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스토리엔 대표.

TV홈쇼핑 프로그램은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요? 답은 ‘있다’입니다. 원래 홈쇼핑은 TV방송과 쇼핑의 만남이죠. 그래서 방송을 제작하는 PD(Producer)와 상품을 구성하는 MD(Merchandiser)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MD가 준비한 상품을 PD가 방송으로 구성하고, 이를 쇼호스트(Showhost)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판매를 하게 되죠. 그런데 어떻게 문화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을까요?

2015년 12월 11일 새벽 2시. ‘귤이 빛나는 밤에’라는 CJ오쇼핑에서 시도한 문화 콘텐츠가 있었습니다. 사실 문화 콘텐츠 이전에 그냥 홈쇼핑 방송입니다. 싱어송라이터인 루시드폴(Lucid Fall, 본명 조윤석)의 7집 <누군가를 위한> 한정판을 판매하는 방송이었죠.

하지만 이 홈쇼핑 방송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듣고 서로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게스트를 초대해 입담을 보여준 리얼리티 토크쇼가 되었죠. 게다가 쇼핑 본래의 목적인 상품 판매를 불과 9분 20초 만에 완판했고요. 그래서 결국 남은 프로그램 시간인 31분가량은 온전히 음악과 게스트의 토크로 이루어졌습니다.

시청미각(視聽味覺) 생방송 ‘귤이 빛나는 밤에’는 음악과 농산물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시청미각을 듬뿍 담은 방송이었죠. 2만9900원에 판매한 상품 ‘7집 한정판 세트’를 보면, 시각적인 면에서는 루시드폴이 직접 쓴 동화책과 사진엽서가 있으며, 청각적인 면은 7집 수록곡이며, 마지막 미각적인 부분은 루시드폴이 제주도에서 직접 재배한 귤 1㎏이 담겼습니다. 싱어송라이터이며, 동화작가이며, 제주 농사꾼인 루시드폴의 스토리를 모두 담은 콜래보레이션이죠.

▲ ‘귤이 빛나는 밤에’ 방송 장면. 사진=CJ오쇼핑 방송 캡처

‘귤이 빛나는 밤에’를 문화 콘텐츠로 볼 수 있는 것은 구성에서 알 수 있죠. 프로그램은 크게 작은 음악콘서트, 토크 쇼, 게스트 인터뷰, 루시드폴 스토리로 이뤄졌습니다. 7집에 실린 루시드폴과 게스트 가수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려주었고, 가수 겸 방송인인 유희열·정재형 등이 직접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을 선사했고, 가수 김동률·이적과의 전화 인터뷰와 영상 메시지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루시드폴의 음악에 대한 스토리, 귤 농장 스토리로 꾸몄습니다. 마치 루시드폴의 작은 콘서트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느낌을 주었죠.

또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었고요. 루시드폴의 7집 앨범은 최초로 홈쇼핑에서 쇼케이스(Showcase)를 펼치고 판매를 한 거죠.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앨범의 홈쇼핑 판매죠. 게다가 농산물인 귤과 함께 콜래보레이션을 했다는 것 자체도 음악시장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죠.

그리고 전체 판매시간 40분에서 9분 20초 만에 완판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작은 토크콘서트를 진행했으니 문화 콘텐츠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른 가수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루시드폴의 홈쇼핑 프로그램은 영원히 재미있는 스토리로 남을 것입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유명한 작품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난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읊었습니다. 새해에는 ‘사람이 적게 선택 한 길’, 아니 ‘선택하지 않은 길’을 선택해 시도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 길이 바로 여러분의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