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파리기후협약(COP21)에서 전 세계 195개국이 화석에너지 시대를 끝내자고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룬 일은 지구의 운명을 바꿀 만한 사건이다. 이번 파리총회에서 합의된 내용은 ‘2100년 지구기온의 상승폭(산업화 이전 대비)을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가능하면 1.5도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한다’이다. 하지만 세계의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에 대비해서 0.8도 이상 상승한 상태이고, 과학자들의 판단에 의하면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봉쇄한다 해도 관성으로 1.6도까지는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에 각국이 자발적 감축목표라고 제출한 목표치들을 모두 달성한다 해도 섭씨 3도 이상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약속을 한 만큼 앞으로 전 지구적으로 에너지, 교통, 건설시스템에 혁명적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조달러 규모의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또 그만큼 사라질 시장이 공존한다. 앞으로 닥쳐올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비단 에너지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엄청난 기술적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세계가 미래에너지 비전에 합의했다

파리기후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은 작년 초부터 미국, 중국, 인도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심지어 산유국이나 석유재벌들도 탄소세에 대해 옹호적 입장을 취할 정도였다.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이나 국가는 항상 굵직한 비전을 내세우고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온 인류의 이익과 혜택을 추구하는 위대한 목표를 실천해 왔다. 이번에도 현명한 기업들은 앞장서서 이산화탄소 배출사업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강화해 왔다. 단기적 비즈니스 이익보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투자를 해온 셈이다. 그동안 척박한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 저장기술에 주력해온 기업들은 앞으로 커다란 시장을 만나게 될 전망이다.

‘RE100’는 100% 신재생 에너지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모임이다.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 중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력량은 전체의 50% 정도이다. 이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RE100’에 참여한 기업들은 비즈니스 사례를 공유하고 장벽을 허물고 에너지 사용실태를 투명하게 보고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RE100’에 참여한 기업들은 구글, 아도브, 오토데스크, 코카콜라, 브리티시 텔레콤, 이케아, 죤슨앤죤슨, 마이크로소프트, 네슬레, 나이키, 필립스, P&G, 스타벅스, 월마트, 유니레버, 중국의 에리온, 브로드 그룹 등 40여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이 앞장서서 신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에너지 비용이 절감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론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크게 개선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구글은 다른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다른 기업들도 구글이 경험한 청정에너지 활용기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구글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구글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동료기업들, 나아가서는 전체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전 인류적 가치증진에 기여하겠다는 기업정신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자발적 배출가스 감축 목표를 세운다

파리기후협약(COP21)이 국가적 차원에서 자발적인 온실배출가스 감축량을 합의했다면, 과학적감축목표(Science Based Targets)는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발적 감축계획을 수립하는 활동이다. 이는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공개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로드맵을 약속하는 활동으로, 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중심이 되어 UNGC(UN Global Compact), WRI(World Resource Institute), WWF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세계 150개국을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의 CEO들은 2015년 4월에 회동을 갖고, 파리기후협약에서 각국 정부는 과감한 행동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후협약이 정치적인 구호가 아닌 과학적 기반에 맞춰 실제로 지구를 살릴 수 있도록 섭씨 2도를 상한치로 두고 배출가스 삭감목표를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하자는 모임이다. 이들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마련한 ‘2도 시나리오’(2DS)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지구에너지 문제는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평균 온도가 섭씨 2도 이하로 낮아지려면 공정한 분배를 전제로 할 때 기업이나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얼마로 해야 하는지도 간단히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글로벌 경제가 매년 3.5%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국가가 GDP당 배출량을 매년 5%씩 줄이면 글로벌 배출량은 2050년까지 2010년보다 50%만큼 감축된다. 기업으로 보면 단위 ‘부가가치당 온실가스배출량’(GEVA)을 매년 5%씩 줄이는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모든 기업이 매년 GEVA를 5%씩 줄여간다면 글로벌 성과도 같아진다. 기업의 경우 이를 자발적 감축 기준선으로 삼으면 된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이렇다. 코카콜라는 핵심 비즈니스 사업에서 2020년까지 2007년도 기준에 비해 50%만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델(Dell)은 2011년을 기준으로 삼아 2020년까지 유통 부문에서 50% 줄이고 제품구성에서 80%만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P&G는 2010년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30%를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이태리 에너지기업인 에넬(Enel)은 2020년까지 2007년 대비 kWh당 이산화탄소배출량을 25%만큼 줄인다고 선언했다. 이 목표는 이태리 내의 화석연료 발전설비 13GW만큼을 폐쇄한다는 의미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필립스(Phillips)는 202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런 기업의 자발적 노력은 기업마다 배출원이 다르기 때문에 세부적인 목표나 방법은 서로 다르다. 많은 기업들이 RE100과 중첩되지만 2015년 말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116개 기업이 이 프로그램에 서명을 하고 참여하기로 했다. 이 중에는 소니, 챠이나 스틸, 혼다자동차, 르노자동차, 닛산자동차, 월마트, 로레알, 제록스 등이 있으며 한국 기업으론 유일하게 코웨이가 참여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파리기후협약을 대비해서 2014년 말 경 2020년까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합쳐서 경제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6~28%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실행계획으로 ‘기후서약을 위한 미국비즈니스사업법’(American Business Act on Climate Pledge)을 제정하고 민간 기업들을 참여를 촉구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미국 백악관 발표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154개 기업이 이 비즈니스사업법에 서명했다고 한다. 이들은 온실가스배출량을 50% 감축하고, 물 사용량을 80% 줄이며, 매립폐기물을 완전 ‘제로’로 하고, 100% 신재생에너지를 구매하며, 공급사슬에서 삼림벌목량이 ‘제로’가 되도록 한다고 서명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독일의 BMW그룹은 미국 정부 계획에 참여하여 2020년까지 자동차의 에너지소비량을 45% 줄이겠다고 다짐했다. 차량이 배출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도 2006년 대비 45%만큼 줄이겠다고 한다. 애플은 이미 미국 내에선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280 메가와트의 청정에너지 발전을 하겠다고 한다. 2011년 이후 글로벌 지점들의 시설이나 데이터센터 그리고 유통점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48% 줄였다고 한다.

미래가치를 지구공헌에서 찾아라

파리기후협약에서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배출전망(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7%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 중 25.7%만이 순수 감축목표이고 나머지 11.3%는 국제탄소시장을 이용할 계획이다. 목표치의 1/3 정도는 국내에 신재생 투자를 하는 대신에 해외시설을 투자해서 손쉽게 배출권을 사겠다는 심사다. 배출전망치도 매년 3%의 경제성장률을 가정한 상태이므로 전망치 자체가 사실상 허수다.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를 기준연도를 정한 다음에 배출가스 절대량을 감축시키는 목표를 내세웠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속도를 경감시키는 BAU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OECD 국가라고 자랑해오던 대한민국은 부끄럽게도 스스로 개도국 입장을 취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던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후협약이 비즈니스를 어렵게 하므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호해주기만 바랄 뿐, 어느 기업도 앞장서서 지구를 되살리는 배출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언론도 파리협약이 발전 산업의 문제로만 보고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 진정한 문제점인 산업경쟁력이 꺼져가고 있다는 점은 도외시하고 있다. 앞으론 배출가스를 내뿜는 기업은 스마트한 기업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산업별로 에너지 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고 대체에너지를 활용하여 지구에 공헌하는 전략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으면 글로벌 명성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도 자체 생산 공정이 탄소제로 공정이 될 수 있도록 21세기 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