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유체역학을 규명한 항공우주학자로 유명한 시어도어 폰 칼만(Theodore von Karmen)은 ‘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걸 발견하는 일이고, 공학은 존재하지 않았던 걸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인류문명의 도구는 자연과학(Science)을 이해하고, 공학적인(Engineering) 수단을 동원해서 인류가 원하는 형태로 맞춰낸(Customized)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에 흩어진 물질들을 분해하고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물질들로 만들어냈다. 흙을 이용해서 도자기를 만들어냈고, 광물질을 정련해서 금속들을 생산해냈다. 금속을 가공해서 부품으로 만들고, 그들을 결합시켜 기계장치로 만들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금속의 전자기 특성을 발견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는 전기혁명도 일으켰다. 자연계 물질 중에는 금속과 같이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와 도자기와 같이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공학적으로 도체가 되기도 하고 부도체가 되기도 하는 반도체를 발명하게 된다. 반도체는 전자공학을 탄생시켰고 현대기술문명의 거의 모든 걸 지배하는 컴퓨터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이 됐다. 전자계산기 정도로만 이해되었던 컴퓨터 발달은 1980년 이후 인류문명을 전혀 다른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 컴퓨터를 서로 연결한 인터넷이 문명의 실핏줄이 되어 온 세계인들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는 통로가 되었고 오늘날 모바일혁명과 인공지능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명의 신비도 공학적 대상이 되었다

자연과학의 마지막 성지로 남아 있던 생명의 신비마저도 이젠 발견의 대상이 아니고 공학적 수단이 되어 있다. 자연과학인 생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유전, 번식, 자기제어, 물질대사 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학문이다. 반면 생명공학은 생물체를 이용해서 인류에게 필요한 물질과 서비스를 가공 생산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던 형질을 얻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삽입시키는 방법으로,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조작하여 서비스나 상품의 질을 혁신시킨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같은 형식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유전 정보의 구성이나 변화에 따라서 생물체의 각 기관이 만들어지고 기능이 달라지므로, 생명의 기본 요소인 DNA(디옥시리보핵산)를 서로 교차시켜 형질을 변화시키는 조작이 가능하다.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DNA 정보를 파악하게 되었고 생물마다 고유의 DNA 정보를 분석하게 되었다. 이 DNA 정보를 기반으로 한 생명공학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명체의 본질을 바꾸는 기술로 발전해 가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은 궁극적으론 인공생명체의 탄생까지도 가능케 할지 모르겠지만, 인류의 관심은 바이오의약품, 바이오 합성소재, 바이오식품에 보다 더 집중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세포조직과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물질들도 단백질로 만들어 진다. 단백질들은 DNA의 청사진에 따라서 세포내에서 제조된다. 생물체의 진화과정도 DNA의 돌연변이를 통해 단백질 청사진이 바뀌고 더 효과적인 새로운 단백질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단백질들을 식품, 산업용 효소, 항암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 특별한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DNA 서열과 단백질의 상관관계를 잘 이해해서 용도에 가장 알맞은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이다.

 

단백질 제조기술은 DNA 편집기술이다

바이오의약품(생물학적 제제)은 살아있는 세포에서 제조된 단백질 또는 이들의 복합체이다. 보통 이스트나 박테리아 세포를 이용하지만 포유류 세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포유류 세포는 중국산 햄스터의 난소세포(CHO)다. 단백질은 분자량(>10kDa)이 매우 크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인공적으로 분자반응을 일으켜 직접 제조하지 못한다. 인공적으로 만들기엔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생명체의 세포 핵 속에 원하는 단백질 청사진을 유전자 서열로 표현해주면 세포는 그대로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단백질 제조기술은 정확한 DNA 편집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라고 불리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수만 개의 유전자 중 원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쉽게 잘라내고 새로운 DNA를 유전체에 삽입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 편집은 최고의 전문가도 힘든 일이었는데, 이젠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Cas9’ 단백질 대신에 ‘CPf1’ 단백질을 사용하면 외부의 DNA를 유전체에 삽입시키는데 더 효과적이란 연구보고도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생명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DNA, 단백질 등의 생물체 구성요소나 정보를 활용하여 제조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난치성 만성질환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바이오의약품은 유전자 재조합의약품(단백질의약품, 항체의약품), 백신, 바이오시밀러, 천연물 의약품,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등으로 나뉜다.

유전자 재조합의약품은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하여 제조되는 펩타이드 또는 단백질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단백질 의약품과 항체의약품을 말하며 성장호르몬, 인터페론, 진단시약제제, 인슐린, 단클론 항체 등이 있다. 백신은 감염병 질환의 예방 등을 목적으로 투여하는 항원단백질 또는 미생물체 (세균, 바이러스 등)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 발현체계(Gene Expression System)를 이용하여 치료 유전자를 질병 부위에 전달하여 잘못된 유전자를 대치하거나 주변에서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유전자 치료제가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데 종양, 심혈관 질환 및 감염성 질환, 퇴행성 질환, 유전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표적으로 한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세포 치료제란 세포와 조직의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 살아있는 자가, 동종, 이종세포를 체외에서 배양 증식, 선별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물학적 특성을 변화시켜 치료에 이용하는 의약품이다. 연골세포 치료제, 항암세포 치료제, 줄기세포 치료제 등이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유사품이다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을 의미한다.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과 임상적으로 매우 비슷한 효능을 지닌 의약품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화학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 약품과 달리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하여 만들므로, 아무리 염기서열이 동등한 약품을 개발하려 해도 복잡한 구조로 인해 오리지널과 동일한 복제약이 안 되고 유사(Similar) 약품이 될 뿐이다. 미국 FDA는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을 근 3년 동안 미루다가 2015년에야 내놓았을 정도다. 임상실험이 불필요한 제네릭 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시밀러는 안전성과 효능, 생물학적 동등성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개발에 비하면 비임상 및 임상 단계가 간소화되어, 보다 적은 연구개발 비용과 단축된 개발 기간이 소요된다. 바이오시밀러는 개발 비용이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1/10 수준이고 소요 기간은 1/2인 반면, 개발 성공률은 10배가량 높아 효율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도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조환경이 변하면 성능이 같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대규모 생산설비만 갖춘다고 좋은 바이오의약품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바이오의약품 생산 경험이 많은 제조기술력이 매우 중요하다.

바이오의약품은 개발과정이 어렵고 힘들어도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진입장벽이 매우 높아서 독과점 시장이 보장되고 약가도 높아 매력적이다. 바이오의약품의 강점은 체내 면역기능 강화에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항체의약품 즉 면역단백질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인체 스스로가 면역력을 높여 병원균을 방어할 수 있는 ‘치료백신’이나 ‘항암면역’ 제제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바이오산업의 첨병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인천 송도지역에 바이오의약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세 번째 공장을 대규모로 투자한다고 발표를 했다. 전 세계 생물약제 업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고의 생산능력과 세계적 수준의 품질 수준을 제공하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가 되겠다고 발표했다. 바이오의약품의 생산 기술력을 높이고 바이오 제약산업의 속성을 빠르게 추격하고픈 전략으로 보고 싶다. 위탁생산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안 봐도 뻔하다. 제발 미래의 독자 브랜드 바이오의약품들을 개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