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자체적으로 칩을 제작하기 위한 행보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는 상황이지만 외신들은 5일(현지시간) 구글이 모바일 칩을 직접 제조하기 위해 다수의 제조사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아라 프로젝트와 차원이 다른 구글의 본격적인 하드웨어 진출설이다.

▲ 출처=구글

왜 자체 칩인가?
외신보도를 종합해 추측해보자. 일단 구글이 지난 달 멀티미디어 칩 아키텍처 공고를 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체적으로 칩 개발 작업을 지휘하고 탑재 작업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와의 협력을 담당하는 직원을 선발한다고 했다.

이는 칩 제작을 염두에 둔 행보임과 동시에 애플이 A 시리즈에 임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애플은 A 시리즈를 설계하고 실제 제작을 삼성전자나 TSMC 등에 맡기는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물론 공고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의미심장한 행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서 가능한 질문은 '왜?'이다. 만약 구글이 자체 칩을 제작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 배경은 안드로이드 파편화다.

지난 8월 9일(현지시각)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은 안드로이드 파편화에 대한 네 번째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기기는 2만4093종, 브랜드는 130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오픈시그널은 안드로이드 버전별 점유율도 공개했다. 가장 높은 점유율은 39.3%로 4.4버전(킷캣)이 차지했다. 4.2버전(젤라빈)이 15.9%, 5.0버전(롤리팝)이 15.5%를 뒤를 이었다. 5.1버전(롤리팝)은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하는 지점은 안드로이드 진영이 세밀한 방식으로 쪼개진 상태며, 이런 상황에서 최신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생각보다 높아지지 않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구글의 고민이 시작된다. 애플처럼 폐쇄적 생태계를 유지하지 않는 상태에서 각각의 진영 동맹군들이 커스터마이징을 기치로 걸고 변종의 변종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일원화되지 않는 플랫폼에서 수익성이 생각보다 나지 않는다. 오픈소스 플랫폼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성장한 안드로이드의 장점이 구글의 난적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아마존의 킨들파이어, 파이어폰은 물론 노키아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X 등은 안드로이드 오픈소스로 커스터마이징한 플랫폼이 탑재되어 있다. 이종 안드로이드에는 브랜드 네임을 가진 대기업도 많다는 뜻이다. 이들은 애플의 iOS가 전체 모바일 상태계에서 25%의 점유율을 가져간 상황에서 나머지 안드로이드 75% 중 무려 25% 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아마존의 경우 안드로이드 오픈소스로 커스터마이징한 파이어 OS로 아예 자체적인 하드웨어를 제작했다. 상당한 콘텐츠를 보유한 아마존이 구글의 플레이 스토어에서 착안한 아마존 앱 스토어를 구축해 구글과의 단절을 선언한 가운데, 모바일 에코시스템을 제공해 새로운 시장의 '파이'를 접수했다는 뜻이다.

사실 안드로이드가 출현하기 전만해도 iO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이 운영체제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에 도전장을 내민 구글은 '웹 검색 중심의 인프라'와 '하드웨어 제작 노하우 부재'라는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잡아당기는 전략을 가동한다. 소프트웨어(모바일)-하드웨어 역량이 없는 구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오픈소스 공개며 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파편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그리고 그 양날의 칼은 지금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필요 이상으로 세세하게 쪼개고 있다는 결론이다.

여기에서 구글은 지난해 9월 15일(현지시각) 순정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탑재한 레퍼런스 플랫폼 '안드로이드원'을 인도에서 출시했다. 이는 저가 스마트폰 경쟁을 떠나 순정 안드로이드 보급 전쟁의 측면에서 진행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선다 피차이 당시 안드로이드 담당 수석부사장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안드로이드원을 소개하며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같은 나라 국민들이 스마트폰 구입부터 적절한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다.

이는 구글이 안드로이드원을 통해 '구글이 지배하는 정품 안드로이드 생태계 구축'을 원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드로이드원은 아프리카에도 진출했다. AP통신 및 주요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8월 18일(현지시각) 인피닉스가 제작하는 새로운 스마트폰 ‘핫2’를 출시했다. 5인티 디스플레이에 16GB의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중저가 라인업이다. 물론 핫2는 구글 안드로이드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가격은 약 1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로이드원의 목표도 뚜렷하다. 바로 안드로이드 오픈소스(AOSP)다. 순정의 변종인 AOSP가 급격하게 몸집을 불리며 전반적인 원조 생태계 수익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약간 나아졌지만 지난해 4분기 구글의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61%에서 54%로 급감했을 당시 AOSP는 2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은 모바일 테스트 베드인 인도에서 안드로이드원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10억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인터넷 유저만 3억 명에 달하며, 여기서 70% 이상이 고급 모바일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 상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원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명확한 유통망이 없고 보조금의 개념도 없는 인도 모바일 시장에서 철저하게 현지업체와 협업하며 ‘저렴한 안드로이드’ 외연확장에 나섰다. AOSP의 강점이 ‘가격’에 있다고 보고, 정품의 경쟁력을 믿었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구글은 하드웨어 스펙과 기본설계를 맡아 전반적인 틀을 짜고, 현지업체가 제조한 단말기에 구글 순정 안드로이드가 작동되도록 맡겼다.

종합하자면,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 동맹군의 맹주로 활약하며 소프트웨어를 장악한 상태에서 하드웨어 동맹군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동맹군의 파편화가 심해지며 원조 생태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삼성전자와 같은 주요 하드웨어 동맹군도 타이젠을 바탕으로 이탈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구글의 자체 칩은 하드웨어 경쟁력의 핵심을 장악해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로 여겨진다. 게다가 안드로이드원 자체가 부침이 심하다는 것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아틀라스가 CCS 인사이트를 인용해 보도된 외신에 따르면, “안드로이드원의 시장 영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 안드로이드원 인도 주축인 마이크로맥스. 출처=마이크로맥스

가능할까?
물론 구글이 자체 칩을 생산한다는 것은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보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 당장 구글이 최근 내놓은 최신 태블릿인 픽셀C를 보자. 구글이 하드웨어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만든 픽셀C는 구글 자체 칩의 가능성에 설득력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일종의 몸 풀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게다가 애플의 경쟁력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에 있고, 이를 제작함으로써 상대적인 경쟁력을 가진다. 구글도 여기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 구글의 하드웨어 시장 직접진출은 별로 긍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스마트폰 완전제작사는 단말기를 많이 판매하기 위해 안드로이드에 기반한 독특한 운영체제를 원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순정 생태계의 확장도 거부하던 찰라였다. 그런데 구글이 자체 칩을 제작하면 당연히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반도체 회사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거래선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고려도 필요하며, 삼성전자와 퀄컴 등은 단순한 하청에서 벗어나 독특한 모델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제조사, 구글 안드로이드 동맹의 주축, 반도체 경쟁력 등을 모두 가진 곳이라는 점에서 구글과의 전격적인 연합도 가능하다. 타이젠을 기점으로 약간 소원해진 양사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마냥 좋은 이야기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는 뜻이다.

일단 시스템 반도체 부분에서 애플의 A 시리즈에 과도한 의존도를 보이는 삼성전자가 전격적으로 구글과 협력한다면 실보다 득이 많을 전망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부분에서 상당한 적자를 기록했던 이유는 아이폰6 수주전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애플의 A 시리즈에 인텔이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지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벤처비트는 지난 달 16일(현지시각) 인텔이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칩 개발팀을 구성해 애플의 차세대 스마트폰인 아이폰7 칩 공급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인텔이 LTE모뎀은 물론, AX칩 총괄까지 맡는 쪽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LTE 모뎀은 인텔의 야심작, 7360 LTE모뎀이다.

인텔이 파운드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애플의 모뎀칩 설계를 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9X45 LTE의 퀄컴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안심할 수 없다. 인텔이 LTE모뎀을 넘어  Ax까지 협력해 삼성전자와 TSMC까지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타격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잔 뼈가 굵은 TSMC는 수십개에 달하는 파트너를 보유하고 있어 애플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져도 자생력을 가지지만, 삼성전자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과 인텔이 AX까지 협력의 폭을 넓히면 최근 살아나고 있던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가 전체 반도체 시장의 판을 흔들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인텔은 향후 10나노 초미세공정을 위한 기술적 천명을 연이어 선언하며 외연적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사물인터넷 시대를 대비하는 성격이 강한 메모리 반도체 등이 순식간에 '이미 대세인' 인텔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장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를 위시해 전반적인 사물인터넷 로드맵을 짜고 있는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야말로 '알짜배기'다. 반도체 경쟁력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필연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도 집중해야 한다. 미묘한 대목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D램 가격 인하로 주도권을 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익성도 불안정하다.  D램익스체인지는 4일 D램의 대표 제품인 DDR3 4GB 모듈의 10월 평균 계약 가격은 16.75달러로 9월 18.5달러에 비해 9.5% 내려갔다고 밝혔다.

올해 초 29.5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PC용 D램 수요의 하락과 미세공정에 따른 공급과잉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10월 64Gb 8Gx8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 평균 계약 가격은 2.27달러에 그쳐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이러한 변동성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설비증설에 나서는 한편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충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외부적이고 거시적인 흐름이다. 이를 근원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돌발변수다.

칭화유니그룹이 샌디스크를 간접인수하며 유상증자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유치, 무자비한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 양쪽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의 실적을 책임지는 반도체 경쟁력이 크게 흔들릴 소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구글의 파운드리가 된다면 어떨까? 물론 이를 계기로 안드로이드 종속성이 심해지며 최악의 경우 타이젠 동력이 떨어질 확률도 있다. 분명 부정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전망이다. 당장 IM사업부의 부활은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도체 부분에서는 강점이 예상된다. 구글이 전격적인 칩 생산에 돌입하게 된다면, 다른 회사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고민하는 사이, 삼성전자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구글은 아직 자체 칩 제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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