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이오·제약 산업은 그동안 해외 의약품의 API(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s, 원료의약품) 수출과 완제의약품(주로 제네릭)의 국내 발매를 통해 성장했다. 

최근에는 기업 간의 경쟁 심화와 약가 인하 압박·리베이트 쌍벌제 및 다국적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 등으로 인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게 됐다. 리베이트 쌍벌제란 제약사나 의료기기 업체 등이 의사에게 제품 사용의 대가로 금품 등을 제공할 경우 제약사와 의사를 모두 처벌하는 제도다. 이에 바이오·제약 기업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까지 진출하기 위해 신약 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 투자비용을 늘려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해외로 눈 돌리는 기업, R&D 성과 중요

지난 2012년 4월 1일부터 '기등재 의약품 일괄 약가 인하' 정책이 시행됐다. 이 정책에는 특허가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과 제네릭 의약품 약가를 같은 수준까지 조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 출처=키움증권

이코노믹리뷰에서는 지난 1월 19일 '[변화를 주목하라] 바이오시밀러 열풍, 올해도 지속 된다' 기사를 통해 제네릭 의약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경쟁적으로 의약품 가격이 하락했고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과 제네릭 시장 모두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서 오히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조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제약사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은 ETC(전문의약품)·OTC(일반의약품)·건강기능식품·진단/의료기기·피부성형제품·화장품 등 사업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갔다.

하지만 대표적 규제산업으로 꼽히는 제약업은 정부 규제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됐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수출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적 R&D를 구축해 왔고 이에 따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R&D 성과를 낸 기업이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시장성이 높은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기술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5125억원이다. 한미약품은 매출액의 20% 수준을 R&D에 투자했고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 릴리·베링거인겔하임·사노피·얀센 등과 6건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제품들이 상품화되면 한미약품은 8조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

국내 바이오·제약 업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신약개발을 위한 R&D에 집중해 왔다. 기존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하던 물질을 도입해 임상실험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국내  바이오·제약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치료제에 대한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로 이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특히 바이오 신약 개발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술이전 건수와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술 이전이 늘어나는 것은 글로벌 제약사들 역시 오리지널 및 제너럴 의약품 경쟁 심화로 인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출처=키움증권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은 생산·신약개발·임상·마케팅·유통 등 일원화 됐던 부분들을 분리해 아웃소싱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블록버스터급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가 다가온 다국적 제약사들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선진국은 의료개혁으로 약품비 절감 정책을 지향하고 있어 브랜드 의약품 수요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1970~1990년대 초 신약 R&D 비용은 5년마다 2배씩 늘어난 반면 신약개발 성공률은 감소했다.

이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한국·인도 등의 제네릭 및 개량신약 전문업체와 전략적으로 제휴를 맺거나 M&A(인수·합병)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R&D 생산성은 2010년 이후 크게 개선됐다. R&D 비용의 연평균 성장률은 낮아지고 R&D 비용 대비 FDA 승인을 받은 신약 개수는 늘었다. 신약의 5년간 판매량도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다.

R&D 전략 변화에 주목받는 CRO 시장

비용을 줄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바이오·제약 업체들이 아웃소싱을 진행하게 되면서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임상시험수탁기관) 기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CRO란 R&D 대행 기업들을 말한다. 신약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제약기업의 임상시험을 대행해주는 기관이다. CRO는 신약개발 비용절감 측면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CRO 산업은 단순한 데이터 관리 및 통계분석 서비스에서 최근 약물 발굴·신약개발·제조·운송·상품화까지 제약 산업 전 단계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역에까지 이르렀다.

세계 CRO 시장은 2014년 288억달러 규모다. 이후 연평균 11.9%로 성장해 2019년에는 504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출처=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국내의 경우 2014년 9850만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14.1%로 성장해 2019년에는 1억 9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CRO 기업은 씨엔알리서치로 1997년 설립됐다. 국내 기업으로서 씨엔알리서치와 함께 상위 3개 기업에 드는 CRO 기업은 드림씨아이에스(DreamCIS),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Global Pharma Services) 등이 있다. 하지만 드림씨아이에스는 지난해 중국 CRO 기업인 항저우타이거에 인수됐다. 드림씨아이에스는 항저우타이거에 지분 98.14%를 322억원에 인수돼 사실상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 국내에 있는 다국적 CRO 기업으로는 퀸타일즈(Quintiles), 파렉셀(Parexel), 아이콘 클리니컬(ICON plc) 등이 있다.

최근에는 국내 CRO 시장이 임상시험 품질이 높고 인프라 구조가 탄탄하며 규제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국내 CRO 기업에 위탁하는 제약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0~2015년 1월까지 국내에서 시행된 누적 임상시험 건수는 5930건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많다.

글로벌 CRO 업체들 또한 한국에 지사를 세우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1위 CRO 기업인 우시(WuXi)는 올해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포춘(Fortune) 500대 기업에도 선정된 미국 신약개발 전문업체인 퀸타일즈(Quintiles)도 2000년부터 퀸타일즈코리아를 설립 국내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파트너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기업은 퀸타일즈코리아였다.

또 신약개발 지원을 위한 정부 지원도 한 몫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한국은 아시아 임상시험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임상시험 아웃소싱 신흥시장 중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CRO 시장은 모든 분야에서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임상1상 시험 관련 시장은 연평균 11.2% 성장률을, 임상2상 시험 관련 시장은 연평균 12.4% 성장률을, 임상3상 시험 관련 시장은 연평균 14.3% 성장률을, 임상4상 시험 관련 시장은 연평균 13.1%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 출처=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정부는 지난 2013년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까지 수출 11조를 달성하고 글로벌 신약 4개를 창출, 세계 10대 제약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사들이 CRO를 통한 R&D에 집중하고 있고 글로벌 CRO들이 국내 진입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CRO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0년 국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CRO 기업은 2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기준 약 20개로 늘었다. 다만, 글로벌 CRO 기업이 임상시험을 주도하게 될 경우 국내에 관련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시아에서 한국 CRO 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추후 CRO 시장의 성장이 국내 제약 산업의 차기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