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까지 3차원 이미지를 2차원 속에 구겨 넣어 원근법으로 표현해 왔다. 하지만 2D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각도에 관계없이 한 가지 정보만을 제공한다. 영상을 실감나도록 느끼게 하려면 보는 사람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리 보여야 한다. 한 가지 방향에 고정된 이미지는 공간 이미지와 같은 실감을 주지 못한다.

영국의 BBC 방송이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모두 3D 영상으로 중계하기로 결정하자 전 세계 가전 시장에서는 3D 텔레비전이 급속히 팔려나갔다. 하지만 올림픽 중계방송을 3D로 시청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3D 영상을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화면 속의 사람이나 물체들이 2D로 시청할 때보다 작게 보이고, 평면 디스플레이에서 펼쳐지는 3D 영상은 기대만큼 실감나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됐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3D 방송에서 멀어져 갔다. 3D로 제작된 영화들도 점차 주목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BBC마저 2013년에 3D 방송을 중단하고 말았다. 아바타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던 3D 영화 제작 움직임도 줄어들었다. 소프트웨어적으로 2D 영상을 3D로 바꿔주는 기술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진정한 3D 영상시대를 열지 못했다.

물리적 세계를 디지털 세계로 전환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디지털 세계로 표현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버무려진 혼합된 현실(Blended Reality)이 주목받고 있다. 많은 기술이 현실에 가까운 영상을 보여주고자 노력해 왔고 그중 일부는 놀라운 기술적 진전을 이루고 있다.

지난 5월에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석기시대 역사를 50만년 정도 앞당길 만큼 오래된 석기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을 보존하고 교육에 활용하고 또 연구를 위해서 3D 복제품이 필요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루이스 리키 박사는 오토데스크와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오토데스크가 개발한 ‘메멘토(Memento)’ 기술을 이용해서 33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시대 유물을 스캔해서 고해상도 3D 이미지로 바꾸어 웹이나 휴대폰에서 관찰할 수 있게 했고, 이를 다시 3D 프린팅으로 완벽하게 복제해낼 수 있었다. 오토데스크가 개발한 ‘메멘토’는 물체를 3D로 스캔해서 이미지를 3차원으로 조작할 수 있고 3D 프린팅으로 복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다. 오트데스크는 이를 재현(Reality) 컴퓨팅이라 부른다. 제브라 이미징(Zebra Imaging)은 홀로그램 기술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3차원 홀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필름에 인쇄를 하는 기술이다. 한 장의 필름에 홀로그램을 네 종류까지 인쇄할 수 있고, 안경 없이 360도 각도에서 3D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 홀로그램 인쇄물은 후면에 할로겐이나 LED 광원이 필요하다. 투명판에 컬러 이미지를 실물과 같이 매우 정교하게 인쇄할 수 있다. 건축물 조감도, 광구 단면, 인체 구조, 전쟁 작전도, 다양한 상품의 입체광고 등에 유용하다.

HP Zvr 가상현실 디스플레이는 <아바타>나 <스타트랙>에서 본 것과 같은 홀로그램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3D 조작이 가능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3D 안경을 쓰고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하여 모니터에 보이는 홀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다. 건축, 3D 디자인, 의료영상 부분 등 가상이미지를 공간 속에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경우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HP 스프라우트(Sprout)는 전통적인 데스크탑과 3D 스캐너 그리고 평판 태블릿을 일체화한 제품이다. 모니터 앞에 설치된 평판 위에 물체나 이미지를 올려놓으면 상단에 설치된 3D 스캐너가 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 이미지를 모니터에서 조작할 수 있게 해준다. 3D 형상을 2D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능이 뛰어나다. 기존의 데스크탑 컴퓨터 기능도 있으면서 전혀 새로운 기능의 스캐닝 및 디자인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돋보인다.

인텔은 ‘리얼 센스’란 센서를 개발해서 손가락 동작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했다. ‘리얼 센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는 카메라와 피사체간의 거리에 관계없이 모두 초점이 잘 맞는 일종의 3D 사진을 만든다.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할 때는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피사체 별로 초점을 조절하여 이미지를 볼 수 있다. 2D와 3D가 버무려진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드론에 ‘리얼 센스’를 장착하면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주변의 물체를 감지하여 스스로 장애물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여 피하기 때문에 물체에 충돌하는 일이 없게 된다. 컴퓨터가 공간을 인식하여 대처한다는 측면에서 3D 인식 컴퓨팅이라 할 수 있다.

VR은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가진 오큐러스 리프트를 인수한 페이스북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VR이 궁극적으로 소셜네트워킹이나 놀이문화의 핵심기술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점들, 콘텐츠, 그리고 예술적인 문제들이 풀어야 할 대상이다. 페이스북은 오큐러스를 통해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페이스북은 시범적으로 360도 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킹을 오큐러스 리프트와 접목하는 아이디어는 아직도 뚜렷하지 않다. 오큐리스 리프트 기술을 활용하여 기어 VR을 내놓은 삼성전자도 아직 뚜렷한 킬러 콘텐츠가 없는 상태다. 최근에는 관광, 건설 등의 다양한 분야로 콘텐츠가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최근 국내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 홍보에 VR 콘텐츠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또 구글은 <뉴욕타임스>와 협력해 VR 뉴스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대형 기업들도 VR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VR 기기가 차츰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 조짐으로 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홀로렌즈(Holo Lens)는 VR과 달리 현실공간에 가상이미지를 겹쳐주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장비다. PC에서 설계한 물체를 허공에서 3차원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공간에 홀로그램 영상을 띄우고 동작 또는 음성으로 명령을 내려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다. 홀로렌즈는 새로운 물체를 설계하거나 협동하거나 탐색하는 도구로 손색이 없는 장비로 보인다. 2D 스크린 속에 갇혔던 아이디를 허공에 올려 3D로 실현해볼 수 있어 누구나 실감하게 만든다. 사용자가 어떤 아이디어로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폭발적인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머리에 쓰는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자체가 컴퓨터다. 외부에 드러나는 카메라·마이크·컴퓨터는 없어도 안경 안쪽에는 상단에 홀로그램을 처리하고 실시간 위치를 인식하는 컴퓨터 기판이 있고, 눈앞엔 주변을 인식할 수 있는 카메라들이 있고 홀로그램 영상이 맺히는 투명한 렌즈가 감춰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6년 1/4분기에 홀로렌즈 개발 판을 출시할 계획이다. 응용성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실체와 가상의 경계선을 없앤다

구글은 구글 글래스를 시험판매하여 다양한 실험을 한 결과를 기초로 새로운 증강현실 안경을 준비 중이다. 홀로렌즈를 능가하는 장비를 내놓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하지만 구글은 최근에 매직 리프(Magic Leap)라는 증강현실(AR) 플랫폼을 추구하는 기업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구글 글래스의 킬러 콘텐츠로 삼을 공산이 높다. 매직 리프가 개발한 DDLS(Dynamic Digitized Lightfield Signal)는 실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가상 이미지를 실제 공간에 삽입해 넣는 기술이다. 매직 리프가 제공하는 증강현실 영상물들은 정말 마술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미지가 정교하다. 매직 리프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가상세계를 인체의 오감으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컴퓨팅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컴퓨팅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센서, CPU, 그리고 그밖에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할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매우 독특하고 예상치 못한 그리고 예전엔 본 일이 없는 마술과 같은 기술들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가상공간에 빠져 드는 VR 기술, 현실공간에 가상의 3D 영상물이 실물처럼 움직이는 AR 기술의 태동기에 서 있다. 초기엔 커다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형화하고 결국엔 안경처럼 작은 기기로 발전할 것이 틀림없다. 인체의 오감은 궁극적으로 실체(Reality)와 가상(Virtuality)을 구분하지 못하고 두뇌에서 똑같은 전기신호로 번역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세계의 한계에 다가서고 있는지 아니면 현실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지 헷갈린다. 가상세계는 점차 현실세계와 버무려진 상태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