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스토리엔 대표.

가을 야구가 끝났습니다. 두산 베어스가 4승을 먼저 일궈내며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두산의 우승이 확정되던 날, 온라인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5연패 독주를 저지한 두산 베어스를 향한 열광과 환희에 찬 사진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유독 삼성 라이온즈의 사진 한 장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횡대로 쭉 늘어서서 기뻐하는 두산 베어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에는 NC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Eric A. Thames) 선수가 SK와이번즈와 경기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사상 최초로 홈런 40개, 도루 40개를 달성한 40-40 클럽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40-40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호세 칸세코,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폰소 소리아노 등 단 네 명만이 이뤄낼 정도로 어려운 기록이며, 아직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단 한 명도 달성하지 못한 진귀한 대기록입니다. 테임즈는 40-40 클럽 가입을 일궈낸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38.1㎝의 2루 베이스를 뿌리째 뽑아 번쩍 들어 올리며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스토리는 뻔한 사건을 색다르게 바라볼 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 우승팀에게 바친 경의와 박수, 테임즈가 번쩍 들어올린 2루 베이스는 감동과 재미를 주는 스토리가 되었던 거죠. 삼성은 승리의 영광 못지않은 아름다운 패배를 그려냈고, 테임즈의 40-40 대기록은 2루 베이스를 들어 올리며 스토리텔링이 되었죠. 이 두 장의 사진은 그런 감동의 스토리를 오롯이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으로 탄생했습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합격사과’ 역시 색다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태풍으로 사과의 대부분인 90%가 비바람에 떨어졌을 때, 농부들은 떨어진 사과만 쳐다보며 낙심을 하고 있었죠. 그때 한 농부가 발견한 떨어지지 않은 사과 10%. 그 사과에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먹으면 합격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합격사과’라고 이름을 붙이고 기존 가격의 10배로 팔아 아오모리현의 위기를 극복했었죠.

NC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 선수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40-40 클럽(홈런 40개, 도루 40개) 대기록을 달성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2루 베이스를 뿌리째 뽑아 번쩍 들어 올리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사진=NC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박수, 테임즈가 들어 올린 2루 베이스, 떨어지지 않은 10% 사과. 이들은 모두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었죠. 한국시리즈의 준우승팀이며 평범한 38.1㎝의 2루 베이스에 불과했지만 패배한 팀의 멋진 모습으로, 또 40-40의 주인공 테임즈와 썸을 타며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스토리는 평범한 주연보다는 보이지 않는 색다름을 간직한 조연을 더 좋아한답니다.

NC다이노스는 경기 뒤 SK와이번즈의 양해를 구해 2루 베이스를 테임즈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 2루 베이스로 테임즈는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2루 베이스로 베개로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과연 베개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NC의 야구박물관에 전시를 했을까요? 평범한 2루 베이스에서 테임즈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또 그 다음은…. 아무튼 NC다이노스 관계자가 이 칼럼을 본다면 그 뒷얘기를 꼭 들려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