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 ‘대형사고’가 터졌다. 폭스바겐그룹 ‘배출가스 조작’ 사태의 파장이 커지고 있는 것. 미국 환경보호청에 ‘사기극’이 발각되며 시작된 파문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이번 사태에 연관된 차량이 세계적으로 1100만여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빈터 콘 회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 전체가 ‘초긴장’ 상태다. 각국은 관련 조사에 착수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SNS 상에서는 소비자들의 설전이 오가고 있다. ‘비양심과 모럴해저드의 극치’라는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져 나온다. 폭스바겐의 ‘꼼수’가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폭스바겐 전시장의 모습 / 사진 = 노연주 기자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 여파로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이번 파문이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의 꼼수로 ‘디젤 게이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며 클린디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전기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도요타·폭스바겐 등 “전기차 집중 개발한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14일 ‘도요타 환경 챌린지 2050’을 공개하며 2050년까지 엔진 자동차를 완전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50년에는 신차가 주행하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2)를 2010년 대비 90% 감소시키겠다는 것이 도요타 측의 목표다. 차량을 생산하는 데 배출되는 CO2의 양도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제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도요타는 자동차 공장의 에너지 절약을 한층 강화하고 풍력 발전이나 수소의 이용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도요타는 이 계획에 판매되는 거의 모든 차량을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등으로 만들겠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사실상 미래의 친환경차 제작 방향을 전기차 쪽으로 잡은 셈이다.

도요타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있는 폭스바겐 역시 이 같은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클린디젤 성공사례의 대표 업체이자 이번 디젤게이트의 주범인 폭스바겐이 최근 전기자동차 개발로 활로를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 폭스바겐은 최근 성명을 통해 기존 디젤차 집중전략에서 탈피해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소형 전기차 공동 플랫폼을 개발해 전기 배터리만으로 250~500km 주행할 수 있는 그룹 내 전 차량에 적용할 방침이다. 폭스바겐의 프리미엄 대형 세단 페이톤을 전기차로 만드는 방법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 현대기아자동차

현대·기아자동차 역시 앞서 차세대 친환경차 개발 방향을 발표하며 디젤보다는 전기차 쪽에 무게를 둔 바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 친환경차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하이브리드 12개 차종, 플러그인하이브리드 6개 차종, 전기차 2개 차종, 수소연료전지차 2개 차종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

다만 일각에서는 ‘폭스바겐 파문이 전기차 시대를 앞당긴다’는 말이 지나치게 앞서간 표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전기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폭스바겐 스캔들이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는 이견을 달기 힘들어 보인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전쟁은 점점 격화하고 있다. 전기차 이니셔티브(EVI)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해까지 전세계적으로 등록된 전기차는 66만5000여대로 추산된다. 전체 승용차의 0.08%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미국이 27만5104대(39%)로 가장 많았고 일본과 중국이 각 10만8248대(16%)와 8만3198대(12%)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3000여대(0.45%)에 불과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53% 증가한 30여 만대가 판매됐다. 이 중 57%는 순수전기차, 43%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전기차가 전체 승용차 3대 중 1대 꼴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EVI 회원국들의 전기차 투자 규모는 총 160억 달러에 달했다. 연구·개발비에 70억 달러, 인센티브에 50억 달러, 인프라에 20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 환경보호청은 18일(현지시간)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폭스바겐 골프 등 디젤 차량 48만대에 리콜 명령을 내렸다. (자료사진) / 사진 = 폭스바겐코리아

전기차 배터리는 2011년 ㎾h당 600억 달러에 달하던 가격이 2013년 400달러 아래로 내려갔고 성능은 ℓ당 100Wh에서 200Wh로 개선됐다. EVI 관계자는 "2022년 배터리 가격을 ㎾h당 200달러로 낮추고 성능은 400Wh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IT 업체들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과 경쟁 구도를 그리고 있다. 미국 애플은 오는 2019년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애플은 현재 배터리·로봇 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개발·연구팀 '타이탄'을 운영 중이다. 최근 2년 동안 산업용 배터리 관련 특허도 290개나 출원했다.

기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치열한 개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올들어 8월말 현재까지 전기차 및 PHEV 판매량이 1만8054대로 전년동기 대비 350%나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친환경차 시장점유율을 2020년 15%, 2030년 20%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각종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차 최초로 BMW 전기차에 로컬 업체와 동등한 취득세 면제혜택을 주기도 했다.

GM은 중국 합작사와 함께 2016년 전기차를 출시한 후 연간 20만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둥펑-르노는 SM3 ZE(현지명 플루언스 ZE) 모델 기반의 전기차를 2017년 생산해 중국에서만 판매할 예정이다. PSA R&D 센터는 지난달 둥펑모터스와 공동으로 2020년까지 전기차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사진 = 유진투자증권

“폭스바겐 파문, 전기차 친환경성 부각시킬 것”

이번 폭스바겐 파문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9월 18일(현지시각) 폭스바겐·아우디 디젤 차량 48만2000여대에 리콜 명령을 내렸다. 이들 차량에 평상시 산화질소 배출 통제 시스템 작동을 중지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는 이유에서다. 차량 정기검사 때는 이 장치가 가동돼 산화질소 배출량이 억제됐지만, 평상시에는 최대 40배까지 산화질소 배출량이 늘어났다는 게 EPA 측의 설명이다. 핵심은 폭스바겐이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점이다. 부품·성능 저하로 인한 리콜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최대 180억달러(약 21조원)의 ‘벌금폭탄’이 예고됐다.

상황이 이렇자 폭스바겐 측은 진화에 나섰다. 9월 22일(현지시각) 검사를 받을 때만 작동하는 배기가스 저감장치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1100만여대에 이른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9월 23일(현지시각)에는 마틴 빈터콘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사퇴를 결정했다. 9월 25일(현지시각)에는 회의를 열고 그룹의 새 CEO로 포르셰 스포츠카 사업 부문 대표인 마티아스 뮐러를 공식 선임했다. 본격적인 후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미국·스위스 등은 해당 차량들의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정치권과 업계 간의 유착에 따른 것이라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소비자들은 대규모 집단소송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브랜드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폭스바겐 전시장의 모습 / 사진 = 노연주 기자

파문은 일파만파 번지며 10월 현재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발간한 ‘전기차 산업’ 산업 분석 리포트를 통해 “연비(MPG)·환경(CO2배출량) 규제를 맞추기 위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주로 클린 디젤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배기가스 문제가 불거지며 향후 반 클린디젤차 정서와 전기차의 필요성이 증대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테슬라 SUV타입 전기차인 모델X가 9월 출시되고 3만불대 전기차 모델3가 2017년 판매 예정이다. 애플과 구글의 전기차 시장 진출 기대감이 증가하고 있어 테슬라로 촉발된 전기차 시장이 다양한 업체들이 진출하면서 대중화로 더욱 가속도를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결국은 폭스바겐의 디젤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반 클린디젤, 전기차의 친 환경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도 전기차 산업 적극 육성해야”

이런 상황에 국내 전기차 시장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신에너지차량 500만대 보급을 목표로 1000억위안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202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1만2000곳, 충전기 450만대를 설치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미국은 올해까지 전기차 100만대 보급을 추진 계획을 중이다. 자국 내에서 생산할 경우 완성차 업체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 일본은 2020년까지 전기차 50만대 보급을 목표로 전기차 구매 시자동차세를 50% 감면해준다. 독일은 2020년까지 전기차 100만대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환경부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1500만원에서 2017~2018년 1200만원으로 줄일 예정이다. 2020년에는 1000만원 지원안을 제시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기차는 유럽, 미국, 일본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며 “전기차 산업은 수출 등 미래 먹거리 측면에서 경제적 효과가 상당한 만큼 국민들이 전기차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