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는 약 60조 내지 100조개의 세포가 존재하고 이들 세포에는 모두 동일한 유전자가 함유되어 있다. 염색체 속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세포의 고유 기능을 유지하기 위하여 발현되는 유전자는 약 3만5000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체 내 장기나 조직을 이루는 세포들은 각 조직에 따라서 발현되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상피세포, 혈액세포, 근육세포 등 모양과 기능이 각기 다른 210여 가지 세포로 분화되고 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면 전능성(Totipotent) 줄기세포가 되는데 세포분열을 거쳐 낭배(Blastocyst)를 형성한다. 낭배는 주머니를 이루는 배외줄기세포(Extraembryonic Stem Cell)와 내부 공간에 존재하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로 이루어져 있다. 낭배의 주머니는 자궁 내에서 태아발육에 필요한 태반 등 지지조직을 형성하고, 배아줄기세포는 만능성 줄기세포(Pluripotent Stem Cells)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세포를 만들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가 더 분화되면 다능성(Multipotent) 줄기세포가 되는데 여기서 다능성이란 모든 종류를 의미하지 않고 인체의 특정 조직과 연관된 세포들로 분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골수에는 많은 다양한 세포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는 중간엽 줄기세포라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세포들과 조혈줄기세포(Hematopoietic Stem Cells)가 있다. 골수에서 채취한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s)는 골격조직에서 발견되는 뼈, 연골, 지방세포로 분화된다. 또 조혈 줄기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생성한다. 그런데 중간엽 줄기세포는 제대혈, 지방조직, 근육조직에도 존재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조직에서 채취한 세포가 골수에서 채취한 중간엽 줄기세포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종류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간엽 줄기세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성인의 골수에서 중간엽과 세포 유형의 혼합물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골수에서 채취한 세포 중에서 중간엽 줄기세포는 0.001~0.01%에 불과하다. 자기분열도 하고 뼈, 연골, 지방 등 세 가지 조직세포로도 분화하는 중간엽 줄기세포만을 분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조혈 줄기세포와 중간엽 (또는 골격) 줄기세포를 구분해내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이는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용한 다양한 치료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함이다.

먼저 중간엽 줄기세포는 골아(Osteoblast)라 불리는 뼈세포로 분화하여 뼈를 복구하는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뼈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었을 때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중간엽 줄기세포는 관절염으로 손상된 연골을 복구하는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종래에는 손상된 연골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인공관절 시술밖에 없다고 여겼지만 중간엽 줄기세포를 주입하면 연골이 재생되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중간엽 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골수에서 직접 채취하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채취한 줄기세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물론 많은 장애물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중간엽 줄기세포를 환부에 이식하면 곧 바로 인체에서 제거되고 만다. 연구자들은 세포가 필요한 부위의 조건들을 모방하여 입체구조나 골격을 만들어준 후에 세포들을 이식해 주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때 골격구조는 이식된 세포들이 잘 분화하도록 도와준다.

흥미로운 점은 동물 실험에서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중간엽 줄기세포가 혈관 신생과정에서 새로운 혈관을 형성하도록 촉진한다는 점이다. 물론 혈관을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혈관 내벽을 만드는 세포들의 성장을 돕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놓는다고 한다. 이는 중증 하지허혈과 같은 질병이나 심장발작과 관련된 혈관손상을 복구하는 기능을 보유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선 중간엽 줄기세포는 인체의 면역시스템에 의해 검출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는 실험적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간엽 줄기세포도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또 다른 연구보고들도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선 중간엽 줄기세포가 체내 면역세포들의 증식속도를 낮추어서 염증을 감소시키고 이식거부 반응 또는 자가 면역 질환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아직은 검증되어야 할 많은 증후들이 관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중간엽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은 줄기세포의 글로벌 허브국가가 되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바이오 기술에 역점을 두고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줄기세포와 재생의약품의 기술선두국가가 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은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의 25%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로 국민들의 건강수명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정부사업이 되었다. 따라서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서 손상된 장기를 수리하고 노화로 손상되기 시작하는 세포조직을 교체하는 재생의학 발전을 국가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재생의학약품 시장은 2012년 900만달러에서 2020년 9500만달러, 2030년엔 100억달러, 2050년엔 250억달러로 급속히 성장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은 재생의학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연구협력의 허브국가가 되고자 이미 2015년에 줄기세포 임상실험에 대한 각종 규제사항과 관련법을 완전히 재정비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줄기세포 임상실험을 단순히 기술적으로 ‘혜택이 있다’는 증거만 있으면 바로 착수할 수 있게 허락해주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소수의 시험만 성공하더라도 세포 관련 의약품을 바로 승인해 주고 있다. 이런 새로운 규정에 의해서 작년에 이미 2종의 세포 기반의 치료제가 상품생산 허가를 받았다. 한 가지는 환자 자신의 세포로부터 성장시킨 ‘근육세포시트’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골수이식환자에서 관찰되는 치명적인 합병증인 이식편대숙주질환(aGvHD) 치료제로 중간엽 줄기세포가 면역반응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활용한다는 템셀(Temcell)이다.

일본의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들의 학술연구를 장려하기 위해서 일본 내에 대규모 세포 생산시설을 보유한 제조센터들도 허가해서 값싸게 세포생산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들 세포 제조센터들은 놀랍게도 전통적인 카메라 제조업체들인 니콘, 후지필름, 파나소닉, 올림푸스 등이 담당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줄기세포 연구기관 또는 업체들이 임상실험 규제가 거의 없는 일본에서 다양한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클리블랜드 소재 바이오기업인 아더시스(Athersys)는 ‘줄기세포를 유리병에 담아 뇌졸중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대량생산’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임상실험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지 않은 일본에서 많은 임상경험을 쌓고자 한다. 일본 정부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채취한 동종의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이 높다. 일본 정부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에 잘 맞는 iPSC 라인을 보관할 줄기세포 은행도 세웠다. 이런 줄기세포은행은 한국이나 일본같이 단일민족에 가까운 국가에선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미국과 같이 다민족 국가에선 매우 힘든 일이다.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의약품은 국내산이지만…

드디어 2월 말부터는 일본에서 살아있는 인간 세포 7200만개를 포장한 템셀이 상품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지금까진 줄기세포 치료는 주로 규제를 받지 않는 개인 병원이나 임상실험을 위한 실험적 치료로만 가능했다. 그리고 환자 자신의 성체줄기세포를 채취해서 수주일 동안 배양시키는 방법(성공률도 매우 낮지만)에만 한정적으로 허가되어 왔다. 그러나 템셀은 건강한 사람들이 공여한 중간엽 줄기세포를 포장한 의약품이다. 호주 멜버른에 주재한 메소블라스트(Mesoblast)라 불리는 바이오제약사가 개발했지만 일본에선 JCR 제약이 면허를 얻어 판매한다. 템셀은 2012년에 이미 뉴질랜드와 캐나다에서 프로카이멀(Prochymal)이란 이름으로 의약품 승인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론 어느 국가에도 아직까지 출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앞으론 일반 약품처럼 선반에 놓고 판매할 수가 있다. 세계의 줄기세포 연구진들이나 제약산업들은 이 이벤트가 줄기세포 치료제가 의약품으로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는 사실 국내 제약업체들이 2012년에 대한민국 식약청으로부터 세계 최초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품으로 허가받은 3종 줄기세포 치료제는 치료 효과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줄기세포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자금은 지원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면에선 매우 통제된 상태라서 국내 업체들도 임상실험 등 신약개발활동을 해외에서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일본이 세계 제약시장을 향해 함께 연구개발하자고 대대적으로 공개하면서 글로벌 정보와 기술을 흡수해가고 있는 반면, 국내 제약업체들은 척박한 개발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세계제약업계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등장에 환호하고 있다. 21세기는 바이오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대한민국도 일본에 못지않은 초고령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하루빨리 만들어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