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NHK-TV가 7부작 의학드라마 <파열>을 방영했다. 국가 주도의 안락사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서스펜스물인데, 초고령 사회를 앞둔 일본의 공포를 극적으로 묘사해 일본 열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극 중 심장전문의인 주인공은 ‘꿈의 치료법’ 개발에 몰두해왔다. 노화된 심장 기능을 되살리는 주사제 개발이다. 그러나 아직은 해결해야 할 부작용이 있다. 동물실험에서 정상화됐던 개의 심장이 얼마 뒤 파열됐다.

마침 노인의료비 급증을 우려하던 국민생활성의 고위 관료가 이를 보고 음모를 꾸민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부작용’이다. 그 주사를 맞은 노인들이 수개월간 정정하다가 갑작스런 돌연사로 사망하게 된다면, 연명치료 등에 투입되는 막대한 의료비 재정을 절감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관료는 국가의 온갖 권력을 동원해 치료법을 빼앗아 부작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정정-돌연사’ 시술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 노인들은 한동안 건강을 되찾지만 곧 하나 둘 쓰러져 간다. 질병을 앓던 노인 대부분이 이런 결말을 알면서도 ‘안락사’를 택한다. 이 비인간적인 의료정책은 이면의 비리들이 폭로되면서 중단된다.

일드 <파열>의 관료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 울부짖는다.

“앞으로 그 시한까지 9년, 고령자가 3500만명을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의료간호 인력 부족은 80만명 이상, 의료 급부비는 지금의 1.5배, 간호 급부비는 2배로 증가하여 나라 빚은 GDP의 2배 이상이다. 그리스보다 더한 적자국가가 된다. 다가올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무위무책으로 있으면 이 나라는 망한다.”

과연 이런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이 가능할까. 내용의 비정함이 섬뜩하다. 하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노인에 대한 의료비 부담은 한국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심사 통계를 보면, 2014년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 총액은 19조3551억원에 달했다. 비율로는 전체의 35.5%로 2013년(17조5283억원)보다 10.4%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11.9%(약 600만명)인 65세 이상 노인이 진료비 35.5%를 지출한 것이다.

일본 NHK 의료드라마 <파열>. NHK 홈페이지 캡춰.

폭증할 의료비 부담을 줄일 현실적인 방안은 없을까. 이 드라마를 함께 시청한 의사가 제시한 대안을 옮긴다.

‘한국의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치매나 연명치료에 대한 재정부담은 갈수록 늘어난다. 일본 노인은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 있다. 하지만 한국 노인은 빈곤하다. 이 때문에 일본보다 한국이 노인 의료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미 치매노인이나 연명치료가 필요한 경우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노인들에 대해서는 서둘러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자리 제공이다.'

이 주장의 합리성은 일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뒷받침된다.

최근 서울연구원이 서울의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개별 심층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노인의 69.5%가 ‘생계를 위해 일한다’고 답했다. 그들은 주당 56.3시간 일하면서 월평균 122만8000원을 벌었다.

이 같은 조사결과가 나오자 대부분의 언론이 노인들의 일자리가 너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개선될 점이 많다.

하지만 언론들은 서울연구원 조사에서 중요한 사안을 간과했다. 바로 ‘일자리 만족도’다. 노인들은 그처럼 열악한 일자리에 대해서도 60.7%가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노인은 14.1%에 그쳤다. 낮은 임금과 오랜 근로시간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일을 하고 있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 임금근로자들은 ‘평균 75.1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26.8%는 ‘80세가 넘어도 일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일하면서 건강에 자신을 갖게 된 것이다.

노인들은 정신적으로도 건강했다. 81.5%가 ‘우울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가족관계' 만족도에서도 높게 나왔다. 노인이지만,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자식들에게도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인에게 일자리는 일드 '파열'에서 말하는 '꿈의 치료법'일 수 있다. 일을 하게 되면 소득이 생겨 생계안정도 보장되지만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어 노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자존감'을 회복시켜 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일자리의 다양한 효과 때문에 정부는 노인들이 원한다면 저임의 일자리라도 최대한 마련해줘야 한다. 여기에 정부예산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노인의 건강한 시기를 최대한 연장한다면, 향후 급증할 의료비 재정 부담이 크게 완화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서둘러 노인 의료비 마스터플랜을 세워나가야 한다. '정정-돌연사' 같은 망상은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에서나 봐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