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주)스토리엔 대표

우리가 즐겨먹는 제육볶음의 어원을 아시나요?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언뜻 생각납니다. 돼지 저(猪)와 고기 육(肉)의 ‘저육(豬肉)’에서 나온 말이죠. 여기에 소유격을 의미하는 ‘의’가 붙어 ‘제육’이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새삼 이것이 기억이 나는 이유는 경기도 이천의 한 산 이름 때문입니다.

혹시 저명산(猪鳴山)이라고 들어봤나요? ‘돼지 울음소리’라는 뜻인데, 이 산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병든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어떤 효자가 시주를 하러 온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절벽의 석이버섯을 따러 갔는데, 절벽을 타고 내려온 밧줄이 끊어지려는 순간 멧돼지가 울음소리를 내어 효자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하여 ‘돋울음산’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쓰인 ‘돋’이나 ‘돝’, ‘돗’은 돼지의 옛말이죠. 그래서 ‘도드람산’이 되어 오늘날 저명산, 도드람산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을 산에 많은 ‘도토리’의 ‘돝’도 돼지의 뜻이 있는데요, 멧돼지가 도토리를 좋아한답니다.

1990년에 설립한 이천양돈조합에서는 이천의 자랑인 이 도드람산의 이름으로 ‘주식회사 도드람’을 세우고 ‘도드람포크’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도드람은 지난 10월 8일 설립 25주년을 맞아 B.I.(Brand Identity) 선포식을 갖고 돼지고기 브랜드명 ‘도드람포크’를 ‘도드람한돈’으로 변경했습니다. 도드람은 생산에서부터 도축·가공·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며 국내 기업형 협동조합의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도드람한돈 광고의 한 장면. 사진=도드람양돈조합 사이트 캡처

산뿐 아니라 아름다운 섬의 이름을 지닌 브랜드도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라는 시(詩)에 나오는 섬 이름을 딴 브랜드입니다. 바로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innisfree)’입니다. 이니스프리는 아일랜드 슬라이고(Sligo) 근처에 있는 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으로, 호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합니다.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전체적으로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자유,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고향의 섬 ‘이니스프리’를 브랜드로 삼아 호수의 촉촉함과 예이츠의 자유주의와 낭만주의를 브랜드 스토리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아일랜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역사를 지녀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다른 예로는 ‘삼다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주도는 세 가지가 많은 섬입니다. 돌, 바람, 여자. 그래서 예전부터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라 불렸습니다. 생수 브랜드 ‘삼다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이 수원지(水源地)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삼다수’는 ‘제주도 물’임을 보여주는 셈이죠. 물론 패키지에는 ‘제주 삼다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수 에비앙(evian)도 알프스 산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로체, K2, 로만손도 지명을 딴 브랜드입니다. 자동차 브랜드 ‘로체(Lotze)’는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산 이름이며, 아웃도어 브랜드 ‘K2’는 고드윈-오스틴 산(Mount Godwin-Austen)이라고도 하는데, 에베레스트산 다음으로 높은 세계 제2의 고봉 이름입니다. 시계 브랜드 로만손(Romanson)은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공업 도시 로만쇼른(Romanshorn)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도드람, 이니스프리, 삼다수, 에비앙, 로체, K2, 로만손. 이러한 브랜드의 좋은 점은 첫째, 지명을 브랜드와 연결하여 지명이 지닌 콘셉트를 브랜드로 그대로 끌어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그 지명에 담긴 의미 있는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경기도 이천 도드람산의 효자 이야기와 이천 돈육,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섬과 시인 예이츠의 스토리, 수원지 제주를 보여주는 삼다수는 브랜드 네임 자체로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거죠.

산이 단풍으로 붉게 불타는 한가을입니다. 도드람산도 좋고, 집 근처에 있는 산도 좋고, 우리 강산 어느 산도 좋습니다. 아마 우리가 오르는 모든 산에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이번 가을 산행에서는 불타는 산만 바라보지 말고, 먼저 산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그리고 숨겨놓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해 보면 어떨까요.