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최근 창업시장에서 가장 핫(Hot)한 트렌드 하나를 꼽으라면 다름 아닌 ‘가정식(家庭食)’이다. 일본 가정식 음식점, 가정식 백반에 가정식 반찬 배달, 가정식 국 배달, 가정식 샐러드, 더 나아가 가정식 술집까지.

외식업은 물론이고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도 가정식이라는 형용사만 달면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고객들의 호감을 프리미엄으로 받는 것이다.

가정식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수제’라는 단어도 사실은 가정식의 아류다. 집밥 역시 가정식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왜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싱글족과 일하는 여성의 증가로 엄마의 자리가 부재(不在)한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엽기적인 사건 중에 하나는 존속살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존속살인은 주로 자녀가 부모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사건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죽여 온 세상을 경악에 떨게 했고, 사람들은 숨겨진 유사 사건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정에서 ‘엄마’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따뜻함’의 표상이다. 엽기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엄마의 존재와 같은 ‘따뜻함’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식’ 트렌드가 뜬다는 것은 그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반작용이다.

10대들은 일본 가정식을 먹기 위해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뒤져가며 헤맨다. 직장인들도 가정식 백반집이라면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서울 강남 신사역에 있는 ‘리버한식’이라는 작은 식당은 가정식 백반으로 유명하다.

4인용 테이블 5개를 따닥따닥 놓은, 전체 평수 23㎡(7평)이 채 안 되는 공간이지만 늘 직장인들로 붐빈다. 이 집 여사장은 지난 정월 대보름을 맞아 새벽 2시부터 일어나 각종 나물류를 다듬었다. 그날 점심 밥상에는 말린호박 볶음과 취나물, 고사리 등의 반찬이 올랐다. 매일 정성스럽게 재료를 구입하고 다듬는 그 여사장의 마음은 우리네 엄마들 마음보다 더 진하다. 요즘 블로그나 SNS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가정식 백반’, ‘가정식 집밥’이다. 지역마다 소문난 가정식 음식점들은 멀리서도 손님을 끌어당기고 있다.

‘가정식’이라고 하면 이렇게 개인이 하는 음식점이나 가게에 더 어울리지만 최근에는 프랜차이즈에서도 가정식을 내세우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상도 방언으로 ‘조금씩 조금씩 쌓아올린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따복따복’은 가정식 술집 프랜차이즈다. 매생이전(煎) 8000원, 스팸계란전 7000원, 차돌박이 겉절이 1만5000원처럼 대부분의 안주들은 집에서 엄마가 정성껏 요리해주는 메뉴들을 닮았다. 가정식 술집답게 인테리어에도 편안함이 묻어난다. 이 술집은 고객의 80%가 단골들이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조평구 점주는 “단골이 많아서 신규고객 확보 부담이 적다”고 말한다.

가정식이라는 말은 정성, 좋은 음식이라는 말과도 동의어로 여겨진다. 그래서 프리미엄 전략에서도 잘 먹힌다.

▲ 피자알볼로. 사진=알볼로피자 홈페이지

메이저 피자들조차 끊임없이 할인행사를 펼치는 요즘, 전혀 할인하지 않고 고가의 프리미엄 피자로 자리 잡은 ‘피자알볼로’의 경우,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 같은 피자’를 표방한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이 똑같은 유일한 피자로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엄마는 속이지 않고 최고의 음식을 가족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닌다.

하지만 트렌드를 역이용해 ‘무늬만 가정식’인 업소들도 많다. 가정식을 내세우지만 그런 곳에서는 재료의 정직함이나 따뜻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언젠가 일본 가정식 음식점을 찾아 멀리까지 다녀온 딸이 해당 음식점에 불평을 한껏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음식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너무 불친절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 넘게 걸려 찾아갔는데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느니 기분이 나쁜 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가정식’의 본질을 외면한 트렌드 차용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적어도 ‘가정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려면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가족 같이 따뜻함이 있는 서비스도 필수적이다.

위에 언급한 ‘리버한식’의 여사장은 보름날 새벽부터 손수 다듬고 조리한 나물 반찬을 제공하면서, 나물 다듬어 반찬 만들기 어려울 테니 있을 때 많이 먹으라고 오히려 고객들에게 반찬을 듬뿍 듬뿍 제공했다. 이것이 ‘엄마 같은 서비스’이다.

가정식 술집을 표방하는 ‘따복따복’ 서울 발산점 점주도 단골들에게는 메뉴판에 없는 특별요리를 제공해 정을 더한다. 자주 방문하는 고객들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구처럼 지낸다. 고객들이 매장 직원들을 위해 커피를 사다주는 ‘따뜻한 장면’도 있다.

가정식 음식점은 인테리어도 가정처럼 편안한 게 좋다. 모든 가정은 고급 주택이거나 허름하고 가난한 서민주택이거나 그곳에 가족 간의 사랑이 있다면 모두 따뜻하다. 가족을 위해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이 깃들고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있다. 화려한 인테리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 따뜻한 마음이 필요해서다. 상업용 공간에서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려면 매일 청소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