모양의 맥주병이나 소주병 뚜껑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어느 날 필자가 만든 병뚜껑과 다른 아이들이 만든 병뚜껑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뒤집었을 때 모양이 왕관과 비슷하다고 하여 왕관 뚜껑(Crown Cap)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뚜껑을, 망치로 두들겨 고르게 펴서 동그랗게 만든 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만든 병딱꿍은 톱니 부분의 울퉁불퉁한 반면, 필자가 만든 병뚜껑은 그런 것 없이 완전히 매끈하고 평평했다.

그런 성격이 아직까지 이어진 것일까? 필자는 진료를 할 때면 항상 마무리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치아를 수복하는 치료에는 거의 Finishing(피니싱) & Polishing(팔리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하면 마무리와 연마이다. 특히 레진이라는 치료를 할 때면 이 과정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 과정이 치료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레진 치료란 이전에도 한 번 다룬 적 있듯이, 치아에 충치를 제거한 후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합성수지를 말한다. 치아와는 본딩 과정을 통해 기계적으로 접착을 할 수 있으며 점토처럼 조작이 용이하고 빛으로 굳힌 후 기계적 강도와 심미성이 우수해 치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치료를 학교에서 처음 배웠을 때는 치료의 막바지에 치아와 레진의 경계를 혹은 레진의 형태를 수정하기 위해 화이트스톤이라는 원뿔 모양의 작은 하얀 연마석이 달린 버(드릴의 비트에 해당함)를 회전기구에 끼어서 사용했다. 이것이 레진 치료의 마무리와 연마였다. 필자가 졸업하고 나서는 한동안 레진 치료의 마감은 그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에 반해 금속 재료의 경우 그린스톤이라는 거친 기구로 형태 수정 후 여러 과정을 거쳐 시중에서 파는 금속 액세서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광택을 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광택이 나는 레진 필링을 보았다. 그동안 레진 치료 후 뿌옇던 표면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이다. 마치 유리창에 서린 김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방법을 찾더라도 재료를 찾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작업에 대한 공감대가 적다 보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재료가 유통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피니싱과 팔리싱을 할 수 있는 기구를 찾아 약간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표면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기구를 접하게 되었고 현재는 그 기구를 이용해 만족스러운 마무리와 연마를 하곤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환자가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필자의 만족일 수도 있다. 거친 표면이나 매끈한 표면이나 물을 뿌려 놓으면 구분을 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구강 내는 항상 습한 환경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치료한 지 오래 지난 레진으로 치료된 차아들을 볼 때면 분명 마무리와 연마가 치료의 결과를 좌우함을 알 수 있다. 당장 큰 차이는 나타내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필자의 진료가 명품까진 아니더라도, 마무리와 연마를 하기 전보다는 더 좋은 진료라고 생각한다.

전에 레진에 과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레진 치료를 할 때면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적당히, 쉽게 하면 빠르고 편하게 할 수도 있으련만 공을 들이면 들인 만큼 티가 나는 진료이다 보니 성격상 대충 할 수가 없다. 일상생활 태도가 그리 엄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있어서는 ‘강박증 비슷한 증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힘도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뒤에 환자가 밀리거나 시간에 쫓기면 ‘마무리와 연마를 생략할까?’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마무리와 연마 전, 후의 레진의 차이를 보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마치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씻긴 후 물기를 말끔히 닦았을 때 보이는 빛나는 말간 얼굴을 보는 기분이다. 이 기분이 들면 치료 도중의 스트레스와 노고가 보상받는 느낌이 들면서 드디어 치아에서 손을 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