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가장 대표적인 제조업체를 들라고 하면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 식 조립생산 라인을 도입한 포드자동차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기업이라면 남이 만들지 못하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체를 꼽았다. 하지만 더 이상 제조업체가 훌륭한 기업이란 판단이 통하지 않는다. 2014년도에 세계에서 가장 영업이익을 많이 낸 기술기업은 애플이다. 매출액 순위로는 삼성전자(13위)보다 뒤진 15위지만, 영업이익은 395억달러를 기록해서 중국통상은행(447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애플은 스마트폰과 PC를 공급하면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PC는 특별한 상품이 아니다. 어느 기업이나 자신의 브랜드를 앞세워 전자제품 전문 제조업체에 의뢰하여 쉽게 생산할 수 있는 보통 상품이다. 그런데 애플은 이 평범한 상품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애플만이 차별화되는 스티브 잡스의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 깨알같이 섬세한 서비스를 느끼게 된다. 기기의 작동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 단순하며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필요가 없이 필요한 서비스가 내장되어 있다. 원하는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다른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 한 차원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하드웨어만 달랑 파는 것이 아니고 남다른 체험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묶어서 함께 제공해 준다.

설비투자가 극심한 제조공정은 위탁한다

애플은 자체 브랜드로 여러 종류의 상품들을 판매하지만 자체 생산 공장이 없다. 상품을 설계하고 하드웨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제작하지만 하드웨어는 직접 제조하거나 조립하지 않는다. 제조업체란 원료나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해서 최종 고객이 원하는 상품으로 바꿔주는 공정을 주업으로 삼는 기업을 의미한다. 공장 부지에 기계나 로봇을 배열하고 종업원이 설비를 조작하여 대규모 생산 활동을 하는 기업을 제조업이라고 정의한다. 설비투자가 크고 기술발달에 의한 재투자 수요가 극심하다. 따라서 애플은 제조업을 피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로 상품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아이폰이 시장에서 가장 고가로 팔리는 이유는 하드웨어의 디자인과 사양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고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차별성을 느낄 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애플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iOS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번 이 생태계의 서비스를 맛보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빠져 나가기는커녕 다른 종류의 전자제품을 구입할 때도 iOS 생태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애플 제품으로 구입하게 된다. 한번 iOS 생태계를 체험해보면 엄청난 충성심을 발휘한다. 애플의 경쟁력은 하드웨어의 우수성에 있지 않고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차별성에 있다.

반면에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어느 업체든 스마트폰을 만들어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설치하면 타사 제품과 같은 수준의 생태계를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함에 있어서 하드웨어의 차별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저가의 하드웨어를 구입해도 실질적인 활용도나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가 비싼 하드웨어와 별 차이가 없다. 하드웨어를 타사 제품으로 바꿔도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하드웨어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 물론 OS를 공짜로 제공하여 생태계를 장악한 구글의 비즈니스는 번창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하드웨어 업체들 간에는 차별성이 없어서 시장을 장악하는 힘이 약하다.

제조업의 이윤은 박하다

애플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곳은 대만의 혼 하이(Hon Hai)그룹의 폭스콘(Foxconn)이다. 폭스콘은 조업원이 106만명이나 되는 대형 전자제품 제조업체(EMS)이다. 주문자 브랜드로 컴퓨터, 통신기기, 소비자가전, 로봇 등을 제조하여 납품한다. 애플뿐만 아니라 노키아, 모토롤라, 화웨이, 샤오미의 스마트폰을 생산한다. HP, Dell, Acer의 컴퓨터를 제조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소니의 게임기를 만든다. 전 세계 전자제품의 도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품회사나 유통회사 또는 통신회사가 스마트폰을 주문해도 특허에 적용되지 않는 한 전부 만들어줄 수 있다. 전 세계 전자제품을 도맡아 제조하는 공장이다. 이렇게 주문자상품만을 제조하여 공급하는 기업들이 많다. 흥미로운 점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보다 서비스하는 기업들이 비대칭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2014년도에 애플이나 구글의 영업이익율이 20% 이상인 데 비해서 폭스콘의 영업이익율은 겨우 3%인 점이 극면하게 대비된다. 상품의 설계, 제조,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율은 11%였다. 상품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면 상품을 잘 파는 업체가 마진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이미 농업사회에선 당연시되어 왔다. 예를 들면 배추의 시장가격에서 생산자 비중은 배추가격의 25~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75%는 유통업자들이 나눠 먹는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제트 엔진, 기관차 엔진, 발전소 증기엔진 등을 전문으로 제조해온 기업이다. 당연히 비즈니스의 목표는 효율이 높은 엔진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물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동안 상품으로 판매해왔던 엔진에 수많은 센서들을 삽입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수집된 데이터는 여러 가지 사례로 분석되어 엔진이 언제 가장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제너럴 일렉트릭은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지금까지 상품으로 판매해 왔던 엔진은 공짜로 고객에게 제공하고 대신에 고객에게 최상의 엔진 성능을 보장하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산업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실시간 데이터 해석 및 정비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2014년도에 이 새로운 서비스 매출액이 1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2015년도엔 50억달러 2020년도엔 150억달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점진적으로 엔진판매보다 엔진성능 보증서비스 쪽으로 비즈니스를 전환한다고 한다.

자동차도 서비스 상품으로 바뀐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차량 개발은 본사 연구개발팀에서 하고 조립생산은 현지에 공장을 설치하여 생산비와 운송비를 줄이고 있다. 일부 모델은 하청기업에 위탁생산하기도 한다. 앞으로 전기차가 확산되면 비즈니스 모델에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부품 수는 구동계만 보면 약 1만개 정도 된다. 반면에 전기차의 구동계 부품 수는 20개 이내다. 조립생산이 간편해지면서 차량성능의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당연히 스마트폰과 같이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전문 조립생산업체가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자동차산업이 재편될 수 있다. 그땐 자동차 전문 업체가 따로 있지 않고 다른 산업에서 성공한 브랜드가 자동차산업에 침두해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성능 구분은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의 종류에 따라서 즉 iOS, 안드로이드, 윈도우로 판별하게 된다. 그리고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는 사라지고 고객에게 사랑받는 패션브랜드로 자동차가 판매될 수 있다. 자동차는 교통기관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서 멋의 상징이거나 특화된 서비스를 선택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같은 차량제어 소프트웨어 생태계 속에서도 디자인과 차량을 통해 전달하는 특별한 서비스로 서로 경쟁하게 된다. 또 차량을 판매하는 대신에 차량의 성능보장 서비스를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채 1년 동안 차량을 이용해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보장하는 렌탈 서비스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앞으론 차량의 모든 상태를 인터넷을 통해 모니터링할 수 있으므로 주기적인 업그레이드나 차량정비 그리고 고장진단을 원격으로 관리해줄 수 있게 된다.

사물인터넷(IOT)은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연결하는 통신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함께 결합한 정보의 흐름이다. IOT를 활용한다는 의미는 기존 하드웨어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의미 있는 정보로 바꾸고 이를 이용해서 고객이 감탄할 만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 서비스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 방법을 제시해 줘야 한다. 사물인터넷 기술이 발달할수록 상품판매의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판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제조업의 변신은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본다. 그 하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통해 이종 상품과의 융합을 촉진하는 플랫폼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를 통해 제공하는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이다.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 앞으론 하드웨어가 아니고 서비스로 바뀐다는 점이다. 하드웨어 상품은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상품을 구매하여 소유하던 시절엔 상품의 내구성이 중요한 경쟁 요소였지만 이제는 상품을 통해 전달되는 서비스의 질이 중요한 시대다. 서비스의 질은 고객이 느끼는 만족감으로 측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