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일 많이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이번 달 1일 발표된 OECD의 자료를 보면, 소문은 사실이었다. 한국 직장인의 노동시간은 연간 2124시간으로 멕시코(2228시간) 다음으로 많다. OECD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인 1770시간보다 354시간이나 더 일한다. 가장 노동 시간이 짧은 독일(1371시간)과 비교해보자면, 1년에 753시간 일을 더 많이 하고, 이를 날수로 계산하면 무려 1년에 31일 이상인 셈이다. 물론 OECD의 34개 회원국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세상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하는 나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민이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의 과노동은 오래전부터 심각했었다. 필자가 전임의였던 시절, 그저 4~5시간 집에서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병원에서 근무했던 괴로운 시절이 있었다. 늘 피곤에 절어 있으니, ‘제발 운전하면서 졸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는 것이 아내의 일상적인 아침 인사일 정도였다.

 

열심히 일하고도 불행한 우리

요즘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젊은 친구들은 야근을 하느라 저녁시간이 편치 않다. 오죽하면 한 정치인의 대선 캠페인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어낼 정도이니 말이다. 주 5일 근무로 바뀐 지도 오래되었지만, 주말에 특근을 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게다가 그렇게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은 꿈도 못 꾼다니, 삼포세대에게 현실의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노동지옥’과 다름없다.

비단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직장에서의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탈진되어 상담을 오는 중년이 적지 않다. 중견기업 간부인 40대 후반의 A 씨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장인이다. 그는 수십 년간 영업파트의 전문가로, 맡은 프로젝트마다 성공적으로 진행해온 터라 동료들보다 승진도 빠르다.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성품도 쾌활하고 사교적이어서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들끓는다. 바쁜 와중에도 아내와 아들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입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지난 2년간 정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일을 하는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결국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게 되어 특별 보너스로 얼마 전에는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렇게 재미있던 일이 보기도 싫어졌다. 당연히 업무실적이 오르지 않았다. 워낙 큰일을 마무리한 뒤라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긍정적이었지만, A 씨 자신은 형편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1~2달쯤 지나자 아예 회사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친구들은 물론 식구들마저 이유 없이 꼴 보기가 싫었다. 출근을 해도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도록 피곤했다. 잠도 자기 힘들고 입맛도 형편없었다. 소화불량과 두통에 시달렸지만, 병원에 가보아도 별 특이한 진단도 나오지 않으니 뾰족한 치료법도 없었다. 결국 무엇인가 큰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에 상담을 왔던 것이다.

오로지 일만 하다 얻는 병

A 씨는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으로 고통 받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 증후군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유행이라고 할 정도다. 육체는 물론이고 정서적인 증상과 행동에도 이상이 생긴다. 하루 종일 피로하고 파김치처럼 처지며 두통·요통·근육통 등이 빈발하고 면역력이 떨어지며, 식욕과 수면에 이상이 생기는 등의 ‘육체적 번아웃 증상’, 패배감과 자신감 저하·의욕상실·무력감·부정적인 사고·소외감 그리고 불만이 가득하게 되는 등의 ‘정서적 번아웃 증상’, 책임회피·과식 또는 과음·대인관계 회피·자포자기 그리고 심지어 결근이나 빈번하게 지각을 하는 등의 ‘행동적 번아웃 증상’이 나타난다.

도대체 왜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는 것일까? 무조건 일을 많이 한다고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만 본래 지닌 개개인의 특성이 원인이 된다.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직업적 성취에만 몰두하거나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너무 민감하거나, 책임감이 과도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을 불편해하거나, 강박적이고 꼼꼼한 완벽주의적 성향 등 유발 인자를 하나씩은 갖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해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결국 직업은 물론이고, 대인관계와 건강 그리고 행복까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은 예방이라고 했다.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려면 우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이완을 해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짧게 명상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도록 한다. 일상의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규칙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먹고 자야만 한다. 매일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신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가능하면 이 범위를 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에 애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충분한 휴식과 나름대로의 기분전환 프로그램을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한다.

번아웃 증후군에서 탈출하기

정확히 말하자면 번아웃 증후군은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다. 아직도 이 증후군에 대한 논란이 많다. 사는 것이 팍팍하고 힘들다 보니 단순한 과로나 슬럼프를 질병으로 모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스트레스, 만성피로, 그리고 우울증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번아웃 증후군을 방치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번아웃 증후군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 경우, 우선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 있다. 첫 번째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역설적으로 번아웃 상태가 되면 일을 중단하기가 힘들다. 마치 자전거를 멈추려 하면 쓰러질 것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는 것과 같다. 용기를 내어 의도적으로 여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휴식을 통한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누구나 번아웃이 되면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귀찮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저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만 해도 많이 도움이 된다. 또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담과 진료를 통해 고통스러운 증상도 치료를 하고 원인이 되는 심리적 특성도 교정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인생의 목표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번아웃이 되었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인생의 행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목표나 지향점이 제대로 되어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일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