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스토리엔 대표.

“시진핑·캐머런 건배한 맥주 품귀.”

지난해 10월, 한 신문사의 헤드라인입니다. 이는 한 장의 사진이 일으킨 현상인데요, 10월 22일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가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를 위한 공식만찬이 시작되기 전, 일반 선술집 펍(Pub)에서 영국 에일 맥주 ‘그린 킹 IPA(Greene King IPA)’를 함께 마시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본 중국인들이 ‘그린 킹 IPA’를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품귀 현상을 일으켰답니다. 중국에서 ‘그린 킹 IPA’가 시진핑 주석과 캐머런 총리와 썸을 타며 유명세를 탄 것이죠.

우리나라 대통령과 썸을 탄 술도 있습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양막걸리’와 ‘산성막걸리’와 연(緣)을 맺었습니다. 고양막걸리는 ‘배다리막걸리’로 잘 알려졌는데, 지난 1965년 경기도 고양시 골프장에 다녀오던 박 대통령이 능곡양조장(후에 ‘고양양조장’으로 변경)에서 빚은 막걸리를 마시고 그 맛에 감복하는 바람에, 고양막걸리가 그때부터 1979년까지 청와대에 납품되었다고 합니다. 또, 부산 동래 금정산 능선에 위치한 산성마을의 ‘산성막걸리’도 박 전 대통령이 그 맛에 반해 1979년에 ‘민속주 1호’로 지정했는데, 그때가 박 대통령 서거 3개월 전이었답니다.

‘노무현 막걸리’로 알려진 대강막걸리도 있습니다. 정확한 브랜드명은 ‘소백산오곡진상주’랍니다. 이 막걸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특별하여 ‘노무현 막걸리’라 불리면서 유명세를 탔죠. 충북 단양에 있는 대강양조장에서 주조되는 이 막걸리는 2005년 5월, 농촌 시찰 중인 노 대통령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후 2008년까지 청와대 만찬주로 진상되었다고 합니다. 소백산 지하 암반 180m에서 길어올린 지하수로 옥수수, 쌀, 보리, 조, 밀 다섯 가지 곡식으로 빚어낸 소백산오곡진상주는 청량감이 좋고 다섯 곡물의 향이 배어 있답니다.

▲ 다양한 막걸리 술. 사진=김태욱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막걸리 붐’이 일었습니다. 일본에서 막걸리가 선풍적인 인기라는 언론 보도와 함께 국내 막걸리 생산량은 수출 붐을 탔었죠. 그래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수출량이 2배 정도 증가했으나, 아쉽게도 2012년부터는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막걸리 산업을 일으키려고 정부에서는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막걸리는 ‘스토리 산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막걸리 산업은 제조와 유통 등 하드웨어 측면보다 음주문화와 소비생활 등 소프트웨어 측면과 연관성이 높습니다. 그중 하나가 막걸리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입니다.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막걸리, 국가 정상들의 만남에 함께한 맥주처럼 유명인사와 연계되어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고요, 또 지역의 중소 규모 양조장에서 주조되는 막걸리에 숨겨진 스토리를 발굴해서 스토리텔링하고 이를 브랜드와 연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와인이 본고장인 이탈리아보다 프랑스에서 더 크게 발전한 것 역시 ‘샤또(Château, 포도원)’가 지닌 스토리가 있으니,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며칠 후면 우리의 최대 명절인 설입니다. 설에는 가까운 친지와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많이 준비합니다. 이번 설에는 막걸리 선물이 어떨까요? 또한 차례상에 올리는 차례주도 막걸리로 하면 어떨까요?

먼저 필자부터 이번 설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금정산성 막걸리를 차례상에 올리겠습니다. 막걸리가 단순히 산업 측면에서의 유행을 타는 게 아니라 우리 생활에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