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막을 내린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케이블TV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케이블TV 역대 최고 시청률인 19.6%를 달성한 것이다. 40대 여성의 시청률은 27.8%에 달한다. 더욱 고무적인 기록은 10대 여성의 시청률이 25.5%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종편 드라마도 10% 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하자면 더욱 대단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음원 차트 톱 20개 중 응팔 OST가 7곡이나 포함되어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착한 음악’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과거를 회고한다는 뜻을 지닌 ‘레트로(Retrospective)’라는 말이 있다. 레트로는 과거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레트로는 현재를 팔기 위해 과거를 활용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소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한 시절 유행했던 브랜드를 재출시하거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약간의 새로움을 더해 출시하는 특징이 있다.

며칠 전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집 앞 가게에 들렀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릴 적 먹었던 부라보콘이 옛날 모습 그대로 냉장고 안에 있던 것이다. 서럽게 울다가도 엄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준다면 울음을 뚝 그치고 말았던 부라보콘은 비교 불가능한 꿀맛으로 기억된다. 입안에 넣으면 스르륵 녹아버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세상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납시다,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지금도 기억나는 CM송을 흥얼거리며 얼른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단종된 제품을 부활시키거나 상품 겉면 디자인을 바꿔 추억을 되살린 식품도 많다. 롯데푸드는 60년대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던 삼강하드를 52년 만에 재 출시했다. 삼강하드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여름철 어린이들이 즐겨 먹던 빙과류는 색소와 설탕 또는 사카린을 섞은 물에 막대기를 꽂아 얼린 아이스께끼였다. 자칫 배탈이 났던 불량식품이었다. 62년 식품위생법이 시행되면서 아이스께끼는 설 자리를 잃었고 삼강하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에 다시 출시된 삼강하드는 패키지도 전체적으로 복고풍의 폰트와 디자인으로 구성해, 포장지만으로도 옛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복고의 붐은 패션에서 두드러진다. 촌스럽게만 여겨졌던 청청패션, 통 넓은 바지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가 하면, 과거 유행했던 패션 브랜드, 운동화 제품들도 최근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떡볶이 코트, 멜빵바지, 베레모 등 추억의 패션 아이템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복고풍 아이템의 판매 증가율은 전년 대비 아이템별로 최대 200%이상 늘었다.

이런 틈새를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항상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마케터에게도, 시대를 앞서 최첨단을 핵심 무기로 혁신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던 기업에게도 복고 트렌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추억만큼 변함없고 안정적인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들과 과거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타겟팅한 레트로 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을 뿐 불편했던 부분들은 기억에서 상당수 사라진다.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때문이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무드셀라라는 인물에서 유래했다. 무드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는 최장수 인물로,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성향을 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응팔’이가 케이블TV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도 과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레트로와 무드셀라 증후군이 당신의 심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추억이 항상 아름답고 진한 향수를 남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