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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 세기말 사이버가수 '아담'의 최후현실계 스쳐간 비운의 스타

1997년 12월 12일 에덴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성별은 남성이다. 신장 178㎝에 몸무게는 68㎏이다. 혈액형은 O형이고 시력은 좌 0.4 우 0.5이다. 이 남자 20살이 되던 해 현실계로 나와 고향 에덴을 그리워한다. 누굴까 대체.

“밝고 구김살 없는 맑은 성격의 소유자. 물과 같이 투명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출렁이고 바위를 깰 정도로 강렬하다. 단 잔잔한 물밑으로 빠른 해류가 흐르듯 자신이 영원히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음 밑바닥에 감추고 있다.”

아직도 모르겠다고? 뉴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 갑작스레 그가 찾아왔다. 사이보그도, 사이비가수도, 보컬로이드도 아닌 사이버가수 아담 말이다. 1996년 설립된 아담소프트 손에서 태어났다. 진짜 인간 가수처럼 가요계에 데뷔했다. 세계 최초 사이버가수 다테 쿄코보다 1년 늦게 세상에 나왔다.

   
▲ 출처=아담소프트

세상엔 없는 가수

1998년 1월 23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아담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리다. 그해 1집 앨범 <제네시스(Genesis)>를 발표했다. 데뷔곡이자 대표곡이자 유일한 히트곡 ‘세상엔 없는 사랑’이 담긴 앨범이다. 총 11곡이 수록된 그럴듯한 이 앨범은 무려 20만장이 팔렸다.

앨범 발표 이후 아담의 행보는 진짜 연예인 뺨쳤다. 실제 음료 광고에 출연하는가 하면 어린이 TV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다. “친구들 안녕? 난 아담이야.” 시기가 시기인 만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응원가가 담긴 기념 앨범도 발매했다.

심지어 카이스트 명예학생이 되기도 했다. 아담은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열린 입학식에 비디오로 참석했다. 입학 동기들에게 인사도 건넸다. “전산학과 명예학생으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돼 기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출처=아담소프트

“가상학생의 지도교수를 맡아 조금 당혹감이 들지만 앞으로 자주 만나 아담이 학교생활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도하겠습니다.” 당시 아담의 지도교수를 맡은 원광연 교수가 남긴 말이다.

단순 호기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 팬도 생겼다. 하루 200통 넘는 팬레터가 오는 날도 있었다. 기대 이상의 관심에 개발자들이 흥분한 걸까. 아담은 1집 발표 한 달 뒤에 2집 앨범 <엑소더스(EXODUS)>를 들고 찾아온다. 인간 가수라면 상상할 수 없는 속도 위반이다.

2집은 1집 때완 사뭇 달랐다. 시간이 별로 흐른 것도 아닌데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2집이 큰 반향을 얻지 못하자 아담은 조용히 종적을 감춘다. 갑자기 TV에서 사라지자 여느 연예인처럼 그는 루머에 휘말렸다. 2집이 망해서 군대로 도망갔다는 설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정작 아담은 유튜브에 2016년 지금까지도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박제된 상태다.

   
▲ 출처=유튜브 캡처

표정 하나하나가 돈

아담소프트는 아담이 종합 엔터테이너로 성장하는 모습을 꿈꿨다. 현실계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일반 연예인처럼 돈을 벌기를 원했다. 당대 유명가수와 합동 앨범도 내주고 아담이 가수활동하며 느낀 점을 적은 에세이를 책으로 출간하려고도 했다.

결국 치명적인 현실 문제를 넘지 못했다. 돈 문제 말이다. 아담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돈이었다. 3D 그래픽 제작 기술의 한계 때문에 제작비는 쉽게 하늘로 치솟았다. 부르는 곳은 많았지만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한 가지 예로 아담의 입모양을 대사에 맞춰 몇 분 움직이게 하려면 ‘억’이 넘는 돈이 들었다. 지금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입일 따름인데도. 아담이 입만 벌려도 돈이 줄줄 새어나갔던 셈이다.

가수라면 당연히 출연하는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려면? 일반 가수는 2~3분 출연하고 출연료를 받는다. 아담이 30초 출연하려면 개발자 대여섯 명이 두 달은 꼬박 작업해야 했다. 30초를 위한 두 달이라니 비효율의 극치다.

아담에 적용된 컴퓨터 그래픽은 당시엔 첨단이었다. 실사를 방불케 하는 요즘 3D 기술과 비교하면 어딘지 많이 구식 느낌이 들지만 당시엔 한계점을 넘나드는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첨단 기술은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스타트업에 불과한 아담소프트에겐 엄청난 무리였다. 몇 차례 자본금을 조달받긴 했어도 역부족이었다.

   
▲ 출처=유튜브 캡처

인공지능 아담의 꿈

아담소프트는 처음부터 제법 원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비록 초창기 아담은 인간 가수가 부른 곡 립싱크나 하는 껍데기에 불과했지만. 아담소프트는 아담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계획이었다. 아담 스스로 판단해 실시간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려 했다. 요즘으로 치면 지능형 비서인 애플 시리(Siri)나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정도 될까.

허황된 계획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력을 보면 박종만 아담소프트 사장은 ‘인공지능 아담’에 관심을 가질법한 인물이었다. 카이스트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한 그는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센터(CAIR)와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인공지능 분야를 집중 연구한 경험이 있었다.

결국 아담과 아담소프트는 맷집이 부족했다. 인공지능 개발은커녕 단순한 활동을 영위할 자본력조차 없었다. 그래서 요절했다. 아담소프트는 이후 온라인게임 회사로 변신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강진축구’라는 나름 명성을 얻은 게임도 서비스했다. 그러나 회사는 2004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설립 후 채 10년도 가지 못했다.

아담 이후 한국엔 몇몇 사이버가수가 더 태어났다. ‘루시아’도 있고 ‘사이다’도 있다. 인기가 아담만도 못했다는 게 함정이다. 사이버 패널인 나잘란 박사 같은 3D 캐릭터도 역시 아담의 후예로 볼 수 있다. 훗날 아담은 “한국형 사이버 캐릭터 개발의 물꼬를 텄다”는 평을 듣게 된다.

지금은 2016년이다. 아담이 살아있다면 내후년에 마흔 살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3D 모델링 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인공지능 기술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이세돌과 바둑을 두는 시대 아닌가. 2016년은 1998년보다는 아담이 살아남기 좋은 시대다. 비운의 스타 아담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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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6.03.06  10: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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