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들에게 규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차익’에 대한 욕구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 기업을 인수하고 가치극대화를 통해 되파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차익’ 뒤에는 ‘파산’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사모펀드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며 원활한 매각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무덤을 파게 되는 형국이다. 또한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모펀드의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한 역할과 함께 ‘상생의 시대’를 고려한 제도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10여년 남짓 된 국내 사모펀드 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 2000년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으로 국내 시장에 사모펀드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모펀드의 ‘차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물불가리지 않는 행동은 ‘먹튀’, ‘투기자본’으로 묘사되는 원인이 됐다.

현재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주역인 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품에 안을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자리에 있었던 현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는 ‘토종’이란 불리는 국내 사모펀드산업을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다. 분명 사모펀드의 금융시장에 대한 순기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1세대 사모펀드인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인수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다가 지난해 ‘디폴트’라는 굴욕을 당했다. 투자과정에서 차입한 대금의 만기가 다가왔지만 매각에 실패해 대금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사모펀드의 차입인수(LBO)가 자신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보고펀드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또 다른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은 지난 2000년 칼라일 한국 대표를 맡을 당시 한미은행을 사들여 3년 반 만에 1조1500억원에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 바이아웃 펀드의 일반적 구조 [출처:자본시장연구원]

그의 이름 약자를 따 설립한 MBK파트너스가 2005년 출범한 이후, 인수 부문에서는 김 회장의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매각에서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투자전문가들은 투자에 있어서 매수보다 중요한 것은 매도라고 입을 모은다. 매수는 누구든지 자금만 충분하다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매도는 시장 상황은 물론 적절한 매각가 산정, 매각대상자 등 더 많은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도를 못하는 주체는 투자시장에서 ‘하수’로 취급받는다. 그렇다면 김 회장도 투자의 ‘하수’일까. MBK파트너스는 최근 7조원이 넘는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외국계 유명 사모펀드를 제치고 당당히 승리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씨앤엠, 코웨이 등 굵직한 M&A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씨앤앰과 HK저축은행은 현재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코웨이는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근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 ‘매각 이슈’가 벌써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삼정KPMG는 MBK파트너스에 대해 동북아시아 지역권에 집중하며 철저히 현지전략을 앞세워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지난 2006년 한미캐피탈을 인수해 이듬해 우리금융지주에 팔아 자본회수율 기준 453.5%라는 ‘대박’을 기록한 이후 국내 시장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 출처:삼정KPMG

현재 MBK파트너스가 주력하고 있는 매각 대상은 씨앤앰, HK저축은행, 코웨이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씨앤앰과 HK저축은행으로, MBK파트너스가 이들의 경영권을 5년 이상 보유한 만큼 투자회수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두 기업의 매각이 성공하더라도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2008년 2조2000억원에 씨앤앰을 매수했다. 인수에 필요한 차입금의 이자를 고려할 경우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매각해야 하지만 관련 업계 불황과 함께 인수자의 부재로 현재 예상 매각가가 1조5000억원에 불과해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MBK파트너스 측에는 기업가치는 물론 이자비용 부담도 점차 늘어난다. 따라서 인수 희망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MBK파트너스는 HK저축은행을 두고 미국계 사모펀드 JC플라워스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그동안 HK저축은행에 2500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나 매각불발 리스크를 고려해 이보다 낮은 2000억원 선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HK저축은행 매각으로 인한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홈플러스 인수에도 LBO 방식이 도입돼 업계 불황 혹은 글로벌 경기부진 등이 이어질 경우 과도한 차입이 MBK파트너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 엄청난 레버리지효과로 이에 상응하는 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LBO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방’이라는 것이다. 이는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모펀드의 불투명한 운영… 불만 목소리 높아져

사모펀드는 자금난 등으로 고전하는 기업을 회생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기업사냥꾼’이란 별칭을 얻으며 무차별적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주체라는 부정적 인식도 공존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되도록 살리고 부정적인 측면은 제거하는 것이 전체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모펀드의 투자기간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3~4년이었으나 금융위기 이후 5~7년으로 늘었다. 그만큼 매각할 수 있는 환경이 이전대비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사모펀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 비춰볼 때, 주식시장의 강력한 상승장은 특히 바이아웃펀드들에게 큰 수익을 실현케 했고 긍정적인 선순환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바이아웃펀드 또한 경기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투자기간이 길어졌다는 점과 경기순환적 측면을 고려할 때, 사모펀드의 단순 차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격이다.

바이아웃펀드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지만 전략적투자자(SI)와는 분명 다르다.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투자환경 속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아 기업의 DNA 자체를 바꾸는 경영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SI들의 능력은 더욱 우대받는 한편, 과거 대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국내 사모펀드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비록 ‘먹튀’, ‘투기자본’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발했을지라도 사회적 변화 및 흐름에 맞춘다면 사모펀드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뀔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국내 사모펀드 산업은 로비, 인맥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를 감독하는 기구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TV만 끄면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던 시대처럼 말이다.

지난 2008년 국제결제은행의 국제금융시스템 위원회가 발간한 ‘워킹페이퍼’에는 당시 금융위기 상황에서 나타난 바이아웃 및 사모펀드 투자의 위험을 투자 기간별로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제시됐다. 이는 각각 유동성 문제, 자금조달 구조변경, 기업 구조조정 문제 등이 주 대상으로 지적됐다.

또한 미국 내에서 사모펀드의 역기능에 대한 의견들도 꾸준히 제시됐는데 이중 대표적인 것이 사모펀드 오너십으로 인한 심각한 고용감소 및 사모펀드 투자를 통한 생산성 제고 불가 등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의 대다수는 사모펀드 특성상 매니저들의 성과분석에 어려움을 토로하며 지나친 성과보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불투명한 운영과 사모펀드의 과도한 성과보수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사모펀드는 ‘먹튀’, ‘투기자본’을 넘어 ‘공공의 적’으로 돌변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모펀드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체질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