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가 끝났습니다. 두산 베어스가 4승을 먼저 일궈내며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두산의 우승이 확정되던 날, 온라인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5연패 독주를 저지한 두산 베어스를 향한 열광과 환희에 찬 사진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유독 삼성 라이온즈의 사진 한 장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횡대로 쭉 늘어서서 기뻐하는 두산 베어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에는 NC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Eric A. Thames) 선수가 SK와이번즈와 경기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사상 최초로 홈런 40개, 도루 40개를 달성한 40-40 클럽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40-40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호세 칸세코,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폰소 소리아노 등 단 네 명만이 이뤄낼 정도로 어려운 기록이며, 아직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단 한 명도 달성하지 못한 진귀한 대기록입니다. 테임즈는 40-40 클럽 가입을 일궈낸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38.1㎝의 2루 베이스를 뿌리째 뽑아 번쩍 들어 올리며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스토리는 뻔한 사건을 색다르게 바라볼 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 우승팀에게 바친 경의와 박수, 테임즈가 번쩍 들어올린 2루 베이스는 감동과 재미를 주는 스토리가 되었던 거죠. 삼성은 승리의 영광 못지않은 아름다운 패배를 그려냈고, 테임즈의 40-40 대기록은 2루 베이스를 들어 올리며 스토리텔링이 되었죠. 이 두 장의 사진은 그런 감동의 스토리를 오롯이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으로 탄생했습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합격사과’ 역시 색다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태풍으로 사과의 대부분인 90%가 비바람에 떨어졌을 때, 농부들은 떨어진 사과만 쳐다보며 낙심을 하고 있었죠. 그때 한 농부가 발견한 떨어지지 않은 사과 10%. 그 사과에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먹으면 합격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합격사과’라고 이름을 붙이고 기존 가격의 10배로 팔아 아오모리현의 위기를 극복했었죠.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박수, 테임즈가 들어 올린 2루 베이스, 떨어지지 않은 10% 사과. 이들은 모두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었죠. 한국시리즈의 준우승팀이며 평범한 38.1㎝의 2루 베이스에 불과했지만 패배한 팀의 멋진 모습으로, 또 40-40의 주인공 테임즈와 썸을 타며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스토리는 평범한 주연보다는 보이지 않는 색다름을 간직한 조연을 더 좋아한답니다.
NC다이노스는 경기 뒤 SK와이번즈의 양해를 구해 2루 베이스를 테임즈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 2루 베이스로 테임즈는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2루 베이스로 베개로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과연 베개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NC의 야구박물관에 전시를 했을까요? 평범한 2루 베이스에서 테임즈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또 그 다음은…. 아무튼 NC다이노스 관계자가 이 칼럼을 본다면 그 뒷얘기를 꼭 들려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