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안을 통과시켰다.[사진: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


정부가 ‘빚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한국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제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금융산업을 위협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상 최초로 800조원을 돌파한 가계대출. 한국은행은 10일 예상을 뒤엎고 유일한 해법으로 꼽히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의 가계부채, 미국 서브프라임 때보다 심각하다.” 무디스가 최근 한국 경제에 위기론을 꺼냈다. 세계은행, 골드만삭스 등이 2050년까지 세계 경제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보고서를 낸지 한 달 만의 일이다. 왜일까. 엄청난 가계대출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가계대출이 800조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중 주택 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480조원을 넘는 수치다. 문제는 3월이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한국경제에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무디스가 눈여겨본 것은 금리 인상이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인상이 시작되면 시한폭탄의 시계바늘은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개인 채무자 확대가 금융기관들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한 가지. 무디스는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 미국의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가 인상된다고 해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확언했다. 경제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었던 ‘금융시스템이 스스로 규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엘린 그린스펀 전 미 미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이 서브프라임의 우려가 제기되자 “시장은 언제나 옳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가장 큰 지지를 보낸 곳이 무디스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시장은 틀렸고, 예측이 실패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디스의 치명적 약점이 됐다. 이런 측면에서 무디스는 가계대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금리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여파를 몸소 실감했다. 무디스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일단 신규대출은 줄겠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3.25%로 인상했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로 높은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판단, 금통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의 이자율 부담 증가를 우려, 금리를 동결했지만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추가 금리 인상이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과 같은 물가 상승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추가적인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제연구소들은 하반기 수요측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이자부담률의 증가로 가계의 줄도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개인의 연간 이자 부담은 5조4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현재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기준 가계부채 규모가 801조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 12월 795조원이었지만 3개월 사이 6조원이 증가했다. 현재 같은 추세로 봤을 때 연말까지 8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부에선 기준금리를 인상, 가계부채가 감소할 것이란 신중론 펼치고 있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기준금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배경에서다.

2008년 가계부채는 688조원.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한은 2009년 2월 기준금리를 2%대로 낮추자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2011년 3월까지 800조원의 가계대출은 카드대란이 있던 지난 2002년 3분기 26조8000억원이 증가된 이후 8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평균 가계부채는 4611만원으로 2007년말 3842만원과 비교하면 770만원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기준 146.1%로 미국(120.0%), 일본(110.7%)에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금융권에선 걱정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심각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계대출이 늘면서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가계대출의 증가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일종의 신호다.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선 것도 신호를 읽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의 증가속도에 비해 돈을 갚을 능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물가상승과 이자부담에 허덕인 가계가 저축을 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 평균 자산 구성 중 금융자산 비중(2010년 기준)은 21.4%, 부동산 비율이 75.6%를 차지하고 있다. 저축률은 2.8%.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올해 저축률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부채부담이 커지면 금융자산으로 대응하기 힘들고, 금융권의 부채상환이 시작되면 가계부채의 문제는 장기화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탈출구가 필요하다. 경제전문가들은 금리인상을 유일한 해법으로 꼽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금리인상은 가계의 이자부담으로 이어지고, 이자부담에 허리가 휜 가계는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가계부담의 증가는 한국경제 성장률 하락과 직결 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저축률이 하락하고, 경제성장률도 둔화된다. 경제상장률이 떨어지면 소득이 감소, 가계부채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정부도 이 같은 점에 주목, 금리인상과 관련해 가계대출 이자부담의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해 이달 중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흔들리는 중산층 버티기가 관건

금리 인상이란 주사위는 던져졌다. 관건은 중산층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30∼40대 중산층에 집중돼 있다.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이 대부분. 상환에 있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증가율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에 있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이자 증가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0.2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은 향후 보다 강력한 가계부채 줄이기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점을 시장에 알리는 신호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금리 인상과 더불어 단기화 돼 있는 만기를 장기화하는 정책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 한 상태에서 시장의 흐름에 맡겨야만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경제전문가들은 강력한 규제와 동시에 가계부채 상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했다. 국내 가계대출 중 주택 관련 대출 비중이 높아 ‘맞춤형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만기 일시 상환을 원금 분할 상환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원금 분할 상환의 경우 거치기간의 과도한 연장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주택담보대출 금리차 역대 최고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간 금리차가 역대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간 금리 차는 1.79%포인트로 신용대출 통계가 집계된 2001년 9월 이후 최대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이 4월 새로 취급한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의 금리는 4월 평균 6.67%. 전달보다 0.09%포인트가 상승한 수치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선 0.86%포인트가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월 평균 4.88%. 전달보다 0.0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말에 비해선 0.21%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신용대출 보다 낮은 수치다.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간 금리 차는 1.79%포인트로 전달보다 0.10%포인트 확대되며, 신용대출 통계가 집계된 2001년 9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대출을 늘리려다 보니 금리격차가 벌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금리 신용대출의 경우 주택관련 대출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경고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