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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의 맛좋은 제주이야기] 진짜 짬뽕은 그렇게 빨갛지 않다
   

이번 글도 색깔 이야기다. 색채 미학은 어느 분야에서든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요리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색깔이다. 특히나 서양 요리가 흔해진 요즘에는 커다란 접시에 한 입 크기의 음식 몇 점 올려놓고 형형색색의 소스로 밑그림을 그리듯이 몇 줄 그어주고 허브 가루 투두둑 뿌려주는 이른바 플레이팅 기술이 인기를 끄는데, 이러한 기술의 핵심도 역시나 보색 대비를 이용한 색의 조화이다. 맛 자체보다 ‘모양질’이 더 중요시되는 것 같아 그리 마음에 드는 문화는 아니지만, 결국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더라’의 서양식 버전 아니겠는가.

빨강은 대표적인 식욕 자극 색깔이다. 수많은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점의 색이 빨간 이유이다. 짬뽕도 빨간 음식이다. 빨강은 주로 고춧가루나 토마토가 담당하는데, 짬뽕은 고춧가루다. 그래서 동양 음식의 빨강은 대부분 매운 맛과 연결된다. 고춧가루의 매운 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며, 혀가 느끼는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다. 즉, 맛이 아니라 아픔이다. 최루탄의 핵심 성분이 캡사이신이라고 하면 가장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럼에도 음식을 먹으면서 아픔을 맛이라고 느끼는 것은 뇌가 혀의 통증을 중화시키기 위해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행복 또는 흥분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을 자주 겪다 보면 맛을 느낄 수 있는 기준이 점점 더 올라가 뇌가 요구하는 캡사이신 수치가 갈수록 높아진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일수록 매운 음식이 더 잘 팔리고, 극도의 매운 맛을 찾기에 이른다.

매운 맛에 대한 욕구는 색깔에 대한 편견을 낳는다. 빨갈수록 더욱 매울 것이라고 눈이 먼저 판단을 한다. 그러나 자연의 색은 시각적 만족도를 충족시키는 데에 어딘가 부족하다. 햇볕에 잘 말려 빨갛다 못해 검붉은 태양초를 빻아보라. 빨간 색이 아니다. 오히려 주황에 가깝다. 빻으면 빻을수록 그렇다. 김치용으로 거칠게 빻았을 때는 좀 더 빨갛지만, 고추장용이나 짬뽕용으로 곱게 갈면 갈수록 그 색깔은 덜 빨개서 주황빛이다. 물론 지역이나 품종, 날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선연한 빨간색은 잘 없다. 그런데도 빨간 음식은 많다. 유난히 진하고 밝게 빨갛다. 눈은 그런 빨강을 예쁘고 맛있다고 느낀다. 소비자의 욕구는 곧 식품가공산업의 먹잇감이 된다. 식품공장에선 무궁무진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빠알간’ 고춧가루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러니까 우리 가게의 짬뽕은 빨갛지 않다. 일반 고춧가루와 청양고춧가루의 배합에 따라 좀 더 빨갛게 색이 나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주황에 가깝다. 짬뽕 그릇을 받아든 손님들은 “이거 매운 거 맞죠?”라거나 “이거 빨간 짬뽕 맞나요?”라고 확인 질문을 할 때가 많았다. 평택에서 할 때는 짬뽕이 두 가지였는데, 이름부터 ‘빨간 짬뽕’과 ‘하얀 짬뽕’이었다. 전자는 고춧가루를 넣은 매운 짬뽕이고, 후자는 고춧가루를 전혀 넣지 않은 안 매운 짬뽕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덜 빨간 짬뽕을 받아든 손님은 ‘이거 하얀 짬뽕인가?’라고 의심할 여지가 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주황이 하양은 아니잖아? 널리 퍼진 외식 음식일수록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강해서 그 기준에 조금만 어긋나도 퇴짜를 맞는다. 음식은 눈이 먼저 먹는다고 하는데, 눈이 먼저 퇴짜를 놓으면 맛에 대한 신뢰도가 우물 아래로 던져 넣은 두레박 같아서 공들여 길어 올리지 않으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물론 짬뽕은 까맣지 않은 짜장에 비하면 ‘고갱님’들이 느끼는 첫 인상이 괜찮은 편이긴 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색깔은 예쁘다. 예쁘게 빨갛고, 예쁘게 까맣고, 예쁘게 노랗다. 땅에서 나는 채소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비료를 먹으면 짙은 초록색이 된다. 색을 내는 성분은 타르색소나 캐러멜색소 같은 화학물질도 있고, 치자나 연지벌레 같은 천연물질도 있다. 화학성분이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이고, 그렇다면 천연성분은 어떤가? 물론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천연색소는 괜찮다. 예를 들면, 빨간색을 내는 비트, 초록색을 내는 시금치, 주황색을 내는 당근 등이다.

   

그러나 치자나 연지벌레는 다르다. 연지벌레 암컷을 갈아서 만드는 코치닐 색소는 주로 딸기우유 등에 분홍색을 내기 위해 쓰이고, 치자 색소는 바나나우유 등에 노란색을 내기 위해 쓰이는데, 이들은 원재료 자체에 독성이 있어서 식용이 불가능하다. 금지해야 할 것을 허가해주고 허용치 또는 기준치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식품첨가물산업의 요체이다. 색을 예쁘게 내기 위해서는 색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이 세트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미국 FDA에서 소시지와 햄에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을 발암물질로 규정한다고 떠들썩했었다. 그럼에도 한국 식약처는 기준치가 낮아서 괜찮다는 둥 사용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예쁜 버섯에 독이 있듯이 예쁜 색에도 독이 있으니,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의 색이라면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연하고 투박한 자연의 색을 가까이 할 일이다.

하얀 짬뽕의 색깔은 한때 유행한 나가사키 짬뽕을 떠올리면 된다. 그때는 한국에 ‘나가사키 짬뽕’이라는 가공면류 상품이 나오기 전이었고, 원래 나가사키에서 어떻게 짬뽕을 만드는지는 몰라도 우리 가게의 하얀 짬뽕은 멸치육수와 채소를 볶는 과정에서 우러나온 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얀 국물이 특징이었다. 이 메뉴는 순전히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우리 부부를 위한 것이었다. 매운 것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데, 나는 그 반대의 호르몬이 분비되는지 어쩐지 매운 음식을 먹으면 짜증이 치솟았다. 입 속에서 번지는 통증도 참기 어려웠고, 덩달아 솟구치는 콧물은 짬뽕 먹기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었다.

짬뽕은 육수와 채소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나는 음식이다. 거기에 해물이 더해지면 감칠맛이 배가되는데, 기본은 사실 채소다. 채소를 얼마나 제대로 볶아내느냐에 따라 맛의 질이 달라진다. 흔히 짬뽕은 불맛이라는데, 이 불맛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 역시 채소다. 거기에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면 채소 본연의 맛이 많이 상실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하얀 짬뽕을 더 좋아했고, 이 맛에 흠뻑 취한 손님도 의외로 많았다. 그러다 남편은 조리 과정에서 음식 맛을 계속 봐야 했으므로 매운 맛에 점점 익숙해져갔고, 나 역시 지금은 매운 짬뽕도 즐겨 먹는다. 하얀 짬뽕이라는 메뉴가 사라진 탓도 있는데, 우리 가게의 짬뽕은 적당히 맵기 때문에 그나마 적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너무 매운 맛은 다른 모든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므로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그 맛있는 하얀 짬뽕을 지금 하지 않는 이유는 힘들어서다. 우리 가게에서는 짜장을 제외한 모든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한다. 그러다 보니 세 사람이 들어와 빨간 짬뽕 하나, 하얀 짬뽕 하나, 볶음밥 하나,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하게 되면 남편은 줄기차게 웍을 돌려야 한다. 서너 팀은 괜찮지만,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라. 남편의 요리는 그야말로 ‘노가다’가 된다. 또한 늘 손님이 일정하게 많아서 직원을 고용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메뉴를 소화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우리 부부 둘이서만 할 계획이었으므로 최대한 메뉴를 단출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짜장, 짬뽕, 탕수육이 메뉴의 전부다. 볶음밥도 코스 예약을 해야만 먹을 수 있다. 다만 손님으로 왔다가 친해진 이웃사촌들은 하얀 짬뽕도 볶음밥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름하여 ‘단골 특선’이다. 물론 한가할 때만 말이다.

식자재 마트에 가 보면, 다양한 상품의 고춧가루가 있다. 국적도 국내산, 중국산, 베트남산 등 다양하고, 이 나라 저 나라 섞은 것도 있다. 순수 고춧가루 100%도 있지만, 이런 것은 국내산이 대부분이고, 당연히 비싸다. 나머지 수입산 고춧가루에는 캡사이신이 첨가되어 있다. 캡사이신은 원래 고춧가루 속에 든 매운 성분인데, 캡사이신에 중독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 화학 캡사이신이 첨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싸다. 매운 음식 열풍은 좀 사그라졌는지 몰라도 매운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한 듯하다. 전에는 캡사이신이 주성분인 가공양념이 상품으로 나오더니, 이제는 아예 고춧가루에 캡사이신을 첨가해서 팔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한국의 고춧가루는 그다지 빨갛지도 않고, 청양고추와 같은 특정한 품종이 아니고서는 많이 맵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얘기한 색깔이니, 매운 맛이니 하는 것 모두 결정적 게 아니다.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MSG다. 짜장보다는 그 차이가 덜하지만, 짬뽕 역시 일반 짬뽕과 우리 가게 짬뽕을 백팔십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조미료를 넣느냐, 안 넣느냐 하는 점이다. 어느 식당은 닭육수를 쓰고, 어느 식당은 돼지육수를 쓰고, 또 어느 식당은 해물을 잔뜩 넣어 맛을 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조미료 맛이다. 닭을 고아보고, 돼지를 고아보면 안다. 고기만으로 육수 맛을 다 내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격이고, 설사 그렇게 해서 최고급 짬뽕을 만든다 쳐도 공장식 축산 육류는 온갖 약물과 GMO에 오염되어 있어 먹으면 먹을수록 손해다. 해물 역시 마찬가지다. 해물 값이 얼마나 비싼가. 거기다 전 세계 바다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으니, 원양산이나 수입산 등 많은 종류의 해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손해다.

자연주의 짬뽕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무MSG다. 이 귀한 맛을 알아주는 손님 역시 흔하지 않다. 사실은 이게 불과 60년 전의 진짜 맛인데 말이다. 하나둘 실상이 드러나고, 한 사람 두 사람 느껴가는 게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석유화학문명이 우리 식생활까지 완전히 망쳐왔다는 깨달음이 서서히 자연주의 시대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류외향 칼럼니스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6.03.08  0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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