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저널리즘은 기레기를 물리치고 고담시의 배트맨이 될 수 있을까? 영화 '내부자들'과 '특종 량첸살인기'를 관통하는 쓰레기 같은 기자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미디어의 메시아로 군림할 것인가? 더 나아가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서 비추는 불편한 현실을 분쇄할 수 있는 극적인 단초가 될 것인가?

 

로봇저널리즘, 어디까지 왔나?
21일 한 편의 기사가 화제였습니다. 경제지 파이낸셜뉴스에서 로봇이 쓴 기사를 정식으로 포털에 송고했기 때문입니다. [로봇저널리즘]이라는 명패를 단 본 기사는 코스피 시황과 업종 현황을 제법 정확히 분석했습니다. 2014년부터 관련 연구를 이어온 서울대학교 이준환, 서봉원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사 작성 알고리즘 로봇인 IamFNBOT 기자가 썼으며, 바이라인에도 'IamFNBOT 기자'가 붙어 있습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하고 내심 당황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소소히 들려오던 소식이지만 한국은 처음이니까요. 막연하게 생각했던 추상적인 위협이 갑자기 평면을 뚫고 현실세계로 쏟아져 내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별도의 기사화를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 '가능성도 보이고, 한계도 보이는 느낌'이라는 코멘트만 적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기자들 단톡방에서 한 기자가 '로봇이 쓴 기사랍니다'라는 글과 함께 파이낸셜뉴스의 기사를 링크하더군요. 신기해 하더군요. 그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한 번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로봇저널리즘은 간단하게 말해 로봇이 기사를 쓰는 겁니다. '미래는 우리 곁에 이미 다가와있다'는 명언처럼 해외에서는 어느정도 익숙해진 개념이에요. 현재 로이터와 AP통신은 간단한 단신뉴스를 모두 로봇이 쓰고 있으며 LA타임즈는에서는 지진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퀘이크봇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를 씁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로봇이 편집하는 주간지를 발행하고 있어요. 심지어 오토메이트 인사이트라는 기업은 워드스미스라는 로봇 기사 작성 서비스를 각 언론사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CMS를 판매하는 개념으로 로봇 기사 인프라를 판매한다는 뜻입니다. 포브스가 이 서비스를 구입해 눈길을 끌기도 했죠.

그렇다면 로봇은 어떻게 기사를 쓸까요? 일단 로봇저널리즘 자체가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정 알고리즘이 설정된 상태에서 이에 기반해 기사를 쓰는 거죠. 그 역사는 의외로 깁니다.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정보컴퓨터과학과 제임스 미한 교수가 테일스핀(Tale Spin)이라는 이야기 자동 제작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후 조금씩 구체화되었으며 2010년 내러티브사이언스가 창업하며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로봇이 기사를 쓰려면 먼저 설정된 알고리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그곳에서 통계적 기술을 통해 핵심을 찾아내죠. 이후 알고리즘의 데이터 분석을 더해 '시각'을 설정하고(언론사의 경우 논지) 세부기사를 나열한 후 자연어로 기사를 씁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눈치를 채야 합니다. 맞아요. 마지막 단계를 제외하고 나머지 4단계 모두 데이터가 정교하게 활용됩니다.

이렇게 작성되는 기사는 속도와 데이터 분석에 있어 인간의 능력을 훨씬 상회합니다. 어뷰징에 나서는 기자들과 비교하겠습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연예 및 스포츠 아이템이 뜨면 바로 기사를 쓰죠.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언제 어떻게 이벤트가 발생할 지 모르고요. 하지만 로봇 기자는 다릅니다.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벤트의 시점까지 잡아낼 수 있습니다. 속도요? LA타임즈의 지진 관련 속보는 10초 이내에 작성됐습니다. 질과 양 모두 인간 기자가 당해낼 수 없어요.

▲ 출처=픽사베이

로봇저널리즘의 가능성과 한계
이제 로봇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재미있는 대목을 먼저 살필까 합니다. 바로 그 누구보다 사람들이 '로봇저널리즘'을 고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9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 수 있다 vs. 없다> 보고서를 보면 일반인은 로봇과 사람이 쓴 기자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정답을 맞춘 비율은 일반인이 46.1%였으며 기자도 52.7%에 불과했습니다. 일단 성능면에서 따라왔다는 증거고요. 기호를 볼까요? 일반인 600명을 대상으로 같은 기사를 사람이 썼다고 말하고, 로봇이 썼다고 말할 경우 같은 기사라도 로봇이 쓴 기사를 더욱 신뢰했습니다.

이건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에요. 즉 같은 기사를 두고 로봇이 썼다고 하면 일반인은 더욱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심지어 기자들도 사람이 쓴 기사인데도 로봇이 썼다고 하면 더욱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는 로봇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말하기 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으로 보입니다. 같은기사라도 다르게 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무의식속에 로봇저널리즘이 더욱 저널리즘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뭘까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바로 기레기에 대한 관념입니다. 즉 글로 기사를 쓰고 이를 알리는 직업 자체에 '인간의 주관'이 지나치게 삽입되는 것을 현대의 대중은 거부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슬픈 기자의 자화상이죠.

하지만 역으로 이 대목에서 로봇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또 한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능성에 대해서는 로봇기자가 신뢰성을 받는다는 점에 착안할 수 있습니다. 이 신뢰성은 바로 데이터에요. 즉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고 이를 정리하는 영역은 로봇기자의 영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양한 로봇기자의 등장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죠.

그러나 한계도 뚜렷합니다. 로봇기자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깊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는 없어요. 슈퍼 컴퓨터가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데이터만 가지고 핵심을 관통하는 인사이트를 얻기는 어렵죠. 지진이 일어났던 시기와 구조, 전조와 파급효과를 고려해 빠르게 관련 기사를 쓸 수 있겠지만, 그 지진의 의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잡아낼 감수성은 로봇에게 아직 없습니다.

▲ 출처=플리커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가 로봇저널리즘을 대하는 일반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날것 그대로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분은 정말로 로봇 기자가 저널리즘을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언하자면, 그럴 일은 당장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업의 형태가 발견될겁니다. 로봇 기자는 속보 및 데이터 분석 기사의 1차 관문에서 멈추고 나머지 심층취재 및 관점기사는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겁니다.

혹시 '블대리'를 아시나요? 많은 언론사에 비치된 블룸버그 단말기는 금융정보를 체계적으로 잡아내고 축약하는 시스템이지만 현재 언론사의 활용도는 지극히 낮습니다. 블대리라 불리는 이유는 유지비만 대리급이기 때문이에요. 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결국 로봇저널리즘의 도입도 알고리즘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인간이 만들어요. 또 분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과 연결하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습니다. 당장 로봇저널리즘이 도입된다? 블대리 처지가 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건 언론사의 직무유기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협업의 단면으로 해석됩니다. 기술의 등장이 실생활에 바로 녹아드는 경우는 없거든요.

로봇저널리즘의 강점인 속보성도 어뷰징적 관점에서 보면 언론 윤리와 맞지 않습니다. 동일한 데이터에 대동소이한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수천개의 언론사가 실시간으로 뉴스를 쏟아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현재 포털뉴스검색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뉴스평가위원회가 질겁할 사태가 벌어질겁니다.

결국 로봇저널리즘을 말하려면 먼저 첫 째, 실제 언론사 환경에 안착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이 단계가 명확하게 정리되면 속보와 데이터 분석을 로봇에게 넘기고 나머지를 인간에게 넘기는 거죠.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답을 찾을 전망입니다. 동시에 기레기 논란이 사라질 수 있는 극적인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인공지능의 고도화에 따른 비정형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앨런 머스크가 걱정하는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이 빠르게 등장하면 어떨까요? 여기에 대한 전망은 제 능력 밖입니다. 소니에서 만든 아이보의 죽음을 두고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시대가 아닙니까. 우리는 로봇에 인공지능이라는 영혼을 넣을 여지가 있으며, 이게 글의 영역으로 닥쳐온다면?

결론을 말하자면, 극적인 기술의 변화가 없다면 현재의 추세로 볼 때 로봇기자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언론 종사자들은 왜 같은기사라도 로봇이 쓴 기사가 더 신뢰받는지를 이해하고, 심층있는 기사로 승부를 보고 '우라까이'의 유혹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보면, 로봇기자는 인간기자의 발전을 촉진시킬 메시아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시각이 담긴 미디어도 기레기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