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젤 신드롬의 주역 폭스바겐 골프 TDI 블루모션. 사진 제공/ 폭스바겐 AG

추락하는 폭스바겐 골프에 이렇다 할 날개가 없어 보인다. 반면 미니는 덩치를 더 키운 클럽맨을 선보이는 등 여전히 자신감이 넘친다. 이쯤에서 골프는 또래 친구쯤 되는 미니의 사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미니와 골프. 얼핏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차다. 해치백의 교과서로 통하는 골프는 숫자로 말하는 차이다. 더 뛰어난 연비와 낮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비용 절감으로 스테디셀러의 명예를 지켜야하는 숙명이랄까. 하지만 결국 골프의 숫자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의 참사를 낳았다. 반면 미니는 다른 차들과 유유상종하며 숫자 싸움을 하는 대신 애플, 나이키 등과 아이코닉 디자인을 놓고 경쟁했다. 그래서 다들 연례행사처럼 하는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도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미니도 3세대 모델부터 BMW의 차들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비용을 아끼려 애쓰고 있다. 다만 숫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뿐이다. 미니가 유일하게 강조한 숫자가 지난해 처음 선보인 5도어 모델의 ‘5’일 정도다.

▲ 미니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미니 클럽맨. 사진 제공/ BMW AG

사람들은 이런 미니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니가 처음 세상에 나타난 2001년이나 지금이나 미니를 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부르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사실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인 BMW의 철저한 브랜드 관리가 있다. 미니는 1994년 BMW의 패밀리가 된 뒤에도 변함없이 영국의 옥스퍼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다른 회사와 합병된 이후 정체가 모호해진 몇몇 브랜드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미니는 일종의 주문형 생산 방식을 취하는데 페인트, 루프, 소프트톱 등 익스테리어 옵션만 319가지에 달한다. 여기에 인테리어 재질과 트림 옵션이 372가지. 이것들을 조합해 이론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경5천 조 가지에 이른다. 이쯤에서 아이폰 액세서리나 애플리케이션의 조합이 오버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니는 차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적의 아이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SNS에는 미니 이야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미니를 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 말이 마치 나야말로 진정한 트렌드세터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 나만의 차를 꾸밀 수 있는 아이코닉한 미니. 사진 제공/ BMW AG

미니는 작은 덩치에 비해 비싸다. 국내에서 가장 싼 미니가 2천970만원일 정도다. 유일한 2천만원 대 미니는 문이 3개고 에어컨도 수동이며 내비게이션도 없다. 행여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다른 차를 떠올리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미니의 주인이 되기가 어려워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미니가 비싸다는 건 알지만, 크게 불평하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셈인데, 이게 바로 아이코닉 브랜드의 힘이다. 일단 ‘아이콘’이 되고 나면 오랫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르곤 한다. 해마다 변신에 가까운 성형을 하는 깜짝 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미니는 스스로를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차, 미니는 그냥 미니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BMW 미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BMW 롤스로이스’란 말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수많은 경쟁자들과 항상 비교되며 그들의 거센 도전에 시달리는 폭스바겐 골프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돈이 많건 적건 미니를 타는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남의 시선을 받는 것에 비교적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슈퍼 울트라 노멀’한 골프도 이런 ‘애브노멀’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긴 세월 해치백의 교과서로 자리를 지킨 골프의 공이 과에 가려 희미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