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스토리엔 대표.

“11월 11월이 무슨 날이죠?”라는 질문에 젊은 층은 아마 십중팔구 “빼빼로데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빼빼로데이’ 이전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연인들 사이에 발렌타인데이 못지않게 빠뜨릴 수 없는 기념일이 바로 빼빼로데이죠. 이 빼빼로데이는 고객에서 시작한 스토리라 더욱 유명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지난 1994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여중생들이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친구끼리 과자 ‘빼빼로’를 주며, ‘빼빼로처럼 키 크고 날씬해지고 예뻐지자’고 했답니다. 게다가 날씬해질 수 있는 완벽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에 맞춰 빼빼로를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죠. 이런 장난스런 그들만의 이벤트를 어느 지역신문에서 다루면서, 급기야는 빼빼로의 제조사 롯데제과에서 3년 뒤 1997년부터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었죠.

‘농업인의 날’은 빼빼로데이보다 한 해 이른 1996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죠. 이 기념일은 정부가 우리 농업 및 농촌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습니다. 11월 11일을 택한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농업의 기본은 ‘흙’이죠. ‘흙 토(土)’자를 파자(破字)하면 십일(十一)이 되기 때문에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한 것입니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는 2006년부터 ‘농업인의 날’을 알리기 위해 한국인의 주식인 쌀로 만든 가래떡을 나눠먹는 가래떡 행사를 시작하며 ‘가래떡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길쭉한 가래떡을 빼빼로처럼 11월 11일의 1자와 연결지은 모양입니다.

또 농축산물과 관련한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으로는 10월 24일을 둘(2)이 서로 사(4)과한다는 의미의 ‘애플데이’를 비롯해 ▲3월 3일 ‘삼겹살데이’ ▲5월 2일 ‘오이데이’, ‘오리데이’ ▲8월 8일 ‘포도데이’ 등 다양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필두로 매월 14일은 ‘화이트데이’, ‘짜장면데이’, ‘로즈데이’ 등 다양한 썸들이 붙었습니다.

가래떡 데이와 빼빼로 데이의 이미지. 사진=김태욱 제공

잘 만든 데이마케팅은 정말 훌륭한 마케팅입니다. 이는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 힘은 바로 ‘날(Day)’과 ‘브랜드’가 썸을 탄 스토리에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날에 주고받는 선물은 단순히 ‘먹는’ 음식을 넘어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하는 ‘스토리’라는 열쇠를 갖고 있죠. 그래서 데이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브랜드와 날짜와의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성입니다.

빼빼로데이가 강력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라고 봅니다. 여중생들의 재미있는 자기들끼리의 이벤트가 스토리의 원천, 즉 고객에게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스토리이기 때문이죠. 물론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담은 핵심스토리의 발굴은 주체 측에서 개발하는 게 당연하지만, 경험 스토리는 고객의 경험에서 스토리가 나올 때 그 진정성이 커집니다.

11월 11일이 다가옵니다. 선물로 무엇을 준비할 건가요? 가래떡을 선물하든, 빼빼로를 선물하든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면 상관없겠죠. 아니면 올해는 11월 12일이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니, 합격의 기원이 담긴 가래떡 모양의 긴 찹쌀떡을 선물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봅니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긴 정성스런 선물이라면 충분하겠죠. 수험생 모두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