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게임사가 지난해 실적 발표를 마쳤다. 여느 업계와 마찬가지로 회사별 표정이 갈렸다. 최대 실적 경신을 이어간 게임사가 있는가 하면 자존심 제대로 구긴 회사도 있었다. 언뜻 완벽한 실적을 거둔 것처럼 보인 게임사에게도 남겨진 숙제는 있는 법이다. 회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도 게임사들이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다.

긴장감을 떨쳐버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퍼블리싱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러 중소 개발사들이 만든 게임 중 입맛에 맞는 걸 골라 서비스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자체 개발에 강점을 지닌 게임사 여럿도 퍼블리셔로 거듭나려고 애쓰고 있다.

퍼블리싱 사업이 각광받고 있는 배경에는 ‘모바일 퍼스트’라는 맥락이 있다. 아직 게임 시장 절반은 PC온라인 플랫폼이 차지한다. 그런데도 모바일 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업계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PC온라인으로 성장한 업체들마저도 ‘모바일 안 하면 결국 죽는다’는 생각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PC온라인과 모바일 게임 사업은 업의 특성이 다르다. 모바일 게임은 대체로 개발 기간이 짧은 만큼 잊히기도 쉽다. 진입 문턱이 낮아 여러 플레이어가 난입해 과열경쟁 양상이다. 이럴수록 시장 트렌드에 맞는 ‘성공할 것 같은’ 게임만 골라 순발력 있게 선보이는 것이 경영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 위기 속에서 게임사들이 퍼블리싱에 자연스럽게 눈 돌리게 되는 이유다.

주요 게임사들이 퍼블리싱에 주력한다는 것은 전체 산업 생태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소규모 개발사에겐 시장이 더욱 척박하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필연적으로 겹겹의 수익 배분이 ‘표준’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마켓에 30% 뜯기고, 카카오 같은 플랫폼에 21% 뜯기고, 남는 걸 퍼블리셔와 나눠야 하니 돈이 안 된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퍼블리셔의 손길을 뿌리치기도 어렵다. 그들의 인프라와 서비스 역량 없이는 유저와 만나기조차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까닭이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룬 게임사들이 퍼블리싱에 주력하며 안정성을 꾀하다 보면 이런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게임 한류의 원천 기술인 개발력을 좀먹을 여지가 있는 구조다. 유능한 개발자가 열악한 환경을 탓하며 업계를 하나둘씩 떠나버린다면 그 손실은 우리 게임 업계가 떠안게 된다. 주요 게임사들이 퍼블리셔로의 변신을 꾀하며 경영 안정화를 도모하는 장면이 불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시련이 눈앞에 있다. 처음엔 시련이 업체 규모에 따라 차등 배분될지 모른다. 그 끝엔 전체 산업의 ‘진짜 위기’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