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회사 생산 시설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발생 초기에는 현장 직원들이 대부분 사고를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관계 기관 보고나 본사를 통한 대 언론 사고 브리핑이 좀 늦었었죠. 그랬더니 언론에서는 쉬쉬 했다면서 난리를 치더군요. 우선 상황 관리가 먼저 아닌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상황 관리가 먼저냐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먼저냐 하는 질문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던 어릴 적 질문을 연상하게 합니다. 일부 일선 인력의 경우에는 A or B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소중한 생명들이 위태로운데 “어떻게 내부와 외부 커뮤니케이션까지 신경 써야 하는가? 그건 무리!”라 이야기하는 일선 팀장들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물론 공감이 갑니다.

일단 상황 관리가 마무리되고 나서 추후에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선 인력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일선 인력들의 현장 습관 때문이라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아예 자신들의 업무는 안전 확보이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이죠.

위기관리에서는 기본적으로 A or B라는 개념보다는 A and B라는 개념이 더 유용합니다. 어떤 것이 우선인가 하는 상호배타적 질문보다는, 상호협력적 개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인명을 구하기 위해 실행하는 CPR(심폐소생술) 프로세스를 봐도, 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우연히 심정지 상태를 맞은 사람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행동은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는 동시에 ‘119를 불러달라’고 주변에 소리치는 것입니다. 심정지자의 기도를 확보하는 것은 상황 관리이고, 동시에 주변에 구급차를 부르라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관리입니다.

분명 이 프로세스만 보더라도 상황 관리자와 커뮤니케이션 관리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동시에 협력적 상호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심폐소생술만을 지속 진행하면서 구급차를 부르지 않거나, 구급차만 부른 채 아무런 심폐소생 노력을 실행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 위기는 관리될 수 없게 되겠지요.

기업 위기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 관리자 그룹과 커뮤니케이션 관리자 그룹이 정확하게 분리되어 동시 대응을 진행한다, 이것이 위기관리 시스템입니다. 수십 명이 분출하는 가스 밸브를 잠그러 현장에 나갔어도, 그 상황을 그대로 본사와 관련 기관에 정리해 보고하는 업무를 하는 담당 직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위기 발생 후 ‘쉬쉬했다’는 평을 받으면서, 관계기관 보고조차 상당 시간 늦었다고 비판 받는 기업들의 해명에는 이런 문구들이 들어갑니다. “현장 직원들이 사고 처리를 해야 해서 보고가 늦었다” 이런 메시지에 대해 비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정신이 없었던 것이군”하고 이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기관리에 관심이 있는 언론, 실무자나 전문가들은 그 메시지가 일부 허위이거나 자사의 시스템 부재에 대한 단순 변명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해명이 사실이라면 해당 기업의 현장 위기대응 시스템은 ‘상황 관리’만을 중심으로 짜인 단편적 시스템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그 시스템에서도 중요한 기본 대응 ‘보고’, ‘신고’ 프로세스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셈이고요. 만약 그렇다면 해당 일선 시스템과 담당자들에 대한 개선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업 위기는 직원 혼자서 맞아 대응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만약 직원 한 명이 관리 가능한 것이라면 그건 기업 위기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모든 기업 위기관리는 여러 내부조직원들의 일사불란한 협업으로 대응되는 것입니다. 그 협업에는 항상 상황 관리자와 커뮤니케이션 관리자의 편제가 있어야 합니다.

최고경영진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내부적으로 적절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이를 큰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상황 관리의 실패는 훈련과 체계 보강 등으로 상당 부분 이루어지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는 그 개선 방법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관리하느라고 보고가 늦었다’는 직원들의 변명은 이제 다시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