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게임사 오너가 정치에 가담했다. 웹젠 최대주주인 김병관 이사회 의장 이야기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에 공식 입당했다. 지난 2010년 웹젠 대표를 역임한 그는 국내 대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현재 웹젠 지분 26.72%를 보유하고 있다. 웹젠의 경영은 김태영 대표에 맡기고 자신은 전략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의 입당 소식이 알려지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정치권에 상처받을지 모른다고 여기면서도 김 의장에게 게임인을 대변하는 구심점이 되어 게임 규제를 풀고 육성 로드맵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계절

국내 게임업계는 위기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외풍은 거세지고 있지만 다시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위기는 통계가 증언한다. ‘대한민국 게임백서 2015’를 보면 2014년 게임 시장은 역성장을 면했지만 성장세 둔화가 두드러진다.

더 심각한 것은 산업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2만658개이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2014년 1만4440개로 5년 새 30% 정도 급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2012년 5만2466명이었으나 2014년에는 3만9221명으로 25% 줄었다.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부당한 게임 규제가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아 성장을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임업계는 '정치권의 횡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업계에 위기가 가중되면서 경쟁이 가열되자 외부 충격이 있어도 집단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혁신적 들러리?

“제 평소 모습을 아는 분들은 정치를 왜 하느냐고 말립니다.” 김 의장이 입당을 알리는 회견장에서 남긴 말이다. 그의 지인들은 우려하는 마음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일 게다. 우려하는 이유도 지인마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의견이 모이는 지점은 있기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 중 하나는 김 의장이 정치권의 들러리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 가설은 정당이 표심 자극에 먹히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긍정’의 층위는 다양하다.

‘혁신’과 ‘성공’은 긍정적 이미지를 약속하는 대표 키워드다. 정당은 ‘혁신과 성공의 아이콘’을 영입하는 방식을 즐겨왔다. 특히 성공한 IT 사업가를 노렸다. 현재도 총선을 100일 남짓 앞두고 물밑에서 이런 유형의 인사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 와중에 김 의장이 입당 제의를 받아들였다. “표창원 소장이 정의를 상징한다면 김 의장은 혁신을 상징합니다.” 김 의장 입장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가 남긴 말이다. 문 대표는 이 같이 이번 영입의 상징적 의미를 분명히 밝혔다.

공교롭게도 당내에서 혁신 이미지를 담당하던 안철수 의원이 최근 탈당했다. 출혈이 생긴 셈인데 더불어민주당은 김 의장 영입을 통해 재빨리 혁신 이미지를 수혈했다. 물론 당의 혁신 이미지 창출에 보탬이 된다고 해서 나쁘다는 건 아니다.

관건은 그가 실질적인 목소리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 여부다.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도 정치권이 그의 혁신 이미지만 빼먹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가 사실로 들어맞으면 게임인 대변의 꿈은 요원해지고 만다.

물론 김 의장의 포부는 당차다. “벤처창업 및 회사경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를 통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열정으로 도전하는 청년에게 안전그물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가 이런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당이 보장해줄지 지켜볼 일이다.

오너 리스크?

또 하나의 우려는 다른 층위에 자리한다. 이는 김 의장의 이번 결정이 웹젠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다.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논란의 중심에 다가선다는 의미도 있다. 여기에 잘못 휘말리면 그 여파가 웹젠에까지 가중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실제로 자본시장은 웹젠과 김 의장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의 입당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4일 웹젠의 주가는 코스닥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전일 대비 18%가량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일단은 입당 효과를 긍정적으로 본 셈이다. 다만 이 같은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리는 만무하다.

지난해 웹젠은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중국 게임사와 IP(지적재산권) 계약을 통해 멋진 반전을 보여줬다. 대표 게임인 ‘뮤온라인’ IP를 기반으로 탄생한 ‘전민기적’을 다시 국내에 ‘뮤오리진’으로 들여와 추가로 돈 버는 장면까지 보여줬다.

최근에는 중국의 치후360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기대감을 높였다. 이 같은 상황에 김 의장의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오너 리스크’가 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활에 성공한 웹젠이 다시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 출처=웹젠

규제 시련 끝낼까

“정치는 특별한 성향의 특별한 집단의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현장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의장의 말이다.

김 의장과 같이 현장에서 일했던 인물에겐 그에 맞는 정치적 과제가 부과되기 마련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그가 게임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인이 되찾아야 할 권리란 무얼까? 

게임인들이 원하는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규제 문제 해결이다. 업계 종사자 다수는 규제 포비아(phobia·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게임업계는 최근 몇 년간 규제의 유령에 시달려왔다.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웹보드게임 규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이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옥죄었다.

‘게임=마약’ 프레임을 만들어낸 일명 ‘게임중독법’과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의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손인춘법)까지 발의되면서 게임업계는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이런 시달림의 과정을 거치며 게임인들이 얻은 질병이 규제 포비아다.

게임 규제는 산업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실시 이후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1조1600억 원가량 위축됐다.

규제가 연이어 등장하자 게임인들은 정치권에 의혹을 제기했다. 자녀가 게임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부모의 표심을 노려 정치인들이 무리하게 게임 규제 법안을 마련해 게임 산업을 탄압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정치적 대응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흩어진 의견을 모아 실제적인 조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가 김 의장에게 주어진 셈이다.

규제 다음은 진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게임산업 육성 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141억 원(70% 증가) 늘어난 351억3400만 원이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특별히 효과적인 정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기간 규제에 시달린 탓에 정부 정책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진흥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도모하는 것도 김 의장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의 정치 도전이 게임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상황이 시급한 탓에 게임인들은 우려하면서도 기대를 거는 눈치다. 김 의장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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