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에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글로벌 교역 부진은 물론 그 중심에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흥국 중에서도 유독 환율 변동성이 심한 원화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죄'(罪) 값을 치르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 2010년 유럽재정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과 현재 수준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두 시기의 차이점은 같은 환율 수준이지만 원화의 추가 약세와 강세로 갈렸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공포가 극에 달하는 순간일까.

지난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0.12% 소폭 하락한 1236.7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 시작과 함께 0.39% 상승 출발했지만 오히려 하락 반전한 것이다.

반면 엔/달러 환율은 최근 2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엔화는 일본 중앙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오히려 시장불안이 가속화되며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된 바 있다.

이날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인 원화와 엔화의 추이를 보면 최근 시장의 불안 심리는 잠시나마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원화를 약세로 몰았을까

작년 12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올 초부터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해 달러당 1200원을 넘어섰다. 시장의 관심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달러당 1200원이 저항선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추세를 만드는 지지점이 될 것인지 여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는 원/달러 환율 1200원은 새로운 지지선이 됐으며 원화는 추세적으로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 원/달러 환율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이러한 원화 약세 배경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달러 강세다. 지난해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으로 인해 향후에도 미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기본적인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금리인상은 사전경고 및 시장에 인식돼 있었다는 점에서 미 금리인상이 원화약세의 추세적 상승을 이끌기 보단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론적으로 보면 한국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는 원화를 강세로 이끌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원화약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자본시장이 미래를 선방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화 약세는 한국 시장 그리고 한국 경제에 대해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예상된 한국의 경기둔화...중국 경착륙 우려에 원화 약세

경기 예측과 관련 비교적 정확한 전망을 제시하는 장단기 금리스프레드(한국 국고채 5년물-통안증권 1년물)를 보면 지난 2009년 5월 2.19%포인트의 최고치를 기록, 2010년 3월 1.8%포인트로 하락한 이후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그렸다.

▲ 한국 국고채(5년물)-통안증권(1년물) 금리 스프레드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인용]

일반적으로 장단기 금리스프레드가 하향곡선을 그릴 경우 이는 경기 둔화를 암시한다. 장기채에 대한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단기금리 수준과 그 격차가 축소되는데 기인한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저효과로 인해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국내 경기도 호조세를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장단기 금리스프레드는 2010년 3월 이후 줄 곧 한국 경제 전망이 부정적임을 암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원/달러 환율은 하락, 즉 원화는 강세 기조를 이어왔다. 한국은 여타 신흥국 대비 펀더멘탈 측면에서 양호하다는 점과 충분한 외환보유고 및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이를 뒷받침했다.

▲ 작년 하반기 중국의 투자자금 유출은 가속 [출처:KDB대우증권]

그러나 현재 표면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불안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2010년 3월 장단기 금리스프레드가 본격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한 시점(1100원대)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시장의 판단이 늘 맞는 것은 아니지만 2010년 3월 당시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는 시점이었으며 유럽발 위기 우려도 증폭되는 시점이었다. 이를 원/달러 환율 수준에 비춰보면 현재 원화 약세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요인이 2010년 당시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직면한 문제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이점에서 볼 때 중국의 경기둔화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들의 문제가 원화약세에 분명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원화 약세, 변동환율제 도입한 죄?

일반적으로 한국은 위기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국 불안은 원화 약세를 부각시키는 요인이 된다. 사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대부분의 여타국 통화에 공통적인 약세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신흥국 경기불안이라는 이슈에는 해당 국가의 통화를 제외하면 원화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수급적 측면이다. 중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흥국 외환시장은 완전한 변동환율제가 적용되지 않거나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지 않다. 또한 유동성도 그만큼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제약이 거의 없는 유일한 나라다. 이렇다보니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국 문제가 시장에서 이슈가 될 경우 한국을 신흥국의 여러 이벤트에 대응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향이 반영돼 있다.

▲ 원/엔 환율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인용]

종합적으로 보면 원/달러 환율 상승의 배경은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은 물론 한국의 향후 경제 전망이 녹록치 않다는 시장의 판단이 내재돼 있지만 이외에도 신흥국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흥국 중에서는 중국이다.

현재 국내 장단기 금리스프레드와 원/달러 환율 수준을 보면 이 두 지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상황과 유사한 위치에 있다. 확실한 것은 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현재는 ‘불안감’, 즉 원/달러 환율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여부의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원화 대비 엔화의 상대적 강세 가능성이다. 지난 2012년 이후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엔화 절하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지난해 미국의 금리인상과 올해 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급리 도입에 급격히 강세로 전환됐다.

일본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이 이미 미 금리인상 시기부터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는 글로벌 불안심리(안전자산선호)를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다. 특히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로 중국 당국이 각종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원화 약세는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매니저는 “작년 말부터 원화 약세에 배팅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원화의 추가적 약세에 대해 ‘확신’은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시장에 풀린 돈이 빅 로테이션(순환)에 급격히 휘말릴 경우 실제로 위기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인식한 주요국들의 정책이 그나마 지연시키고 있는 상태”라며 “올해 위기 발생 가능성은 적게 보고 있지만 원화 약세 포지션을 급격히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추가적 원화 약세 전망의 여지를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