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 원장.

앞선 칼럼에서 서울 지역의 젊은 층이 가장 많이 사는 이른바 평균연령 35세 이하의 ‘청년동(洞)’ 8곳을 골라 그 지역에서 잘 되는 업종들을 분석해 소개했다. 이번에는 그 대척점에 있는 중년(평균연령 46세 이상)들이 많이 사는 ‘중년동(洞)’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평균연령 얘기가 나왔으니 잠깐 덧붙이자면, 전국적으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65.5세)지만 특수지역인 만큼 이를 제외한다면 경북 의성군 신평면 거주 인구의 평균연령이 62.9세로 가장 높다.

이번에 분석할 서울의 행정동은 평균연령 46세 이상인 총 8개 동으로, 평균 51.2세로 가장 연령대가 높은 중구 을지로동을 포함해 ▲강남구 수서동 ▲강서구 가양2동 ▲구로구 가리봉동 ▲동대문구 청량리동 ▲용산구 남영동 ▲종로구 창신1동 ▲중구 광희동 등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업종이 의료기관일 것 같다. 의료기관 가운데는 치과, 내과, 이비인후과 등이 상위에 올랐고, 요양기관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거의 모든 동에서 약국이 10위권에 들어 있다.

치과는 중년이 되면 대부분 이용하는 곳이고, 어른들은 어디가 아프면 일단 내과부터 가는 경향을 보인다. 허리가 쑤셔도 내과를 가고, 머리가 아파도 내과를 찾는 게 일반화돼 있다. 실제로 노인들이 다수인 읍·면 지역을 가면 어김없이 내과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약국이 ‘중년동’에서 잘 되는 이유도 비슷할 듯싶다. 웬만하면 병원 가기 전에 그냥 약국에서 해결했던 중년층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 중년에게 익숙한 한의원은 강서구 가양 2동에서 월평균 1억7000만원, 종로구 창신1동에서 6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도농(都農) 간 접점인 터미널 인근과 영등포역 등에서 잘 되는 업종임을 감안하면, 도심 안의 동에서 매출이 높다는 점은 ‘중년동의 효과’라고 밖에 볼 수 없을 듯하다.

기타 의료 관련 업종으로는 의료기기 판매점이 상위권에 들어 있다. 특히, 용산구 남영동의 의료기기 판매점은 월평균 2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잘 됐고, 뒤를 이어 강남구 수서동이 월평균 1억1000만원, 종로구 창신1동은 7000만원대 수준이다.

이번에는 일반 자영업종 가운데 월평균 매출이 높은 업종을 순서대로 정렬해 보았다. 그 결과 매출상위 10위 안에 든 업종은 대부분 객단가가 낮은 업종들이었다. 다른 청년동 지역에서는 상위권에 들지 못한 치킨, 호프집이 10위 안에 들었고, 냉면집도 매출이 적지 않았다. 특히 냉면의 경우 중구 광희동에서는 무려 월평균 2억원 매출을 올렸고, 을지로동에서도 1억8000만원이나 벌고 있다.

같은 면류 업종이라도 청년동에서는 국수, 쌀국수 등이 잘 되는 반면, 중년동에서는 냉면이 더 인기 업종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자동차정비센터(카센터)도 중년동에서는 유망업종으로 랭크됐다. 중구 광희동에 있는 자동차정비센터는 월매출 1억9000만원을 올리고 있고, 구로구 가리봉동은 1억5000만원, 용산구 남영동도 1억2000만원, 그리고 청량리동 역시 자동차정비센터가 10위안에 들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 2013년 말 현재 2000만대를 넘어섰고, 그 가운데 40~50대 소유자 비율이 60%에 이른다. 이들 동(洞)으로 가면 자동차정비센터가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료 사진.

언급한 매출 상위 업종만 보면 연령대와 상관없이 여타 다른 동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아서, 중년동만의 특이점을 찾아보기 위해 업종을 더 넓혀서 분석해 봤다. 첫눈에 들어온 업종은 건강 관련 업종과 향수(鄕愁) 업종이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와 관련된 업종이 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 언급했지만 의료기기 전문점이 잘 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건강식품 판매점이 매출 상위 업종에 올랐고, 사라져가는 목욕탕도 중구 광희동에서는 1억2000만원이나 올렸다.

분석대상 163개 업종 가운데 찐빵집도 10위 안에 든 중년동이 있는데, 바로 중구 광희동이다. 이곳에 찐빵집은 3개가 있는데 월평균 1억3000만원이나 올렸고, 평균 생존기간도 6년으로 장수하는 업종으로 나타났다. 요일 중에서는 토요일이 24%로 4분의 1을 차지했고, 하루 중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3시간)에 하루 매출의 33%를 팔았다.

2657세대에 6096명(2015년)이 살고 있는 광희동에서 무슨 찐빵이 그리 잘 팔릴까 싶어서 지도를 들여다보니, 동쪽은 동대문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중구청에 이르기까지 대형 패션시장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쇼핑객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간이 찐빵을 사 먹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찐빵은 중년층이 주 고객이고, 토요일, 그것도 이른 오후 시간에 상당한 매출을 올려주고 있다.

지하철 3호선이 중앙을 관통하는 또 다른 장년동, 수서동은 주류와 묶이는 업종들이 상위에 올랐다. 갈비와 치킨, 족발과 소주방 등이 10위 안에 들었고, 연계 업종인 노래방도 월평균 8300만원이나 이를 정도로 잘 됐다. 다만 이 지역 4개의 노래방 업력은 1.8년에 불과한 점으로 미루어 최근에 특별히 잘 되는 대형 노래방이 생긴 게 아닐까 판단된다.

필자가 중년동을 따로 추려내서 분석한 이유는 고령사회로 접어들면 자영업 시장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평균연령은 2015년 현재 40.3세이며, 일본은 46세다(후생노동성/2015). 우리나라가 일본의 현재 평균연령과 같아지는 시점은 오는 2030년으로 그때가 되면 46.2세가 된다(통계청/장래인구 추계).

일본의 경우를 보면, 18년 전인 1997년에 평균연령이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40.5세였고 중위값도 비슷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10년’의 중간 무렵에 40세가 대칭이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다시 ‘제2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 바로 그 시기, 즉 2000년대 들어 자영업 시장의 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이전에는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빛났다. 해외에서 도입되는 신업종이나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창업한 사례가 많았다. 1997년 당시 필자와 교류하던 ‘아이디어 스파크’라는 회사를 방문했을 때도 아이디어를 사고팔기 위해 상담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러한 경향은 안정지향 업종으로 바뀌었다. 즉, 신업종보다 전통업종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음식 단가를 올리지 못했거나 오히려 내려갔다는 점만 다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환경으로 가고 있다. 쇠고기 값이 오르자 돼지고기가 잘 팔리고, 고급뷔페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저가뷔페가 급성장을 하고, 고급커피가 뜨는가 싶더니 저가커피점이 성장세인 점 등을 보면 그 시절 일본과 맥이 닿아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면 평균연령이 높아질수록 탕류나 일반 한식, 중국음식점, 냉면집, 고기, 족발 같은 전통업종들이 안정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평균연령이 높아지면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음식업에서 소매·서비스업으로 그 비중이 옮겨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의 자영소매업 종사자 수는 71만 6000명으로 요식업의 41만명보다 30만명이나 많다(2015년 일본 통계청).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보자. 국세청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2004~2013년) 음식과 소매업, 서비스업의 창업 비중이 19%대로 비슷하지만, 폐업비율은 음식업이 22%로 소매업(20.5%)이나 서비스업(19.8%)보다 더 높다. 따라서 미미하지만 음식업에서 소매·서비스업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애완동물 같은 특수 시장도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애완동물도 저가로 향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18년 전 일본의 애완동물 시장은 ‘애견 대(對) 고양이’가 68대 32였으나, 최근 3년간 애견 수는 13% 줄어서 지금은 51대 49로 거의 비슷하다.

이유는 사육비에 있다. 두 동물 모두 평균수명이 15년 전후로 비슷한데 생애평균 사육비는 애완견 120만엔인 데 비해 고양이는 70만엔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고양이 사육가구 수가 최근 3년간 무려 63.7%나 증가했다. 개의 25% 증가에 비하면 대단한 증가 속도다(2015년 농림축산검역본부).

물론 이러한 흐름은 단지 한두 가지 데이터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가 주는 메시지에서 디테일까지 읽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하나의 패턴을 읽기에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어쨌든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업종보다 전통업종으로, 그리고 고가보다 저가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음식업보다 소매 혹은 서비스업으로 방향을 틀어보는 것이 오래 갈 수 있는 조건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