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슈퍼셀

당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윗선에선 책임지라고 난리다. 안 그래도 자괴감에 괴로운데 뒤통수까지 따갑다. 동료들이 당신을 무능력자라고 비웃는 것만 같다. 실패가 무섭다. 과거를 답습하면 적어도 실패는 면할 수 있다는 지혜를 얻기는 했다. 더 이상 도전은 없다. 기업 입장에서 ‘혁신’은 물거품이 된다. 국내 보통 기업들은 성공의 경험을 이어가야만 온전히 생존 가능하다. 직원들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실패가 있더라도 감추는 이유다. 과거의 성공을 부풀리며 미래 성공을 강제하지만 성공이 쉽게 반복되지 않는다.

실패하면 샴페인 파티, 조롱 아니다

핀란드의 한 게임사 이야기다. 이 회사 소속 개발자들은 5명에서 7명이 한 조를 이룬다. 전체 직원은 100명이 넘지만 이들은 팀 단위로 따로 게임을 만든다. 팀에서 완성한 게임이 재미있다면 직원 전체가 그 게임을 함께 해본다. 반응이 좋다면 핀란드 앱 스토어에 올려본다. 유저들이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면? 전 세계 앱 스토어에 정식 출시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게임은 달랑 3개에 불과하다. 많은 게임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 처분됐다. 실패를 한 것인데, 이 경우 담당자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린 안 될 거야!’ 이런 생각을 그대로 두면 직원들 가슴 한편 열정은 사그라지고 만다.

▲ 출처=슈퍼셀

샴페인이 터진다. 직원들이 실패하면 축하 샴페인을 터트린다. 어디에도 없는 이 회사 특유의 문화다. 실패자를 조롱하는 악질 문화 아니냐고? 취지가 그렇지 않다. 실패 자체를 축하한다기보다는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만약 성공을 했다면? 조촐한 맥주 파티가 진행된다.

“실패를 안 하면 결국 모험을 안 한다는 뜻이다.” 이 회사 공동 창업자이자 CEO의 말이다. 모험을 통해 얻은 실패의 경험은 유익하다. 성공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만약 1년 동안 실패보다 성공이 많았다면 실망하게 된다.” CEO가 이런 생각이니 자연스레 직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된다. 모험 정신이 피어난다.

출시 게임 달랑 3개, 명성은 세계 최고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 이야기다. 현재 CEO인 일카 파나넨이 2010년 친구 4명과 함께 창업한 게임사다. 그 다음해 모바일 게임 개발에 착수한 이후 단지 게임 3종만 출시해 세계 최고 게임사 중 하나가 됐다. 슈퍼셀은 ‘앵그리버드’ 시리즈를 개발한 로비오와 함께 노키아를 대신하는 핀란드 대표 기업으로 떠올랐다. 포브스는 슈퍼셀을 두고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한 게임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슈퍼셀은 우리도 익히 아는 회사다. 회사명은 생소해도 ‘클래시오브클랜’(클오클)이라는 모바일 게임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 게임을 굳이 다운로드해 실행해보지 않았더라도 익숙한 이유는 사방에 걸린 클오클 광고를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기 때문이다. 클오클이 국내 모바일 게임 광고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슈퍼셀은 이 게임 홍보를 위해 국내에서만 수백억원 규모의 광고비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인 규모다. 클오클이 등장하기 이전엔 국내 A급 모바일 게임 마케팅에 최대 20억원가량이 책정되는 수준이었다.

▲ 출처=슈퍼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서양 게임이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파나넨의 말이다. ‘공격적인 광고 투자가 게임 흥행을 좌우한다.’ 클오클의 성공을 목격한 국내 게임사들이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너도나도 슈퍼셀의 전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무리해서라도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지 모른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마케팅비 100억원이 표준인 시대가 열렸다. 광고시장이 뜨거워지자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한다는 식의 비판이 따랐다. ‘출혈 경쟁’이라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초고속 성장’ 직원 한 명당 100억원 매출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이다. 국내에는 슈퍼셀보다 여러 게임을 출시한 게임사들이 많다. 슈퍼셀이 출시한 게임이 달랑 3개인 반면 10개가 넘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들이 꽤나 많았다. 그런데도 보유한 ‘마케팅 실탄’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슈퍼셀은 국내 그 어느 게임사보다도 돈을 많이 버는 게임사로 성장한 까닭이다. 대규모 광고 지출이 슈퍼셀에겐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실패를 옹호하는 문화가 낳은 결과는 대단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조87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은 624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3년과 비교해 매출 3배, 영업이익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초고속 성장이다. 매출을 전체 직원 수로 나누면 직원 한 명당 벌어들인 돈만 약 100억원 이상에 이른다.

▲ 출처=슈퍼셀

2013년 10월 소프트뱅크가 21억달러(2조2869억원)에 달하는 슈퍼셀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슈퍼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거액을 투자한 셈이다. 폭풍 성장이 이어지자 소프트뱅크는 올해 슈퍼셀 주식을 추가 매입했다. 지분율은 51%에서 73%로 늘어났다.

국내에서는 슈퍼셀의 성공을 ‘규모의 경제’에서 찾곤 한다. 때 아닌 돈 놀음으로 생태계를 파괴했다고 꾸짖는다. 명백한 폄하다. 전술적인 차원을 비난하느라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슈퍼셀 DNA에는 ‘실패에 대한 환영’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실패를 쉬쉬하고, 도려내고, 성공에만 집착하는 우리 문화와는 뿌리부터 다른 셈이다. 실패를 감추는 데만 몰두하면 미래를 향한 추진력을 얻을 수가 없다. 결국 비전은 볼품없이 쪼그라들고 만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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