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한 해 중 최고의 대목을 맞던 영어학원의 풍경이 달라졌다. 불황 ‘무풍지대’라고 자부하던 대형 영어학원들도 여느 때와는 달리 썰렁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다. 실제로 2010년 2만3317명에 육박하던 전국의 원어민 강사는 8년 전 수준으로 급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9월말 현재 전국에 체류하고 있는 원어민 강사 비자(E-2 비자) 소유자는 1만6560명에 불과하다. 학원가의 강사 수요 감소 때문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 열기가 사그라진 것이냐 하면 그 건 아닌 것 같다. 각종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직, 승진, 재취업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에서조차 영어가 필수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최수인 씨는 일주일에 수차례 본사와 화상 회의를 하고 해외 출장도 잦은 편이다. 때문에 최 씨는 입사 당시의 영어 시험 점수와는 별개로 실무에서 비즈니스 회화와 문서 작성 등 다양한 영어 활용 능력이 계속 요구돼 곤혹스럽다는 하소연이다.

국내 회사에서 외국인 직원들을 찾아보기도 전과는 달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에서의 영어 능력은 어느 때보다 강도높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새벽밥을 먹고 학원으로 향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영어 교육도 ‘스마트’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스마트’한 기기들 속으로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앱)을 검색해보면 영어 회화나 영어 작문법 등 영어 교육 앱 수백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학원에서 원어민 대면 영어 수업을 듣거나 전화 영어 서비스를 이용하던 직장인 강소연씨도 최근에 모바일 영어교육 앱을 고려하고 있다. 오프라인 수업은 일주일에 2~3번 예약제로 진행되는데 수업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나마도 수업 기회를 날리게 됐다. 직장인은 예기치 않은 야근이나 회식, 회의 등 업무 지연이 다반사로 처음의 결심과는 달리 결석이 잦아졌다.

강 씨는 학원의 1:1 프로그램 한달 수강료 정도에 불과한 돈으로 1년은 너끈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어민 강사에게 1:1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영어회화 앱으로 갈아타면서 한결 편하고 부담이 적다고 전했다.

언제, 어디서든 원어민 강사의 1:1 영어회화 수업을 제공하는 이른바 ‘온디맨드’ 영어교육 앱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마치 콜택시처럼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들이다. ‘전화영어 그 이상의 영어회화 앱’이라는 컨셉으로 출시한 ‘캠블리’, 원어민 강사를 실시간으로 매칭해주는 '글로비', 실시간 원어민 영작 교정서비스 ‘채팅캣’ 등이 그 주인공이다.

'캠블리'는 구글 출신 엔지니어가 개발한 영어회화 앱이다. 캠블리의 이희승 아시아 총괄은 “엄선된 원어민 강사와 함께 현지에서 실제로 쓰이는 표현과 발음을 연습하고 다양한 관심 분야에 대해서 다룰 수도 있다”고 자랑한다. 그는 소지하고 있는 핸드폰, 노트북, 타블렛 PC 등을 통해 간편하고도 저렴하게 1:1 원어민 영어과외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글로비'도 언제든 원어민 강사의 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온디맨드’ 영어회화 앱이다. 원어민 강사가 자신의 학력과 경력 등을 공개하고 수업료를 제시하면 사용자는 이를 바탕으로 강사를 선택해 수업을 진행한다. 1회당(1시간30분) 수업료는 1만~6만 원 선으로 화상채팅이 아닌 원어민을 직접 만나 수업을 진행하도록 주선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글로비는 인터페이스가 단순하고 깔끔하며 강사들의 프로필이 투명하게 공개돼 신뢰가 간다는 등의 호평을 얻고 있다.

한국인의 고질적인 ‘콩글리시’를 교정하기 위한 실시간 교정 앱도 있는데 바로 IBM 마케터 출신 김용경(에이프릴 김) 대표의 ‘채팅캣’이다. 채팅캣은 사용자가 웹이나 모바일 브라우저를 통해 영어 문장을 입력하면 온라인에 대기중인 영어 원어민 튜터가 문장을 실시간으로 교정해 주는 서비스다. 회의실에서 스마트폰으로 화상회의 연습을 하고 중요한 비즈니스 이메일은 보내기 전에 교정을 받고, 저녁에는 iPad에서 가볍게 원어민과 영어로 수다를 떠는 모습이 일상화되는 단계다.

이처럼 영어 교육만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내 논 영어교육 서비스 외에도 CNN 뉴스, EBS 등의 미디어, 대형 학원이나 스타 강사가 내놓는 온라인 서비스와 영어교육 앱은 하루만에도 수없이 쏟아진다. 수험생들에게 온라인 강의가 강의실 강의를 대체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평생 교육의 시대, 시간과 비용은 여전히 부족한 직장인들을 타겟으로 한 ‘온디맨드’ 영어교육은 새로운 차원의 편의성을 담보로 성장 중이다.

 

<미니인터뷰> 캠블리(CAMBLY) 이희승 아시아총괄

▲ 이희승 캠블리 아시아총괄.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세계 최고의 명문이라는 하버드대 졸업장을 내던지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합류한 한인 기업가가 있다. 온디맨드 영어교육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캠블리'의 이희승 아시아총괄의 이야기다. 서울 이코노믹리뷰 사무실을 찾은 이 총괄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페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 성장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에게 모국어가 아닌 영어라는 숙제는 일찍부터 그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는 “지금은 영어 외에도 몇가지 외국어를 편하게 구사하지만 학창시절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고 토로한다.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어렵게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주위에 비슷한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 비즈니스로 진출해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길을 택했다. 그 때 이 총괄은 엉뚱하게도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열정에 사로잡혀 한 학기를 남기고 학교를 중퇴했다.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의 컨퍼런스 준비에 참여하게 됐어요. 컨퍼런스 연사를 섭외하는 등 기획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났죠.” 그는 그 때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문제는 다름 아닌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실리콘밸리로 갔다. 캠블리를 만난 것은 그 때였다. 캠블리는 미국 대표 액셀러레이터 Y콤비네이터 14 배치 출신의 유망한 영어교육 전문 앱이었다.“전화 영어나 오프라인 영어 수업은 사용자 입장에서 월단위로 수업료를 납부하지만 수업 시간 맞추기가 어렵잖아요. 가령 미팅이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길어진다든가. 캠블리를 통하면 예약하지 않아도 365일 24시간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교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요.”

구글 출신인 캠블리 엔지니어는 예약 과정이 불편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가장 편하고 단순한 플랫폼을 구축했다. 사용자의 수준에 맞는 1:1 수업이 가능하고 1시간당 4~6만원으로 기존의 전화영어보다 저렴하다. 강사들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 일정 점수가 안나오면 ‘페널티’를 주는 등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는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전 두가지를 자문했다. ‘시장이 있나’와 ‘내가 잘 할 수 있나’였다. 그는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을 보며 영어교육계가 레드오션이라고 해도 시장은 분명 있다고 봤다. “5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했는데 언어 공부 방면에서는 남들보다 노하우가 있다고 자부해요(웃음).”

이 총괄은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의 다른 점은 다름 아닌 ‘계약서를 중요시하는 문화’라고 답한다. 미국 스타트업계에서 계약서는 한 자 한 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 중요 문서다. 팀을 이뤄 일을 할 때도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신중을 기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