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하락으로 미국 셰일에너지기업들의 부도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이 반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에너지 업체들의 비용효율화로 인해 한계가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가격경쟁 전략을 추진한 OPEC에 맞선 미국 셰일에너지기업의 기술이 빛을 보는 셈이다.

현재 OPEC국가들의 원유생산단가는 배럴당 20~30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셰일에너지기업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0~40달러까지 효율화 된 것으로 판단되며 한계비용은 20달러 수준까지 형성돼 대등한 입장이다. 최근 국제유가 수준이 원유생산단가와 한계비용에 임박하면서 석유시장을 둘러싼 치킨게임이 끝나는 것인지 여부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원유관련주를 사들이고 있다고 CNBC가 보도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정유업체 필립스66(Phillips66)의 주식을 평균 77.22달러에 250만주 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의 시선이 버핏에게 쏠렸다. 국제유락이 지속되는 가운데 버핏이 어떤 생각으로 모두가 꺼리는 정유사를 선택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버핏의 투자스타일은 저평가된 주식 중에서 가치의 무게를 두고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되고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버핏의 선택은 그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게 할 정도였다.

워런 버핏, 그는 건재하다

단편적으로 보면 버핏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수출기구(OPEC)와 미국 셰일에너지업체들의 원유시장을 둘러싼 치킨게임은 국제유가의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OPEC 총회에서 감산이 불발된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를 하회한 이후 지속 하락해 지난 11일 기준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30.48달러, 두바이유는 26.49달러, 브렌트유는 30.31달러를 기록했다. 여전히 국제원유 시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그러나 OPEC과 미국 셰일에너지기업들의 원유 생산단가를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미국 셰일에너지 업체들의 비용 효율화로 인한 한계가격은 배럴당 20달러, 손익분기점은 30~40달러 수준으로 이전대비 낮아졌다. 전통적 원유생산단가도 20~30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국제유가는 20~30달러 수준에서 하락을 멈출 가능성이 높으며 최근 국제유가도 이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만약 국제유가가 추가적인 하락을 하지 않는다면 버핏의 투자는 분명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유가가 하락을 멈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감산’이다.

미국 기술력에 굴복하는 OPEC?

OPEC이 채택하고 있는 전통석유 추출방식의 생산단가는 이미 예전부터 배럴당 20~30달러로 알려져 왔다. 반면, 초기 비전통적 석유생산방식(셰일오일)의 생산단가는 배럴당 50~70달러로 전통방식대비 생산비용이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원유시장 치킨게임 승리자는 OPEC측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를 지난 2014년 11월 OPEC 총회 결과인 ‘감산불발’에 비춰보면 당시 OPEC의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OPEC회원국들의 입장에서 ‘경쟁’을 위해 주저할 이유가 없던 셈이다.

이어 2015년 12월 OPEC총회에서도 감산은 불발됐다. 핵심은 같은 직전년도와 같은 ‘감산불발’ 결정이라 하더라도 그 배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2014년 OPEC의 감산불발은 OPEC 회원국들의 가격경쟁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했으나 2015년의 감산불발은 OPEC 회원국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결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가스 및 석유 생산량 변동 추이 [출처: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OPEC 회원국 간 ‘죄수의 딜레마’가 작용한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란 협력적인 선택이 양자의 최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에 치중한 나머지 서로를 믿지 못해 결국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 OPEC 회원국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감산을 결정했다면 원유 시장에서 OPEC의 가격 통제력은 여전히 상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국가가 감산을 결정했는데 다른 국가가 감산을 하지 않을 경우 감산결정을 한 국가는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산불발’ 결정은 단순 OPEC 회원국들 간의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비OPEC 국가들과의 원유 시장점유율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OPEC은 내부적 갈등과 함께 비OPEC 국가들과의 외부적 갈등도 동시에 겪어야 했다.

이러한 갈등은 국제유가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국 셰일에너지업체들의 기술력은 날로 향상돼 원유 생산단가를 낮추게 됐다. 가격만 믿고 버티던 OPEC 국가들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뒤바뀐 원유시장 패권...OPEC 분열에 이은 감산?

미국 셰일에너지기업들의 한계비용을 고려하면 이들은 원유공급확대에 있어 OPEC 국가들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설령 OPEC이 원유공급량을 늘려도 미 셰일업체들의 대량 도산과 미국의 원유생산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OPEC과 미국 셰일업체들이 감산 없이 원유 공급을 지속한다면 국제유가는 한계비용 수준인 배럴당 20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

▲ 국제유가 추이 전망 [출처:골드만삭스, KB투자증권]

중요한 것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수준에 임박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여부다. 우선 OPEC 회원국들은 강력한 카르텔을 중심으로 뭉쳐왔다. 7년 전 OPEC을 탈퇴했던 인도네시아는 곧 OPEC에 재가입할 예정인 반면, 알제리는 탈퇴를 고민하고 있는 등 OPEC의 강력한 힘은 약화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대 원유 공급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감산을 통한 유가 인상보다는 저유가를 통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면서 OPEC 회원국 간 내분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를 큰 틀에서 보면 OPEC과 미국 셰일에너지업체의 기나긴 ‘치킨게임’은 OPEC의 패배로 점쳐진다. 쉽사리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인 만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