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전세가격 상승은 집값 상승의 전조다. 전세가격이 오르면 돈을 더 보태 매매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생기기 때문.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로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분양단지들이 완판을 기록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주택시장의 이상 징후가 심상치 않다. 전세가격은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매매가와 거래량은 오히려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

매매시장 관망세 속 전월세 거래량은 오히려 증가

최근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3월 7일 기준)에 따르면 전세 가격은 매매시장 위축과 봄철 이사 수요 등이 겹치면서 전세 수요가 증가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0.04% 상승한 가운데 수도권(0.06%)의 상승폭이 전주 대비 확대됐으며, 지방도 0.02% 오른 가운데 세종시(0.13%)와 충북(0.11%)이 0.1%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감정원 관계자는 “정주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신도시 및 신규입주 물량이 많은 지역에서 전세공급이 증가하고 있으나, 매매시장 위축으로 전세를 유지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특히 집주인들의 월세선호 현상으로 전세 매물이 크게 감소한 점도 전셋값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 출처=한국감정원

이처럼 전세가격 상승세는 잡히지 않고 있지만 매매시장은 오히려 움츠러들고 있다. 과거 전세가가 오르면 매매가도 따라 올랐던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광역교통망 개통, 학군 등 호재가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난주와 동일한 하락폭을 유지했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지난주와 동일한 보합세를 보였으며, 특히 지방의 하락폭이 높게 나타났다. 서울 강북권은 도심 접근성이 양호한 용산구와 동대문구를 중심으로 0.01% 오른 반면, 강남권은 그동안 ‘부동산 불패지역’으로 불렸던 강남 4구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며 0.01% 떨어졌다.

감정원 관계자는 “대출심사 강화 영향으로 매수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수도권은 보합 전환되고 지방의 하락폭이 확대되며 전체적으로 지난주 하락폭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출처=한국감정원

주택매매 거래량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5만926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4.9% 감소했다. 이는 지난 1월 대비 5.0%, 최근 5년 평균(6만8000건) 대비 12.2% 각각 줄어든 것으로, 1~2월 누계기준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23.1% 감소한 12만2000건으로 조사됐다.

금융권 대출 규제로 세입자들 “집 안사고 버틴다”

이처럼 전셋값 상승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주택 거래량 및 가격은 하향세로 돌아선 원인은 최근 주택 매매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로 관망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전·월세로 돌아서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예전에는 전세가가 오르면 매매가도 따라 오르는 추이를 보였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를 활용해, 전세가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 이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

최근 이런 추이가 잘 맞지 않고 있는 것은 시장에 집값이 하락세를 유지할 것이란 심리가 팽배해 있어 전세 계약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로 주택 매수를 위한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주택시장 침체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싣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대출 규제 강화에다 국내외 경제여건까지 불안 징후를 보이면서 전반적으로 주택 구매심리가 꺾여 있는 상태”라며 “대출 규제 및 금리 인상 가능성과 같은 부동산 시장의 악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파트 가격 하락은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수연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이달 분양물량이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지만 대출규제 등으로 수요자들의 구매심리가 꺾인 상태에서 지역별 청약 양극화 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총선 이후에 나오는 부동산정책 방향성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