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elf)가 쓰러졌다. 2016년 3월 31일 일본 게임사 엘프가 사실상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까지 거대한 온라인 애도 물결이 일었다. “무슨 게임을 만든 회사인지는 잘 모르지만 눈물이 난다.” 이런 모르쇠 타입 애도가 주를 이뤘다.

엘프는 ‘에로게’를 만드는 게임사다. 에로게를 다른 말로 하면 ‘야겜’(야한 게임)이다. 모르쇠 타입만큼이나 회상 타입 애도가 쏟아졌다. “엘프가 만든 게임에 등장하는 미소녀들은 모든 3040의 연인이었어요.” 또 있다.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 엘프라는 이름은 아찔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나 더. “엘프는 사라지지만 그녀들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할 겁니다.” 소수 반응으로는 문제의식 타입 애도도 있다. “이들 게임을 우리가 돈 주고 했다면 엘프는 이미 블리자드 같은 게임사가 됐을 텐데 말입니다.” 그 시절 엘프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왜들 이토록 감상 젖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 출처=엘프

우주 명작(?) ‘동급생’을 만든 그 회사

엘프는 1989년에 태어났다. 핵심 창업 멤버는 3명이다. 초대 사장 히루타 마사토는 유한회사 키라라의 브랜드 페어리테일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일러스트 작가 아비루 토시히로와 프로그래머 카네오 쥰도 함께했다.

시작은 일개 하청 개발사였다.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1989년 11월 처녀작 ‘드래곤나이트’가 등장했다. 던전 깊숙한 곳에 감금된 미소녀들을 구하러 떠난다는 스토리다. 구출된 미소녀가 당신에게 은혜에 보답(?)하는 ‘19금’ 게임이다. 판타지 RPG와 야겜을 절묘하게 버무렸다.

그로부터 3년 뒤 누군가는 ‘우주 명작’이라 부르는 게임이 탄생했다. 불후의 명작 ‘동급생’이다. 90년대 청춘들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던 게임이다. 야겜 최초로 10만 장 판매고를 돌파하기도 했다. 동급생이 성공하자 야겜이 창궐했다. 모두 동급생에 어느 정도씩은 영향을 받은 모습이었다.

1995년에는 ‘동급생2’가 나왔다. 1994년에 출시된 ‘두근두근 메모리얼’과 함께 두 게임은 엘프 시대를 지켜갔다. 야겜은 변태 취향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 유저의 공유물이 됐다. 엘프는 이 말고도 ‘애자매’,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 ‘유작’ 등 무수한 히트작을 남겼다.

▲ 출처=엘프

한국 유저들도 엘프 게임에 청춘을 바쳤다.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엘프 게임을 통해 19금 세계에 눈을 떴다. 엘프의 게임은 심의 규정 때문에 한국에 정식 출시된 적은 거의 없다. 어둠의 경로가 있었다. PC통신에서 누군가가 불법 다운로드한 게임이 3.5인치 디스켓을 중심으로 퍼져 널리 세상을 이롭게(혹은 해롭게) 했다.

‘동급생2’가 한글화를 거쳐 국내에 정식 발매되기도 했다. 그런데 심의를 의식한 나머지 많은 장면을 덜어냈다. 야겜에 야한 장면이 깡그리 빠진 것이다. 핵심이 없는 ‘사이버 에로틱 연애 시뮬레이션’이었다. 유저들은 어둠의 경로를 되밟았다.

뉴 밀레니엄과 함께 시련이 왔다

올해 3월 1일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엘프가 잠정적으로 문을 닫는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전했다. 예정대로 3월 31일부로 문 닫았다. 이후에도 출시 게임 사후 지원은 약속하면서 유저와의 신의는 지키려 했다. 예견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안타까움은 바다가 됐다.

▲ 출처=엘프

엘프 게임을 사랑하던 이들은 지난해 이미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마로의 환자는 가텐계3’ 카피라이트는 “당신과 함께 마지막 춤을!”이었다. 팬들은 이것이 엘프의 마지막 게임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러니 저 카피라이트는 유언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후 게임 엔딩 크레딧에 “27년간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심증은 현실적 무게를 얻었다.

위기가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엘프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핵심 멤버가 속속 떠나면서다. 일러스트 작가 요코타 마모루와 다케이 마사키가 떠나 자기 살림을 차렸다. 뉴 밀레니엄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창업자 히루타 마사토까지 회사를 떠났다.

엔진이 고장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0년대의 엘프는 신작보다는 이전 작품을 리메이크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 선보인 회심작 ‘하급생’ 시리즈는 실패의 쓴맛을 봤다. 도스에서 윈도로 PC OS(운영체제)가 전환되는 시대 흐름에 엘프는 어딘지 어설프게 대응했다. 이 역시도 몰락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반등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흉흉하던 2008년에 엘프는 ‘미육의 향기’를 출시해 한 줄기 빛을 봤다.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다. “엘프가 부활했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그러나 2년 뒤 발매한 ‘인간 데브리’가 크게 실패하면서 반전 기회는 무산됐다.

▲ 출처=엘프

엘프는 2014년 치명상을 입었다. 사내 불화로 직원이 대부분 퇴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993년 엘프는 자매 브랜드 실키즈를 만들었다. 엘프와는 지향점이 다른 게임을 선보였다. 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능욕물이 실키즈의 전매특허였다. 퇴사한 실키즈와 엘프 직원들은 실키즈 플러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엘프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핵심 멤버가 빠진 데 이어 대부분 인력이 회사를 떠나면서 정상적인 게임 개발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에는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한때 야겜의 전설로 불리던 회사는 이렇게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엘프가 낳은 그녀들이 영구보존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