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사자성어로 새 것을 만들어감에 있어 독창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진부할 만큼 당연한 진리로 여겨지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 진리를 자주 잊고 살아간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름답고 우수한 고유의 문화유산을 많이 창조해냈다. 아픔이 있는 역사 속에서 파손되거나 유실되기도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문화재를 먼지 쌓인 보물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관리와 보존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를 개인 차원에서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은 예술작품 이상으로 막대한 경제력과 사명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로 어렵다. 이러한 와중에 잊힐 뻔한 문화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한 기업의 행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 사진=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쓰신 친필휘호 존심양성은 '좋은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여, 하늘이 주신 성품을 키워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출처=스타벅스코리아 홈페이지 제공

스타벅스코리아가 기부한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 휘호 유물이 얼마 전 덕수궁 중면전 특별전시 ‘국민의 빛으로 역사의 빛을 더하다’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는 소식이다. 이 유물을 어떻게, 왜 구입했는지 알아봤다. 작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2015 코리아 8.15 머그, 텀블러, 카드’ 판매 수익금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를 기업차원에서 구입해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한 것이다. ‘존심양성’ 친필휘호가 담긴 텀블러를 제작해 얻은 판매수익은 또다시 문화유산 보존에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외국계 기업이, 한 개인의 소장품에서 머물 수 있었던 문화유산을 많은 대중이 누리고 경험하고 가치를 재공유할 수 있게 기여했다는 점은 전율이 느껴질 만큼의 벅찬 감동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와 같이 한국 고유 콘텐츠와 콜라보한 아트상품을 매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과 7~8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를 마시면 ‘된장녀(과소비하는 허영심 많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라 불릴 만큼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여타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차이 나는 가격이 아닌데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듯싶다. 그만큼 ‘세련되고 쿨한’ 도시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브랜드다.

이런 공간에서 한글 로고가 새겨지고 하회탈과 태극기가 휘날리는 머그컵 등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질적 느낌도 적잖이 들었다. 필자도 가끔 스타벅스를 이용하는데, ‘과연 누가 살까?’ 싶을 만큼 노골적으로 한국적인 느낌의 디자인이 촌스럽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김구 선생의 친필휘호의 구입이 이러한 아트상품, 특히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판매한 머그컵 등의 수익을 통한 것이라니, 더구나 ‘존심양성’ 친필휘호를 담은 텀블러를 판매한 수익금은 또다시 문화유산 보존에 쓰일 예정이라니. 그간의 무관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아트상품 이외에도 2009년부터 ‘우리 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문화재청과 협약,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기업의 이익을 위한 마케팅일 뿐인지 이익을 재분배하는 마켓리더로서의 책임감인지는 전부 파악할 순 없다. 어떠한 의도에서든 국내 기업조차 쉽게 접근하지 않는 우리 전통유산을 활용한 문화마케팅을 외국계 기업이 선행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마음이다. 이런 행보를 계기로, 기억 속에 묻히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재각인시키고 후손에게 그 가치를 되물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