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에서 예전에는 은퇴를 대비했다면 이제는 100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홍보하는 광고들을 자주 접한다. 100세 시대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부를 포함해 보험, 금융, 의학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직도 챙겨야 할 자식들의 교육과 결혼 등 준비로 정작 본인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할 여건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60대 초반의 A 씨는 디자인 분야의 탁월한 성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전에 벤처기업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일부 젊은 벤처 사업가들의 로망이었던 ‘40대 은퇴’를 이루고자 회사를 타 기업과 합병해 큰 목돈을 가지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때만 해도 은퇴 뒤 어떻게 살지 구체적인 패러다임이 서 있지 않았고, 금융자산 운영도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그 결과 불과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노후 은퇴자금으로 넉넉하다고 여겼던 자금은 중형 아파트 한 채와 작은 가게의 세를 얻을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도 있던 터라 A는 곧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집과 가게를 처분하고 노후를 그리며 살던 정든 지역을 떠나 비용이 덜 드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 새로운 창업을 모색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은퇴하다’에 해당하는 영어단어의 하나로 ‘Retire’가 있는데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우고 새로 시작하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즉 은퇴는 현업의 중단이 아니라 새로운 현업 종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100세 시대의 대비는 과연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우리를 예상키 어려운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한자 ‘老’라는 말은 나이 들어 땅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예전에는 ‘꼬부랑 할머니’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요즘은 주위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즉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는 가벼운 방증이다. 꼬부랑 할머니의 운신의 폭과는 달리 건강한 노년을 그것도 더 길게 맞이하게 될 요즘의 세대는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자신의 커리어를 디자인해 적극적으로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에 대해 꿈을 꾸는 아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반드시 단 하나로 모아져야만 하는 게 아님을 깨닫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또한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각 연령에 맞는 설계가 우선되어야 함을 전제로 다음을 미리 대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젊은 날에 자신이 원하는 것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가가지 못했다면 이후 다음의 직업으로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신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 순간부터 인생의 2모작을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비단 경제적인 분야에서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와는 별도로 자신이 종사할 ‘업(業)’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여타의 제약으로 가지 못한 길이 자의적으로 갈 수 있는 열린 길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차근히 준비해 나간다면, 인생 2모작 아니라 3모작, 4모작도 가능할 것이다. 취미로만 치부되었던 나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진정으로 몰두해 보자. 이는 70세나 80세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현역이라는 생각으로 각각의 단계에 따른 전략적 방법을 달리해야 할 뿐 생애 전 주기를 자신의 현역시대로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노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방법이라 본다.

위의 A 씨는 그 이후 도시 변두리 지역에 주변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상가를 낀 건물을 매입해 기존의 임대료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체인화된 편의점이 초보자의 창업을 위해서는 편리하나 물품수급의 제한에 따른 이익의 제한, 각종 프로모션의 강제적 참가, 원치 않는 리모델링 비용의 추가 발생 등의 단점이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유통망을 개발하고 본인의 전문 분야였던 디자인적 안목을 상점 꾸미는 데도 십분 발휘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A 씨는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한 것으로 보이나, 필자는 이후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에 대한 경력이나 안목을 이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새로운 커리어를 쌓음으로써 이후를 대비해 가는 것도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커리어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커리어를 어떻게 디자인해나갈 지는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몫이다. 자신의 창의성이나 창작 감각에서 시대적 뒤처짐이 느껴진다면 직접 창작이 아니라 강사 활동 등을 통한 후진양성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아울러 평생학습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제도에도 적극 참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